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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odok Feb 27. 2022

'일반대 문창과'를 선택한 이유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2

"안녕하십니까(꾸벅 인사) 저는 57년 닭띠입니다. 방송통신중학교를 거쳐서 여기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왔습니다. 방송중학교 경험을 잘 살려서 학급실장을 맡은 1년간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학우님들의 많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대학 진학은요.... 일반 정규 4년제 대학교를 가고 싶습니다. 방송국에 취업할 것도 아닌데 방송고를 끝으로 더 이상은 '방송'자가 붙은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네요. 방송 중고 6년에 방송대 4년, 방송 인생 10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감사합니다"(꾸벅 인사)


내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30여 명의 학우들이 킥킥거렸다.


방송통신고등학교 입학 후 등교 첫 수업시간이었다. 학급실장으로 강제 차출(?)된 나는 자기소개를 한답시고 학우들 앞에 섰다. 그리고 제법 진지하게 인생 마지막 학교는 일반대를 가고 싶다는데 이놈들은 킬킬거리면서 웃음을 참느라고 난리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여기저기서 웃음을 참느라고 어깨를 들썩거린다. 솔직한 심정을 담아 희망사항이랍시고 나름 진지하게 소감을 던졌다. 그런데 예의가 집단으로 없는 녀석들인지 콧구멍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으로 답례한다. 그래도 웃는 얼굴에 어찌 침 뱉으랴, 나도 미소를 쒹쒹 날려줬던 그날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초조하다. 내게 결핍된 것들을 채워주고 싶었다. 글을 통한 자기표현 수단을 갖고 싶었다. 그 수단을 가장 잘 지원해줄 수 있는 학과는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나이 60 중반인 고등학교 3학년 중반기에 결정한 인생 말년의 동행은 글쓰기였다. 물리적인 시간이 없는데 정상을 향해 오르다가 '이 산이 아닌가 보네'하고 하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도 밥벌이에서 놓여나지 못한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수단은 '방송대'였다. 어찌 됐든지 지난 6년간 방송매체를 이용하여 일과 학습을 병행해온 이력도 있으니 그 연장선상에서 공부하기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와 '문화교양학과'를 놓고 고민했다.


깊이 있는 글쓰기를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도 넓히고 체계에 맞는 작문법도 배워야 할 것이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학과가 절실했다. '국어국문학과'는 국어의 음운 체계와 문장 구조 등 전반적인 국어학의 뼈대를 다루고 있으며 고전문학에서 현대소설 이해와 글쓰기까지 폭넓고 깊이 있는 커리큘럼이 강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갈길 바쁜 나그네다. 우리말의 구조적 체계의 이론을 느긋하게 학습하는 것도 좋지만 보다 절실한 것은 석양에 걸린 해가 지기 전에 원고지 위에다 말 걸기였다.


'문화교양학과'는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인을 양성하는데 꼭 필요한 학과 같았다. 고전에서부터 영화, 신화나 종교 및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 대중문화에 대한 접근, 다원적인 예술에 대한 이해 등등 세상사 폭넓은 안목을 기르도록 하고 있었다. 폭넓은 소양을 바탕으로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넓고 얄팍하게 알음알음 살아가는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과목이 많이 개설되어있다. 커리큘럼을 흩어보면서 방송대를 간다면 문화교양학과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너무 폭넓게 교과목이 편성되어 있어서 학문적 깊이가 있을지 '교양'이라는 학과명과 함께 걱정이 조금 되었다.


글쓰기를 하는데 더 직설적으로 도움이 되는 학과를 찾아봤다.


사이버 대학교에 '문예창작학과'라고 있었다. 사회생활할 때 간혹 '문창과'라고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책상물림 하고는 한참 거리가 먼 육체노동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던 나 같은 부류 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별반 관심 없던 단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이버대학 문창과가 관심을 확 잡아끈다.


1학년 때부터 시나 소설론이 나오고 문예창작의 기초  학습이 튀어나온다. 커리큘럼을 보니 당장 글을 쓰도록 강요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물론 내면의 깊이가 없는 글쓰기란 텅 빈 울림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계속 머뭇거리기보다는 써보고 표현해봐야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고 보완해 가면서 글쓰기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방송대를 대신해서 사이버대 문창과로 대학 입학 후보 순위를 바꿨다. 그 후 포털 사이트를 들어설 때마다 "나를 잊지 마세요" 하면서 그 학교 광고가 따라붙는다 참 고맙고도 무서운 알고리즘이다.


아무튼 '말이 씨가 된다'는 훌륭한(?) 옛 말이 있듯이

결론은 '방송'자가 붙지 않은 '일반대'로 진로를 결정했다.


왜 방송대나 사이버 대학이 아니고 일반대학을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지난 6년간 방송 중 고등학교로만 다녔기 때문이었다'라고 답하고 싶다. 그 이야기는 '만일 방송 중고등학교가 아니고 일반 정규 중 고등학교를 나왔다면, 지금도 일과 학습을 병행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 대학교는 단연 방송대나 사이버대를 선택했을 것이다!'라고 항변하고 싶다.


방송대나 사이버대의 존재감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방송 중 고등학교 6년을 다니다 보니 사람이 고팠다.


방송통신 중고등학교는 한 달에 두어 차례 등교 수업일이 있지만, 대다수는 홀로 공부하는 체계다. 공부를 혼자 한다는 것은 학습하는 기초 자세가 잡혀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응하는 것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만의 진도에 맞춰가면서 반복과 선행학습을 선택할 수 있어서 온라인으로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더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기가 부실하여 겨우 걸음마를 떼던 상황에서는 혼자 공부한다는 것은 면벽수도 같은 막막함이 자주 찾아온다. 그리고 공부라는 것이 영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고 같은 학업을 하는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얻는 선의의 자극도 필요할 것이다.


영상수업만으로 채워 줄 수 없는 것들, 같은 길을 걸으면서 같은 공부를 하는 친구들하고 공감대가 있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할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성장의 높이를 비교해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60여 년의 세월은 밥벌이에만 충실한 기성 부류들과의 피치 못할 조우였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공간을 떠나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고 싶었다. 밥벌이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진 그들과의 만남이 그리웠다. 젊은 친구들은 요즘 무슨 고민을 할까?


일반대 문창과에 필이 꽂히자 앞뒤 사정, 인정사정 가리지 않고 지원하기로 했다. 학교 자체적으로 입시지도 시간이란 게 없어서 진학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다. 쉬운 것도 모르면 아득한 법이다. 결국 대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찾아가서 상담을 받고 싶다고 전화했다. 담당자분 왈 '코로나로 인하여 대면상담은 하지 않습니다' 교과전형인지 종합전형인지 그 차이도 모르고 지원했다. 다른 학교나 학과는 이미 관심이 없었다.


등단이라든지 뭐 대단한 입신양명은 그리지 않는다. 그동안 쌓아온 희로애락을 인생 보고서 형태로 작성하고 싶다. 숱한 천대를 받고 좌절하던 젊은 날, 기쁨은 너무나도 짧았고 슬픔은 너무나도 길었던 내 안의 독백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다 타버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객체화시켜 놓고 떨어져서 바라본다면 무미건조하니 흘러가는 뽕짝이 될 것이다.


나는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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