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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odok Apr 06. 2022

이런 영화 흔치 않습니다.

문창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7

  오늘 과재는 강의실에서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고 감상문을 자필로 쓰기다. 인터넷 정글에 널려있는 방대한 양의 기존 글들을 피해 가면서 써야 한다. 주어진 글의 형식은 경어체를 사용한 서간문 형태다.  그리고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 떠오르는 네루다의 시를 노트에 옮겨 적고 낭독하기다.


"일 포스티노"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일 포스티노'입니다.

허리우드식의 화려한 액션은 없지만 러닝타임 2시간이 짧게만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매력은 1회  감상로 국한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진부할수록 우리 곁을 따뜻하게 지켜줄 영화 중 하나입니다.  영화에서는 '시는 무엇인가?' '시는 어떻게 써야 되는 것인가?' '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등 '시'의 세계에 대해 시종일관 묻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작은 섬을 무대로 화면 가득 펼쳐지는 미장센은 한컷 한컷이 빛바랜 추억을 넘겨보듯이 아름답습니다. 조국을 떠나서 망명 중인 시인, 대대로 살아온 어촌마을을 떠나고 싶은 순박한 청년 그리고 공산당 사상을 지지하는 우체국장,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숙모와 조카 등 그들이 펼치는 아야기는 다양한 시적 메타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임시 우편배달부로 고용된 청년 '마리오'는 망명시인 '네루다'의 우편물을 배달하다가 '시'에 눈을 뜹니다. '시'가 대체 무엇이길래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네루다에게 열광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자신도 시의 힘을 이용하여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베아트리체 루소'를 사귀고 싶어 합니다. 마리오는 네루다의 시집에서 은유를 포집하여 시인에게 묻습니다.  


'은유, 그게 뭔데요?'  

'은유란 뭐랄까, 뭔가를 말하기 위해 다른 것에 비유를 하는 거야.'

'그것이 시를 쓸 때 사용하는 것인가요?'

'그럼.'

'예를 들면요?'

..................

'내가 쓴 시 구절은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뿐이야.'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나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감상해보게.'

'그럼 은유가 올까요?'

'그리될 게야.'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을 다 말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시인이 아니라도 원하는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네.'

'하지만 선생님처럼 말할 수 없잖아요.'  

'자신의 소신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남들이 원하는 좋은 말만 하는 시인되는 것보단 훨씬 낫다네.'


  일 포스티노는 단순하게 '시'이야기로만 국한되는 영화가 아닙니다. 시를 매개로 한 이해와 연대 그리고 사랑 등 어쩌면 인간승리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일 포스티노의 화면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순박한 청년 마리오는 네루다와의 만남을 통해 따분하게 보아왔던 고향 풍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적 은유를 통해 시의 비기를 알아버린 마리오는 어제의 마리오가 아닙니다. 시적 메타포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줍니다. 일상적인 언어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세상사를 더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우리의 현대사와 일부 겹쳐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코리아는 한때 제3세계 민중들에게 희망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도 시가 가까이 있었습니다. 80년대 거리에는 최류가스가 밤안개처럼 대낮부터 자욱하게 흘러 다녔습니다. 그 어둠의 공간을 이용하여 합법을 표방한 권력은 시민들 사이를 갈라치며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때 많은 시인들이 현장성과 즉흥성을 무기로 민중시라는 카테고리의 책을 펴냈습니다. 다종 다양한 시집들이 출간되었고 수만 때론 수십만 권씩 팔려나가는 시의 나라였습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시가 대량으로 뿌려졌고 노래가 들렸습니다.   


  연애시로 명성을 얻던 네루다는 자신이 어떻게 민중시를 쓰면서 공산당원이 되어갔는지 마리오에게 들려줍니다. 고통받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민중을 위하여 '시'의 세계가 변해갔던 것입니다. 네루다가 망명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떠나자 마리오도 네루다가 있는 칠레로 이민 가고 싶지만 고향에 남습니다.  영화는 서정적으로 진행되는 극 초반부터 마리오가 죽는 마지막 흑백 장면까지 은유를 바탕으로 한 팽팽한 시적 긴장감을 화면 속에 감추고 있습니다. 지루할 틈 없이 두어 시간이 금방 흘러가는 이유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영화가 주는 감흥을 곧바로 깨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다양한 영화와 만나지만 이런 기분이 드는 영화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제 '마리오'는 갔지만 그를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뼈대가 되는 원작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빌렸습니다. 이제 지면으로라도 '마리오'를 한번 더 만나고 싶습니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시 입문에서 제3세계 청치사까지 들려주는 이런 영화 정말 흔치 않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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