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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odok Mar 26. 2022

살아있는 글을 붙잡기 위하여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5

우리들은 누구나가 무한한 상상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러나 내재된 상상력은  세월이라는 현실에 마모되면서 성장해왔다. 그런 우리들이 지금까지의 관습과 인식을 단번에 버리고 문학적 상상력을 복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사항에 염두에 두고 새로운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시도해 보기로 하자. 창조적이고 상상력이 뛰어난 글쓰기를 위한 효과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물론 이 제안들이 새로운 글쓰기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은 염두에 두자.      


1) 스쳐가는 문학적인 상상력을 포획한다.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춘기 시절 스쳐가는 단상이나 느낌을 자신만의 노트에 적어보거나 혹은 끄적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런 습관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도 일상화되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우리가 모처럼 바닷가를 가면 '야 바다다!'라며 탄성을 지르지만, 바다가 삶의 터전인 어부들은 바다를 보고 경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어부도 어느 순간 파도소리가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도 늘 보고 듣던 세상이 어느 순간 문득 새롭게 보이는 경험들을 했을 것이다.  그때가 문학적 창조력이 찾아왔을 때다. 그 느낌의 순간을 사로잡는 것이 문학적 상상력을 포획하는 것이다.  문학적 상상력은 기존의 상식이나 논리로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특유의 직관과 감수성으로 순간 포착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일상의 내밀한 단면이 새삼스럽게 인식되기 시작할 때 글쓰기는 시작된다.


2) 일상적인 인식을 비틀어 본다.

이런 시 구절이 있다. '하늘에 새들이 박혀있다'(신용목 시인) 밤하늘에 뚫린 작은 벌레 구멍(남진우 시인) 하늘의 ''나 ''을 보고도 우리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즉 삐딱하게 보거나 거꾸로 혹은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해 본다. 창조적인 상상력의 구현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역전의 사고, 혹은 전도된 발상을 통한 형상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철학의 개척자인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상상력에 대해 '자연이 분리해 놓은 것을 결합시키고, 자연이 결합해 놓은 것을 분리시키는 힘'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정의는 모든 예술창조의 원천으로서 상상력이 작용하는 속성을 잘 보여준다. 문학은 상상의 세계라는 점에서, 역발상을 통한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창조하는 행위인 것이다.


3) 마음의 극장(theater of mind)을 설정한다.

마음의 극장이란 말 그대로 내 마음속에 가상의 공간극장 무대를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글을 쓰는 것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가상으로 공연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대와 배우와 관객,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휘하는 연출가가 마음속에서 제각기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이때 글을 는 자신이 이 드라마의 연출가이자 연기자이며 동시에 관객이기도 하다. 극장의 무대를 진두지휘하거나 때론 직접 뛰어들어 연기에 몰입하면서 글쓰기를 수행할 때, 상황은 실감 나고 표현의 생생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을 읽어보면 시인 자신이 남녀 간에 벌어지는 이별의 정황을 지켜보면서 즉 극장 설정을 통해 시를 만들었음이 확연하다. 특히 문학 작품같이 정서에 호소하는 글은 거리를 유지하기보다는 그 속에 빠져들어야 작가나 독자가 상호 공감할 수 있다.


4) 세부묘사, 즉 디테일을 중시한다.

창의적인 글은 전자제품의 사용설명서나 과학에서의 실험보고서와 다르다. 엄격한 육하원칙에 입각한 정보전달의 신문기사가 아니다. 문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주관적인 느낌과 결을 담아내야 한다. 그래서 뛰어난 작가들은 남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무심하게 지나치는 세세한 것들에 주목한다. 다수의 관심사에서 홀로 벗어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문학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학교 주변의 카페 중에서 좋아하는 카페와 그 이유를 적어보라고 하면 대다수는 '00는 분위기가 좋아요' '000는 음식이 좋아요'식으로 답변한다. 그러나 남들이 다  느끼는 그런 것보다는 '출입구 왼편 의자의 삐꺽임이 좋았다'라고 구체적이고 독창적인 답을 한 학생이 잊히지 않는다. 아주 하찮을지도 모를 세부에 관심을 갖는 것이 상상력의 구현과 글쓰기에 유용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5) 감각을 총동원한다.

추상적인 표현을 버려라.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공감각 등 직접 인지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감각에 호소하는 표현들은 써라. 추상적인 단어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감각을 동원하면 이미지가 그려진다. 예를 들어 외로움, 쓸쓸함, 고독 등의 감정을 글로 나타낼 때, '외롭다', '쓸쓸하다', '고독하다'라고 말해서는 식상한다. 추상적인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텅 빈 골목의 외등처럼 서 있었다'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잔뜩 기대감에 부푼 감정 역시 그냥 '기쁘다' '즐겁다' 등으로 표현할게 아니라 '풍선껌처럼 부풀었다'라거나 '비눗방울처럼 날아올랐다'등은 어떨까. 외등이나 풍선껌이나 비눗방울의 구체적인 그림이 머릿속에서 그려질 때 비로소 표현은 생생해지고 느낌의 미묘한 결은 직접 와닿는다. 즉물적으로 말하지 말고 오감으로 느끼게 해줘라. 감각을 동원해라


6) 말하지 말고 보여준다.

글쓰기와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격언의 하나가 '직접 말하지 말고 정황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감각의 동원과도 관련 있는 항목이다. 특히 문학작품과 같은 예술적인 글은 말하기 방식보다는 보여주기 방식을 선호한다. 이를 위해서는 추상적인 설명이나 표현을 그냥 쓸 것이 아니라 그것이 구체적인 그림이나 영상으로 그려지도록 바꿔보는 시도를 해야 한다. 자기만의 시선으로 그린다. 예를 들면 피곤에 지친 정황을 이야기할 때, '나는 피곤했네'가 아니라 '나는 그날 빈 소주병처럼 뒹굴었다' 또한  사랑에 대한 표현도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백석 시)"설정더 실감 난다.


7) 의인화, 의물화에 관심을 기울인다.

원시인들은 모든 사물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애니미즘) 예전 우리 조상들은 가족의 안녕과 건강을 위하여 큰 나무나 바위 혹은 장독대에도 빌었었다(물활론적 사유) 의인화는 사물이나 추상적인 개념에 인간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의인화는 이런 점에서 만물에 영성이 깃들어 있다는 물활적 사유나 애니미즘과도 관련을 맺고 있다. 의인화는 그 자체로 글을 생동감 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의 묘미까지 생성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인간이나 살아있는 생명체를 사물이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바꾸는 의물화 역시 두드러진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겁다'(안도현 시인)


8) 동심으로 사물을 인식한다.

동화 '어린 왕자'의 첫머리에 나오는 그림을 기억해 보자. 화가를 꿈꾸었던 6살의 어린아이가 화가를 포기하게 된 계기는 한 장의 그림 때문이었다. 아이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 어른들에게 보여주며 무섭지 않으냐고 묻는다. 그러나 보아뱀의 뱃속에 코끼리가 들어있는 그림은 어른들의 인식 속에서는 그냥 단순히 모자로 보일 뿐이다. 자기에게 미술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 아이는 화가의 꿈을 접고 비행기 조종사가 된다. 이 동화는 세상의 경이와 신비에 대해 점차 무감각해지고 자동화되고 습관화된 우리의 인식을 일깨운다. 흔히 사춘기나 문학청년시절에는 문학작품이나 시를 잘 읽다가도 사회에서 어른으로의 삶을 살면서는 점차 멀어지는 경향도 생각해 볼만한 사항이다.


9) 표현으로 수사나 비유를 탁월하게 한다.

비유란 간단하게 말해 비교에 의한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비유가 성립하려면 표현하려는 원래 대상과 표현을 위해 동원된 대상을 서로 연결시키는 근거가 필요하다. 흔히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근거에 의해 비유가 성립된다. 그렇지만 수사나 비유는 이미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는 경우보다는 그것을 독자적으로 새롭게 생성시키는 경우에 더 참신해지고 표현 효과 역시 더 커진다. 그러자면 기존의 소극적이며 예측 가능한 비교에서 벗어나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서...." 얼마나 식상한 표현인가 '강물'하면 대다수가 자동으로 '세월'을 연상할 정도로 너무나 많이 우려먹었다.


10) 대상의 구체적인 이름을 불러준다.

그냥 보통 명사로서 꽃이나 나무나 새가 아니다. 어떤 꽃인지 어떤 나무인지 어떤 새인지를 고유명사로 직접 불러줄 때, 구체적이며 생생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두리뭉실 꽃이 아니라 장미, 수선화, 제비꽃, 청둥오리, 물총새라고 직접 그의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구를 보면 그의 이름을 불러줘서 우리는 서로 관계의 의미를 갖자고 노래한다. 문학에서는 대상에게 구체적인 이름을 붙이고 불러줄 때부터 깊은 관계 맺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름 없이 피어있는 꽃은 없다. 다만 우리가 그들  하나하나를 소홀히 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을 뿐이다.     


11) 삶의 양면성 혹은 다양성을 생각해 본다.

문학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조망하는 행위다. 위대한 사람에 대한 경외심 못지않게 반대의 삶 즉 왜소한 인간에 대한 연민도 복합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철학적인 성찰이 가능한 문학이 탄생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경외와 연민이야말로 글쓰기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이면에는 곁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면적인 모습이 자리 잡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인간도 전적으로 고결하기만 한 것은 아니며 반대로 어떤 인간도 저급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문학 작품뿐이 아니고 모든 글쓰기는 결국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에 이를 수 있을 때 진정한 무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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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담당 교수의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자가 임의로 첨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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