『스톤 매트리스』서평 - 표제작을 중심으로
시간은 정녕 약인가?
『스톤 매트리스』는 『시녀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판된 『눈 먼 암살자』등으로 유명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집이다. 총 9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전반적으로 그녀의 관록과 노련함, 연륜 등이 스며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스물한 살에 시집으로 출판시장에 등장, 여든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스톤 매트리스』는 이러한 노정에서 등장한 것 중 하나다. 보통 나이듦이란 두려움의 대상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고. 이왕 늙는다면 마거릿 애트우드처럼 늙고 싶다. 아니, 그녀와 같은 필력을 가질 수 있다면 기쁘게 늙을 수 있다.
단편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시간이다. 물론 각각의 작품들을 지배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시간에 대한 무력감. 시간에 따른 그리움 등등……., 『스톤 매트리스』에서는 늙음의 부산물들이 다채롭게 등장하고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표제작이기도 한 「스톤 매트리스」를 중점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단편의 주인공은 버나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번잡스러운 것들을 피해 북극으로 가는 유람선 여행에 참여한다. 그리고 버나가 번잡스럽다고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남자다.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더 알아보자. 결혼은 두 번 했는데 모두 사별했다. 각자 지병이 있던 남편은 둘 다 자연사했다. 보통의 아내라면 남편의 건강을 관리하고자 진땀을 뺐겠지만 버나는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였다. 그녀는 남편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누군가가 이 사정을 알았다면 버나를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나는 자신이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 일이었다고 믿는다.
북극 여행의 목표 중 하나는 남자를 보지 않는 것이었다. 이 목표는 당연 실패했는데, 실패 중에서도 아주 끔찍한 형태의 실패였다. 인생의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밥과 같은 배에 탔기 때문이다. 10대 때 밥은 버나와의 데이트를 주도했다. 버나에게 술을 잔뜩 마셔 취하게 만들고 임신까지 시킨다. 하지만 밥은 어떠한 심판도 받지 않는다. 심판의 대상은 애꿎은 버나였다. -버나가 추측하기로- 밥은 그녀가 술에 취해 자신을 원했다고, 또 그녀가 아주 문란한 사람이라고 거짓소문을 퍼트렸기 때문이다. 선수를 맞은 버나는 미혼모 수용 시설에 끌려가 온갖 수모를 겪었고, 출산 후로는 친자식과 떨어진 채 본가로 귀환된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다.
밥은 버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채로 버나에게 작업을 건다. 두 인물 모두 현재 시점에선 노인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버나는 그런 밥에게 적당히 끌려가 주며 살인을 계획힌다. 버나는 그를 용서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수십 년이 지난 일이기도 했다. 동시에 남성이란 호르몬의 노예라는 점도 이제는 안다. 하지만 버나는 결국 밥을 죽인다. 북극에서 하이킹을 하던 중 버나는 그의 안면을 돌로 내리친다. 둘은 다른 일행들과는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범행은 발견되지 않았다. 버나는 현장에서 빠져나와 자연스럽게 유람선에 합류, 유유히 여행을 만끽한다.
전술했듯 『스톤 매트리스』의 작품들에서는 시간에 따른 애수와 체념, 무력감, 그리움 따위의 정서가 뚝뚝 묻어난다. 그렇다면 이 단편에서 묻어나는 건 뭘까? 버나는 남편이 죽으면 자손들과 비합리적인 유산분배를 거쳐 이득을 본다. 과격하게 표현하면 그녀는 남성 혐오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이런 성향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아마 밥 때문이리라.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켜켜이 세월이 쌓여가면 감정들의 무던해지는 건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느껴보았을 경험이다. 혹은 어떠한 기억을 저 밑바닥에 감금시키거나, 뉴런 세포가 아예 죽어버려 영영 소실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정말 약일까? 그렇다면 버나는 밥을 용서했을 것이다. 하지만 버나는 결국 그를 죽여버렸다.
모든 인간은 시간-내-존재이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진 못한다. 시간이 사포처럼 긁고 지나가더라도 모든 걸 풍화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영영 회복하지 못할, 혹은 회복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결핍을 만들고 지나가기도 한다. 노인이 된 버나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해결해 준 건 시간이 아니었다. 밥의 등장은 버나의 내면에 있던 폭력성이 스위치를 놓았다. 소설은 이후에 버나가 어떻게 되었을지를 묘사하진 않는다. 확실한 건 버나에게 있어서 시간은 약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살면서 나름 상처를 많이 받고 살았다. 그리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은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삶을 살아왔다. 먼 훗날 버나와 밥처럼 우연히 그들과 조우하게 된다면 어떨까? 이미 살이 붙어 흉터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아직 상처인 채로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필자나 상대방이나 과거의 일에 다시 감정이 치밀어오를지도 모른다. 시간은 약이 될 수 있을까? 더 살아 보기 전에는 모를 일일 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이 책을 읽기 전보다 읽은 후 필자는 훨씬 더 회의적인 인간이 되었다는 점이다.
노인들도 모두 각자의 고민과 트라우마, 콤플렉스가 있다. 아직 노인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걸 쉽사리 생각하지 못한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관록과 끈기,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에 대해 탐구한다. -최소한 필자가 읽어본 책 중에서는- 그녀의 묘사가 노인에 대한 묘사 중 가장 뛰어났다. 최근 우리나라 문학의 트렌드는 정유정이나 클레이 키건과 같은 미니멀리즘일 것이다. 『스톤 매트리스』의 작품들이 구성상의 군더더기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묘사가 문체, 심리묘사 등에 있어서 확실히 마거릿 애트우드는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스타일은 좋아한다. 하지만 책을 구매하기 전에 독자 스스로의 취향에 대해서 잠깐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