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는 G.E레싱의 문학이론과 후기저서인 '현자 나탄'에 대해 다뤘다. 오늘은 예고한 대로 '에밀리아 갈로티'에 대해 다루며 글을 끝내겠다.
4. 에밀리아 갈로티
'에밀리아 갈로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자 나탄'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단순히 사전지식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만이 아니디. 재미도 훨씬 떨어진다. '에밀리아 갈로티'의 플롯에서 가장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은 영주로 대표되는 귀족계급과 갈로티가족-특히 오도아르도 갈로티-로 대표되는 시민계급 사이의 갈등이다. 레싱은 계급 간의 갈등과 귀족계급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즐기긴 했다. 다만, 이 작품의 주제는 그보다 더 심원하다. 독해 중 특히 주목해야 하는 바는 기성시민계급-혹 기존의 시민질서-역시 파국적 결말에 큰 책임이 있다는 점과 작품에서 엿보이는 저자의 여성관이다.
비극성이란 등장인물의 성격적 결함으로 촉진된다.-알아두면 남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기 좋은 지식이다.-해당 작품의 주인공인 '에밀리아'가 무척 수동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플롯의 핵심은 결국 영주와 오도아르도 사이의 갈등이다. 즉, 주인공은 두 남성이자 기성세대의 갈등에 희생되는 여성인 거다. 단순히 계급 갈등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인 독자의 경우 그녀가 왜 죽음을 결심했는지 충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랬고. 아쉽게도 레싱이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에밀리아 갈로티'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유를 꼭 납득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에밀리아는 전통적인 시민 계급적 가치관과 도덕관 아래에서 성장한 무척 경건하고 목가적인 인물이다. 이런 특징은 아버지인 오도아르도와 약혼자인 아피아니와도 공유한다. 레싱에서부터 “독일 시민비극에서 ‘시민적’이라는 말은 사적이고 도덕적이고 인정이 많으며 풍부한 감성Empfindichkeit를 의미한다.”[1] 는 사실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여러분은 영주가 예배를 드리는 에밀리아에게 자신의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에밀리아가 저런 환경에서 자라왔던 만큼 그의 직접적인 감정표현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대사 몇 가지로 추론컨대 그녀는 이런 고백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이성적 끌림을 경험했으며 이를 암시하는 대사도 다수 있다. 가령 "파계하려는 마음도 역시 파계겠지요."[2] 라든가. 자신이 유혹되고 있다는 의혹 자체가 그녀를 혼란에 빠뜨렸고 수령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에밀리아의 죽음을 내적인 이유가 외적인 이유로 나눈다면, 외적인 이유는 마리넬리의 계략 때문이 맞다. 다만 전자의 경우는 전술한 주인공의 내적 혼란에 기원한다. 이는 맹주완 교수의 비평을 참고했다.
이어 플롯의 두 핵심인물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하겠다. 귀족계급을 대표하는 영주는 바람둥이이고 지배계급으로서의 의무를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직접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오도아르도는 주위에서 정의로운 인물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성미가 워낙 급하고 독단적이라는 한계 역시 가졌다. 그는 에밀리아 갈로티의 내적 갈등에 아버지로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결국 딸의 가벼운 자극에 단검을 뽑아 가슴을 찌르고는 이내 비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기성시민들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일종의 비유다. 저자는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비합리적 전통이 에밀리아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에 악영향-특히 계몽에-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는 종장에서 자살을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제외하곤 작품 내내 수동적으로 군다. 에밀리아에게 필요했던 것은 스스로의 이성에 따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레싱은 이러한 사실을 인물들의 입을 빌어 여러 번 표현한다. 에밀리아가 오도아르도에게 자신을 두고 먼저 떠났다고 말한다거나, 클라우디아가 그녀에겐 시간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는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오도아르도는 이를 무시하고 자신이 직접 사건을 해결코자 했다. 기성세대가 후대가 직접 판단하고 행동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거다. 계몽주의자의 거두인 칸트는 계몽이란 남에게 판단을 맡기는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철학자의 말을 유념하며 글을 읽는다면 작품의 대략적인 이해에는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에밀리아 갈로티'는 페미니즘비평을 통해 논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클라우디아는 딸에게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인물이다. 남편을 말리진 못했지만 말이다. 희생자가 결국 여성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다만, 레싱의 여성관은 특히 오르시나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니 여기선 그녀를 집중조명 해보기로 하겠다. 영주와 관방장 마리넬리의 대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 내지 비동등한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작품 외적으로도 주체적 여성이 작품 전면에 나서는 문학작품이 별로 없기도 했고. 허나 오르시나라는 인물은 이 글에서 가장 주체적인 인물이기도 한다. 스스로를 남자들이 싫어할 만한 여자-여성 철학자-라고 자평하는 그녀는 몇 가지 정황을 통해 영주가 살인자라는 것을 파악하는 비범한 통찰력을 보여준다.-영주가 살인자라는 것은 애매한 정답이라곤 생각하지만, 원인이 된 건 사실이니- 오르시나가 작품 내에서 가장 똑똑한 인물이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지적한 것들이 현대엔 상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는 18세기, 페미니즘이란 용어도 없던 시기다.
이렇게 에밀리아 갈로티에 대한 분석 몇 가지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한국어로 된 논문만 해도 훌륭한 비평들이 무척 많다. 다만 시간과 지면의 한계가 있는 만큼 필자의 주관에 따라 가장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두 개 뽑았다. 이왕이면 더 다양한 지식들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필자의 능력이 부족했다.
5. 결론
레싱이 문학사에 남긴 진척은 독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인류문학사 전체에서 꽤 중요한 인물이다. 시민비극의 완성자로서 보다 많은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었다. 이후 걸출한 시민비극들도 레싱이 제시한 장르적 문법에 따라 작품들을 완성했다. 대표적인 예로 쉴러의 '간계의 사랑'등을 들 수 있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독일문학사-물론 세계문학사에서도 중요하다.-의 거대한 사건이었던 '브레히트'와 '보이체크' 모두 레싱에게 영향을 받아 등장했다.
이런 의의와는 별개로 레싱이 현재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읽히는 문학가로 말할 순 없다. 그는 계몽주의자로서 시대의 변화와 개혁을 원했다. 그만큼 자신의 사상을 작품에 녹여낸 문학가도 적을 것이다. 때문에 그의 저서들을 이해하려면 시대상에 대한 지식이 특히 필요하다. 작가의 의도가 너무 강한 탓에 등장인물들이 살아있지 않고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상기한 요소들은 사람들이 '에밀리아 갈로티', '현자 나탄'등속의 것들을 읽기 어렵게 하는 이유다. 이런 단점들은 저자의 의도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어느 정도 이해하고 감수하고 있는 지점들이다. 물론 보다 까다로운 독자라면, 작품에 대해 이해는 하더라도 예술성 자체는 높다고 보진 못할 수도 있다. 필자는 이런 생각을 비판하고 싶진 않다. 어느 정도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여하튼, 레싱의 작품들을 독해하는 건 여러 방면에서 무척 난감하다. 필자 역시 처음 위 작품들에 박치기를 했을 땐 아프고 어지러웠다. 이 글을 집필한 계기는 내가 겪은 이런 곤혹 때문이기도 하다. 일인의 문인이자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작품을 어려워할 훗날의 '나'들을 위해 몇 자 적었다. '나'들이 더 원활하고 풍부하게 작품을 읽기를 희망했다. 레싱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한국에서 레싱이 빛바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글을 마치겠다.
각주
[1]독일문학과 독민문화 읽기 (사순옥, 한국한술정보(주), 2007) - Guthke:Das bürherliche Trauerspiel, Stuttgart 1988 본래 출저를 확인할 수가 없어서 간접인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