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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 밭 May 28. 2021

우리가 맛으로 먹나, 정으로 먹지

단양, 달팽이 텃밭

딸기의 진짜 제철은 지금


딸기를 사 먹었다. 비닐하우스 딸기농장에서 나오는 수확철이 거의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며 한 소쿠리 가득 담았다. 크고 빨갛게 익은 딸기를 한 입에 먹으니 달고 향긋한 과육과 오독오독한 씨앗이 입 안에 가득 느껴졌다. 아마도 올해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딸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씨앗 하나까지 정성스럽게 씹었다.


일반 가정집에서 먹을 수 있는 딸기는 지금이 마지막이지만 사실 딸기의 제철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농가에서 비닐하우스와 난방 시설을 이용해 수확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지만, 노지에서 키우는 딸기는 5월 중순 즈음 제철의 시작이다. 노지에서 키우는 딸기는 추운 겨울을 버텨 월동한 후에 봄이 되면 흰색 꽃을 피운다. 그다음부터 꽃턱이 육질화 되어 열매를 맺고 빨갛게 익어간다. 딸기의 꽃말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하니, '가정의 달'이기도 한 5월 우리 집 식탁에 올려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농장 여행을 다니는 건 제철에 나오는 농작물을 가장 신선하게, 제대로 즐기기 위함도 컸다. 노지딸기를 상업적으로 키우는 농가는 거의 없지만 밭 한편에 자그맣게 키우는 곳들은 종종 있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딸기의 진짜 제철이 시작되는 시기에 달팽이 텃밭에도 딸기 밭이 있었고, 나도 거기에 있었다.


노지에서 키워진 딸기의 맛은 새콤달콤했다. 지금껏 달콤한 딸기만 먹어왔기에 상상했던 맛과는 조금 달랐다. 잠시 갸우뚱하던 마음도 잠시, 두 번 세 번 먹어보니 딸기의 진짜 매력에 빠졌다. 평범한 단 맛이 아니라 새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단 맛을 느끼며 딸기 본연의 맛을 알 수 있었다. 크기와 당도가 일정하고 높게 나오도록 개량된 딸기와 다르게 다양한 감각이 공존하는 맛이었다. 비닐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딸기와 달리, 추운 겨울바람과 봄의 따스한 햇살을 그대로 맞고 자란 노지 딸기는 싱그러움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유난히 새빨간 과육과 알차게 자리 잡은 노란 씨는 노지 딸기의 맛과 멋을 더해준다. 농장에서 마트로 유통되는 과정을 고려해 조금 이르게 수확되는 딸기와는 달리, 가장 알맞은 때에 수확해 바로 먹는 재미도 있었다. 비록 하우스에서 키워지는 딸기보다 크기와 모양은 조금 작고, 볼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생동감 넘치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맛으로 먹나, 정으로 먹지


달팽이 텃밭에는 거의 매일 택배가 왔다. 택배 주문을 많이 시키는 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택배로 선물을 자주 받는 거였다.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우핑(wwoof)을 와서 알게 된 사람, 귀농하기 전 서울에서 알던 관계, 함께 동호회를 했던 친구 등 다양하다. 택배 박스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도 다양하다. 쌀, 커피, 표고버섯, 토마토 등의 식재료와 옷, 바디워시, 샴푸 등 생활용품도 갖가지로 들어있다. 선물 받은 식재료나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 날에는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다.


우리가 맛으로 먹나, 정으로 먹지

식사를 하는데 맛은 중요하다. 하지만 맛만 중요한 건 아니다. 식사를 차려준 사람의 정성, 식재료를 건강하게 길러준 농부의 정성, 식재료를 보내준 친구의 정성 등 많은 이들의 정성이 담겨있다. 우리는 매 식사마다 정성스럽게 먹었다. 토마토 하나에도 숨겨진 맛을 찾아가며 먹었고, 콩을 안 먹던 현노 씨도 밥 안에 콩을 꼭꼭 씹어 먹었고, 밥 한 톨도 남김없이 싹 긁어먹었다. 음식을 전해준 이들의 정을 생각하면 맛으로만 식사를 할 수는 없었다.


우리와 농작물의 관계도 비슷하다. 작은 씨앗부터 시작해 얇고 여린 새싹이 자라 우리의 식탁으로 올려지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해온 농작물에는 특별한 정이 담겨있다. 추운 바람을 잘 견딘 겨울과 긴 장마와 풀에 치이지 않고 잘 자라준 여름, 끝까지 버텨준 가을까지 농작물이 지나온 계절들을 상상한다. 밭에서 투닥거리며 서로의 하루를 지탱했을 농부의 일상을 떠올려본다. 마음속 깊이 고마움과 정이 쌓인다. 쌀 한 톨, 배춧잎 한 장, 딸기 한 알이라도 남길 수가 없었다. 음식을 모두 꼭꼭 씹어 남기지 않는 건 먹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정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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