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난다 -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보고
지난 월요일, 자기 전 간단하게 영상 하나를 보려고 넷플릭스를 틀었다.
마침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눈에 띄었고, 예전부터 친구들이 추천해줬던 드라마라 나는 자연스럽게 클릭 버튼을 눌렀다. 한 편만 보고 잠을 자려고 했던 계획과 달리 나는 단숨에 8회를 봤고, 아침 해를 맞이하며 눈을 감았다.
* 이 글은 Netflix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시청하시고 난 후 글을 읽으시면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주인공 클레이가 녹음테이프 한 박스를 받으며 시작한다. 녹음테이프에는 얼마 전에 죽은 해나의 목소리가 담겨있었고, 해나는 담담하게 각 테이프마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 했던 이유를 얘기한다. 총 13가지의 이유가 7개의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었다.
녹음테이프는 자살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들에게 배달되었고, 클레이는 그중 한 명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만다. 드라마는 클레이의 시점으로, 클레이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루머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원래 그 지역에 살던 사람보단 그 지역에 처음 이사 온 사람이, 남들이 무언가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보다는 남들이 무언가를 많이 모르고 있는 사람이 루머의 대상층으로 설정되기가 쉽다. 루머란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소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대상이 되기가 쉬운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해나가 그러했다. 해나는 전학생이었고, 해나가 전학 오고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해나의 루머가 터졌다.
루머는 해나의 첫 남자친구인 저스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저스틴은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사진을 자신의 친구들과 공유했다. 친구들이 짓궂은 질문들을 저스틴에게 했고, 저스틴은 그 질문에 긍정한다.
그렇게 해나의 사진은 저스틴의 친구 브라이스로부터 유포가 되었고, 전교생이 아는 사진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고 해나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학생은 없었으며, 해나는 그렇게 첫 번째 루머를 안고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그렇게 대외적으로 씌워진 해나의 루머는 다른 루머를 생성하는 데 일조했고, 루머는 다른 루머를, 그리고 다른 루머는 또 다른 루머를 낳는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해나는 드라마에서 클레이가 좋은 사람이라 했다.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자기 같은 형편없는 애는 그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클레이가 과연 해나의 자살과 무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범한 학생으로 그려지는 클레이는 드라마에서 방관자로 나오는 것 같다. 해나와 관련된 루머를 접해도 그는 아무런 미동도 없다. 그 루머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그저 학교 학생 중 한 명으로의 역할만 한다. 해나와 자기 사이의 관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후 클레이는 아무런 이유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테이프를 듣고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으며, 해나를 지키기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과거를 자책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해나를 대신해 가해자들에게 적절한 응징을 한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13가지 중 한 가지에서라도 해나를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가해 학생들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따른다는 것을 미리 알기만 했더라도, 혹은 해나의 루머를 방관한 아이들이 해나에게 선입견 없이 다가가기만 했더라도, 이러한 비극은 막았을 것이다. 결국, 해나의 죽음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결론적으로 이 드라마는 ‘말의 책임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드라마의 제목인 ‘루머의 루머의 루머’ 역시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의 입방아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해나는 자신의 입을 통해 진실을 말함으로써 그들의 거짓과 자신의 결백을 고한다. 그녀의 명성이 추락하는 수단과 상승하는 수단을 ‘말’로 통일한 것이다.
말의 책임성을 깨닫고 생각을 내뱉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던 드라마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말로 누군가가 상처를 받을 수 있음을 유념하며 말의 책임성을 가져야겠다.
[원문 보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