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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콩 Mar 29. 2021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든 생각


혹시 위 장면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위 장면을 모르는 10대들은 많을 테지만, 20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어디선가 봤는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혹자는 CF에서 봤던 것 같다고 하고, 혹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따라 하는 걸 봤다고 할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CF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위 장면과 관련된 키워드로 말해보자면 ‘15년’, ‘군만두’, ‘장도리신’으로도 얘기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아! 그 영화!’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한 남자가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독방에 갇혀 사는 이야기, 바로 영화 <올드보이>다.


* 해당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올드보이>를 알게 된 건 예능 <무한도전>을 통해서였다. 당시 <무한도전>에서는 액션 연기를 도전했었는데, 그때 <올드보이>의 ‘장도리신’을 무한도전 멤버들이 도전하게 된 것이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올드보이>를 단순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고, ‘서로 원한이 쌓인 사람들이 싸우는 영화겠구나’라고 치부했다.


영화 <올드보이>


영화는 주인공 오대수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누가 보기에도 평범한 오대수는 만취한 날 밤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한다.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는 감금 생활을 하며, 텔레비전 방송으로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도, 또 자신이 가해자로 몰린 소식도 알게 된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세월이 지난 후, 오대수는 한순간 바깥세상에 내던져지게 된다. 그 후부터는 자신을 감금한 사람이 누구인지, 또 왜 자신을 감금했는지에 대해 추적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관객들은 오대수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누가 ‘보통의 가장’에게 저런 극악무도한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관객들의 초반 생각은 스스로 뒤통수를 치고 만다. 빌런은 오대수를 가둔 이우진이 아닌, 오대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올드보이, 이우진


극 중 이우진은 몸만 자란 소년이다. 자신의 누나가 자살한 이유였던 오대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몇십 년을 공들인 그의 행적이 그것을 방증한다. 그러고는 ‘누나의 소문’을 퍼트린 오대수 역시 자신과 다른 사람인지 시험에 들게 한다.


몸은 자랐지만, 그 속에는 누나의 복수만을 생각하는 고등학생이 차지한 셈이다. 이우진은 누나의 복수를 성공하게 되지만, 결국 자신도 누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살한다.


결국, 누나에 대한 복수가 이우진을 삼키고, 이우진을 몸만 자란 소년, 즉 올드보이로 자라게끔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올드보이>에서 가리킨 ‘Old boy’는 오대수가 아닌 이우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맴돈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이 영화 속에서 진행되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에는 한 사람의 말이 있었다. 결국, 한 사람이 했던 말이 어떤 이에게는 씻지 못할 상처를, 또 어떤 이에게는 평생의 그리움을 낳은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진의 누나가 죽은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오대수가 아닌 제삼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대수는 말의 무거움을 잊고 주환에게 소문의 원천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말은 주환과 여러 동창생을 통해 와전되었고, 그 결과 소문의 주인공을 옭아매는 사슬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오대수는 사실만을, 그리고 한 사람에게만 자신이 본 것을 말했을 테지만, 물에 가라앉기는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마찬가지였다. 영화의 말미에 오대수는 사죄의 의미로 자신의 혀를 자른다. 이로써 오대수라는 캐릭터를 대변해 각자 개인의 혀, 즉 말의 중요성을 강조함을 알 수 있다.


<올드보이>는 현재 우리 시대를 잘 담고 있다. 떠오르는 온갖 논란들에 사실을 차치하고 여론재판을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개인의 손가락, 즉 말의 중요성을 잊은 것 같다. 영화가 개봉한 지 20년이 가까이 되어가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효한 경고장인 듯하다.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올드보이>가 무의미한 경고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문보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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