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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 밭 May 24. 2021

그렇게 가족이 된다

단양, 달팽이 텃밭

우리도 가족일까


단양의 어여쁜 마을, 보발리에 위치한 달팽이 텃밭에는 세 명의 농부들이 함께 산다. 블루비, 산소리, 소나무. 그들의 별칭이다. 서울에서부터 이어온 인연으로 시작해 달팽이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지 10년 째다. 함께 농사를 짓고 있지만 각자의 역할은 모두 다르다. 블루비 님은 블루베리와 양봉을, 산소리 님은 독립된 별채에서 작은 정원을, 소나무 님은 마을 사업과 함께 텃밭을 담당한다. 성향도 각자 다르다. 블루비 님은 주로 바깥에서 공구를 다루는 작업을, 산소리 님은 정원을 만들고 명상하는 일을, 소나무 님은 마을 분들과 활동적인 작업을 만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이 외에도 이전에 살아온 배경, 직업 등은 물론이고 좋아하는 술 취향까지 모두 다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함께 귀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세 명이 함께 살아가다 보니 의견이 합쳐지지 않을 때가 자주 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언쟁을 나누는 일이 잦다. 밭을 가꾸거나 모종을 심는 일부터 식사 메뉴 정하기, 설거지를 하는 순서 등 아주 사소한 일에도 건조한 대화가 종종 오고 간다. 일을 같이 하는 것도 힘든데, 같이 산다는 건 더욱 힘든 일이구나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함께 살아간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서로를 보완하고 완성시키며 함께 살아간다. 블루비 님은 공구나 농기계를 잘 다루고, 산소리 님은 텃밭과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소나무 님은 음식을 맛깔나게 잘한다. 방법이 다를 뿐 자연에서 같은 방향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자주 언쟁을 나누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일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같이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진심을 나눈다는 건 따뜻한 차와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이들은 하루에 세 번 함께 모인다.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그리고 마음 나누기 시간이다. 각자 바쁘게 일하다가도 오후에는 따뜻한 차와 책 한 권을 들고 테이블에 모여 앉는다. 각자 한 페이지, 혹은 한 구절 씩 읽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시를 읽으며 보발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야기하고, 감사일기를 읽으며 일상 속 감사한 일들을 나누기도 한다. 좋은 문장을 읽으니 좋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때로는 이 시간을 통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거나 각자의 마음 상태를 돌아볼 수 있다. 이전에 나눈 건조한 대화 속에 남은 응어리나 감정을 풀어내기도 한다. 진심을 나눈다는 건 따뜻한 차와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서로 다른 세 명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화롭고 명쾌한 방식인 것이다.


달팽이 텃밭이란 이름으로 세 명의 사람은 생활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만나면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던 그들이 생활을 함께 하던 순간부터 관계는 완전히 다시 시작된다. 서로의 다른 면을 보고 실망하고 싸우지만, 이해하고 노력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과정이 수없이 많았겠지만 이들은 달팽이 껍데기처럼 단단한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로의 일상과 생각을, 고민을, 감정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관계를 가족이라 하기엔 어색하게 느껴진다. 가'족' 말고, 진짜 '가족'. 결혼의 형태로, 혹은 같이 산다는 이유로 가족으로 묶인 형식을 넘어 '진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들을 보며 이렇게 살아도, 이렇게 이어져도 가족일 수 있구나 생각했다. 따로 또 같이, 간혹 언쟁을 높이지만 따뜻한 음식 앞에서 진심을 고백하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고급이라는 걸 깨닫는 것, 함께 걸어가며 공업을 쌓아가는 것. 그들에게는 서로가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기댈 수 있는 가족이고,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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