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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odok Mar 12. 2022

유년기의 상상력을 복원하라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4

워밍업을 끝내고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전공과목 강의가 시작된다.

기본 전공과목인 '문예창작의 기초' 수업 주제는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가 지닌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다. 문학예술이란 '우리가 유년시절에 지녔던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을 다시금 찾아가는 과정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하신다. LCD 프로젝트가 '시' 전문 두 편을 교차로 스크린에 비춘다.


언어의 집/정찬일

시간이 늘어지는 일요일 오후, <언어>보다 <言語>가 더 단단한 집이라고 <思惟>할 때 아이는 몇 개의 레고 블록으로 기둥을 세우고 그것을 집이라고 하고 거북이라고 하고 사자라고도 한다. 레고 블록 몇 개로 집을 짓고 거북이를 만들고 사자를 만드는 저 손끝의 사유, 아이는 언어의 집을 짓지 않는다. 금방 무너져 내리는 레고 블록 사이로 노오란 사유로 물든 내 언어는 땅에 떨어지고 거북이는 나뭇잎 무늬를 가진 바다로 느릿느릿 기어가고, 사자는 푸른 달빛 비치는 초원으로 달아나고 아이는 언어의 집을 짓지 않는다. 내가 그물 같은 언어로 세상을 만들고 나를 만들고 그리움을 만들 때도 아이는 언어의 집을 짓지 않는다. 나는 몇 개의 단단한 기둥을 세운다. 그것을 날개 달린 사랑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단단한 추억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무너지는 소망이라고 이름을 붙일 때 아이는 몇 개의 기둥을 세웠다 다시 무너뜨린다. 아이의 손끝에 내가 짓던 언어의 집이 흔들린다.


유년시절 우리 모두는 다들 시인이고, 행위예술가였고 미술가였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예술적 감성을 하나 둘 잃어버리고 그 빈자리는 현실이라는 괴물로 가득 채워져 간다. 문학적인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한 때 가졌던 유년시절의 상상력을 복원하는 길이다.


아이는 레고 블록 하나면 세상을 만들어내기가 너무 쉽다. 아이의 레고 블록 속에는 거북이도 있고 사자가 살아있다. 작은 손바닥 위에 있는 비행기가 하늘을 난다. 그러나 <언어>보다 <言語>가 <사유>보다 <思惟>가 더 멋진 줄 아는 기성세대는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한 상상력이 고갈되어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아이보다 많이 배운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뭔가를 자꾸 멋지게 만들어 보고자 하지만 도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우리가 배우는 언어는 본질적으로 세상의 논리를 따르도록 하고 인과관계를 따지도록 한다. 예술적 감성으로 가득 차 있던 대다수의 아이들은 학교교육을 통해서 감성을 상실한다. 결국은 감수성이 메마른 어른으로 완성되어 사회로 배출된다.       


기린/구광본

내가 그리고 있는 기린은

네가 그리고 있는 기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엉터리 기린 그림이라고

너는 말하지만 그래 나는 기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기린을 그렸다

너의 기린이 점점 형체를 갖추면서

나무의 잎사귀와 열매를 따먹으며

너의 붓끝에 사로잡히는 동안에도

나의 기린은 점점 자라 화폭을 뚫고

이젤을 넘어뜨리곤 시멘트 바닥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간다


예술이란, 누구나 다 아는 기린은 기린이 아니다고 부정해야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기린을 그려가야 한다. 남들이 안 하는 것, 생각을 안 한 것 바로 그것을 찾아가는 상상력이 예술이다. 나만의 기린을 그리는 심정으로 글을 써야 한다. 예술적 시각을 축적해야 한다. 평소에 듣던 기차소리, 파도소리 때론 도시의 각종 소음이 평소와 달리 들릴 때가 바로 글을 쓸 수 있을 때다. 물론 나만의 시각으로 예술을 할 때에는 주변 사람의 몰 이해는 당연히 따라온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우리에게는 영화 '대부'로 많이 알려졌지만 10대들의 갈등을 다룬 멋진 영화도 만들었다. 영화 '아웃사이더'(the Outsiders)에서는 시의 세계에 대해 두 주인공의 대사가 들어있다. 국내 개봉은 흥행 실패했지만 미국에서는 소설 원작과 함께 권장되는 영화다. 이 영화는 프로스트의 '시'를 통해서 공감대 형성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한 번쯤은 했었기에 두 소년의 대화를 들으면서 많은 공감을 하리라고 본다.   


(A나 B에게는 구름과 석양을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C나 D에게는 얘기하고 싶어 한다. 구름과 태양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하여.....)


새벽에 일찍 눈을 뜬 두 소년(포니 보이, 조니)의 대화를 보자


포니 보이(토마스 하우웰): (프로스트의 '시'를 암송한다)

황금빛은 오래 머물 수 없어요/로버트 프로스트

Nothing Gold Can Stay/Robert Frost


자연의 첫 신록은 황금빛,

오래 머물기 어려운 빛깔이지요.

자연의 첫 잎은 꽃이지만

단지 한 시간뿐이지요.

잎은 곧 또 다른 잎으로 사그라들죠.

낙원은 슬픔에 빠져버리고

새벽은 낮으로 변해 갑니다.

황금빛은 오래 머물 수 없어요.


조니(랄프 마치오): 어디서 배웠지? 지금과 잘 어울려.

포니 보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야, 외우긴 했지만 뜻은 잘 몰라.

조니: 난 색깔이나 구름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네가 날 일깨워 줘, 그런 것들은 늘 가까이 있다고 하던데!

포니 보이: 난 스티브(탐 크류즈)나 투빗(에스테베즈), 대럴(패트릭 스웨이지)한테는 <구름>과 <석양>을 얘기하지 않겠지만 너랑 소다 팜(롭 로우)한테는 하고 싶어. 아마 셰리 밸런스(다이앤 레인)한테도.....

조니: 우린 좀 다른가 보지?

포니 보이: 네가 다르거나 그들이 다르거나

조니: 그래 맞아.


문학은 창의적 상상력에 기반한 예술이다. 따라서 '문예창작 교육'의 어려움이 있다. 모든 글쓰기는 대상에 대한 완벽한 재현을 목표로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언어는 존재를 드러내기는커녕 존재를 다시 숨겨버린다. 존재와 언어 사이에는 근본적 갈등이 존재한다. 상상력이 결핍되면 대상의 구체적 창조를 이룩하지 못하고 만다. 좌우지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좌절하시길 바란다.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던지는 말/최인훈 작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네가 비웃을까 얘기하지 않겠다.

말해보라고?

사랑하며 살라이거야.

나쁜 놈! 웃지 않는다고 해 놓고!


이 문맥을 패러디한다면....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네가 실망할까 봐 얘기하지 않겠다.

말해보라고?

많이 읽고 많이 쓰라 이거야.

나쁜 놈! 실망하지 않는다고 해 놓고!


나의 유년시절에도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있었던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멀리 왔나 보다.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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