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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odok Mar 06. 2022

시와 소설은 어떻게 구분하죠?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3

시건방이 또 도졌다.

1학년 1학기 전공 시간표를 검색했다. 첫 느낌은 "이거 뭐 시시한데"그런 기분이었다.

'대학생활과 자기 혁신'이라는 필수 교양이 들어있다. 기본전공은 '세계 고전 특강'이 주 3시간이고 '문예창작 기초'가 주 3시간다. 학점없는 문학기행, 이게 전부다. 그리고 선택 교양과목.


이게 뭐지? 뭐가 이렇게 간단하지? 일주일에 겨우 8시간 수업이라니, 게다가 주전공 과목은 달랑 2과목에 6시간? 이건 뭐랄까, 땅 집고 헤엄치기다. 빽빽한 중 고등학교 수업시간표만 보다가, 먹다버린 옥수수대 마냥 듬성듬성한 주간 수업시간표를 보니 너무 싱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나머지 시간은 뭐하지.... 물론 아직도 생업하고 양다리를 걸치는 입장이기에 나쁠 것도 없다. 어찌 보면 학교 측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울 뿐이지만 수업료가 얼만데..... 생각하면 답답하다. 내가 무슨 2000년대 출생한 신입생도 아니고, 낭만으로 건들건들 보낼 나이도 아니다. 듬성듬성한 기 주간시간표를 빡빡하게 채우고 싶었다.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상급학년 교과목을 수강 신청하려고 했다. 무슨 강의로 채울까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주간 수업계획을 짜고 또 짰다.


그러나 그 시건방은 1학기 수업계획서를 열어보고 급 답답함으로 바뀌었다.

주 2회 3시간이라고 우습게 봤던 '세계고전특강'은 매주 지정된 도서를 읽고 감상평을 파일로 업로드해야 한다. 수업방법은 강의와 토론으로 짜여있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떠들면 적당히 듣는 척하면서 졸던 중 고등학교 수업과는 판이하다. 작품에 대한 '강의는 간략하게 진행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조별 토론과 발표로 구성한다'라고 규정되어있었다. 책을 읽었는지 테스트하는 단답형 쪽지시험이 매번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주 2회 3시간 편성되어있는 문예창작기초도 물리적 시간표의 외양과 달리 내용은 간단하지 않다. 두세 차례 강의로 진행하다가 토론식 수업으로 넘어간다. 중반 주차를 지나가면 창조적인 시나 소설 쓰기 연습과 첨삭지도가 시작된다. 당연히 참고도서 읽기가 병행된다. '세계고전특강'에서 과제로 주는 도서 읽기도 벅찰 텐데 여기에서 강요하는 책까지 얹어진다. 어쩌다 실수로 들어본 벤치프레스바벨 덩어리 하나  기분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창작 노트라는 이름으로 노트를 한 권씩 준비하여 창의적인 글쓰기 아이디어가 있으면 노트에 적던가, 그림으로 그리던가 아니면 사진을 오려 붙이던가 해서 수시로 교수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쓰여 있다. 본격적인 글쓰기를 위한 자유로운 소재의 노트라지만, 이건 뭐 초등학생이 일기 써서 선생님께 제출하여 도장받는 식이다.    


'신춘문예'나 '소설, 영화 읽기' 등 4학년 수업을 들으려던 무모함을 슬며시 접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음 주부터 지정도서 토론이 시작된다. 연관 도서는 중앙도서관에 겨우 두세 권씩 비치되어 있다고 한다. 문창과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서간다. 대다수가 도서 대출을 못 받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여기서 대출을 못 받으면 동내 도서관을 순방해서 대출하거나 서점에서 구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3월분 수업용 도서를 3권 구입했다. 작은 승리감도 잠시 이걸 언제 다 읽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문창과를 다니지 않았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다 못 읽을 책 권수를 1학년 때 다 읽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설렘의 문예창작기초 첫 수업이다.

교수님의 첫 일성, "시와 소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죠?"

이제 겨우 어제서야 반토막 입학식을 끝낸 얼떨떨한 28인의 문예 전사들은 지금 정자세로 앉아서 묵언수행 중이다. 불편한 이 분위기를 빨리 깨고 싶다. 한마디 안 할 수 없는 내 입이 열었다.

"시는 짧고 소설은 깁니다"

간단하지 않은가. 평소에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풍문으로 듣고 인지하는 것 아닌가. 세상의 모든 시나 소설을 보라, 시는 짧고 소설은 길지 않은가. 가장 간단명료한 답안이라 생각하며 미소를 띠는 순간.  

"아닙니다. 시가 길 수도 있고 소설이 짧을 수도 있는데요"

그렇다. 어쩌면 당연한 소리다. 물리적인 글자수로 시냐 소설이냐를 따진다는 것은 어리석다. 밀수선을 두만강에 띄워놓고 고민하는 아낙네의 한숨으로 시작하는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라는 "국경의 밤" 같은 두툼한 두께의 장편 서사시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교수님의 답변을 인정하기보다는 28인이 침묵 속에 빠지는 어색한 공간을 깨야 한다는 의무감(?)에 충실했다. 객쩍은 소리임을 알면서도 또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나 글을 소설처럼 길게 써 놓고 시라고 박박 우겨대 봤자 누구한테도 인정을 받지 못할 텐데요?"

"이것도 시냐고 비웃는다면 나는 기뻐할 것이다. 내 글이 고정관념을 깼으니 기쁘다'고 황지우 시인이 말했습니다. 예술이라는 학문은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주변인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시와 소설의 구분은 내 마음이 결정합니다.

교수님의 지당하신 말씀에 대한 수긍은 잠시 접어두고, 세상에 창조적인 것은 무엇이고 그 영역은 어디까지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교 입학 후 첫날 수업인데 썰렁한 수업 분위기가 너무 길게 갈까 봐서 일단 후퇴했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가 재미있어진다.           


당장 1학기 내에 읽어야 할 지정도서를 적어본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이언 맥큐언 <속죄>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켄 로치 <다니엘 블레이크>

조세희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박민규, 김애란 <한국 사회의 현실과 가난 1,2>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스티븐 돌드리 <더 리더>

최은영 <씬짜오 씬짜오>

레이먼드 카버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 숲>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샐리 루니 <노멀 피플>

김금희, 정세랑 <우리에게 사랑은 1,2>  

유종호 <문학이란 무엇인가>

나탈리 골드버그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


수업 종료 후

교수님이 펴내신 시집 3권에 싸인 요청을 했다. 사인을 하시면서 물으신다.

"선생님은 올해 나이가 몇이신가요?"

선생님이라는 단어 앞에서 순간 멈칫했다. 수업 전에 동료 신입생들이 나에게 이구동성으로 '선생님'이라고 부르길래 "선생님이라고 하지 말고 '학우님'이라고 불러줘요"라고 수정했었는데 교수님마저 선생님이라고 부르신다. 피교육생 입장에서 이건 아닌 것 같지만 흘러 넘겼다.

"57년 닭띠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네요"

"네.... 제가 학교 내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학생이겠지요?"

"아닙니다. 2학년 다른 과에 한분 계시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순간 4천여 명의 신입생 중에서는 제일 연장자라는 생각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느 분에게 물어봐야 할지요. 저를 왜 뽑으셨는지요?"

"뭐 요즘 대학 입학이 쉽지 않나요"


교내 식당에서 질퍽한 오므라이스를 텅 빈 위장 속으로 욱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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