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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 밭 Mar 27. 2022

작아도 쓸모 있는 감자입니다

논산, 꽃비원

지역 안에서 농산물이 순환할 수 있도록


농부의 일상도, 농촌의 일상도 처음이었던 나에게 꽃비원 농부님과 나눈 대화는 의미가 깊었다. 더 넓은 상상을 가능하게 했고, 동시에 현실적인 고민을 볼 수 있었다.

농부님은 농산물이 지역 안에서 순환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이를 위해 도시로 나가 판매하기보다는 지역과 농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다. 그러면서 파머스 마켓과 꾸러미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꽃비원 농부님) 2년 정도 농부시장을 해 보니까 지역에서는 사실 농부시장 자체는 어렵다는 게 결론이에요. 다들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알리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데 지역에는 그런 과정이나 기반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너무 적은 거예요. 예를 들어 지역 농가의 식재료를 활용한 레스토랑이 있으면 뭔가 시장이 없더라도 굴러갈 수 있는 기반이 되잖아요. 그런데 지역에는 그런 기반 자체가 거의 없고, 파머스 마켓이 일회성으로 열린다고 해도 이게 지속 가능하지는 않죠.


미국에서 파머스마켓을 처음 경험하면서 도시 한복판에서 크게 열리는 마켓이 신기하게 느껴졌다고 하셨다. 나는 서울에서 갔던 마르쉐 농부시장을 통해 파머스마켓을 처음 경험했고, 농장 직거래를 자주 이용했다. 신선한 농산물을 건강한 방식으로 구매한다는 것이 좋았다. 파머스마켓에서 농부님과 대면하며 농산물의 특징이나 레시피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고, 단순히 소비하는 것 이상의 가까운 관계가 형성된다고 느꼈다. 

농부와 만날 수 있는 작은 경험들이 쌓여 농산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으로 오니 주변에 농장은 많음에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는 훨씬 적었다. 도시에서, 지역에서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팜투테이블(Farm to Table)'은 먼 거리였다.


서울에서 열리는 <마르쉐 농부시장>에서 구매한 것들. 지난 몇 해 동안 꽃비원 농가도 마르쉐에 참여하셨다.



선별하지 않습니다.


꽃비원 농부님) 생산자 중심의 생산이라면 1차 생산물 위주로 상품을 진열해야 하는데 거의 다 가공식품 위주로 물류나 시스템에 맞춰 놓고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건 거의 없는 거죠.
샘물) 농산물 유통에 있어서 생산자 중심이 되면 여러 가지로 더 낫겠네요.
꽃비원 농부님) 그러려면 소비자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하고, 지속적인 교육이라던가 농부와의 관계들이 형성되어야 할 텐데 요즘 그런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죠.
샘물) 농부의 마음을 한번 이해하게 되는 경험이 생기면 확실히 농산물 고르는데 입장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저도 어느 날 감자를 사는데 당연히 크고 예쁜 감자를 고르고 있었죠. 그러다 보니 밑에는 작고 막 상처 난 감자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얘네는 팔리지 못하고 썩을 수가 있겠구나 생각이 들어라고요. 사실 다 똑같은 감자인데 말이에요. 그런 걸 한번 깨닫고, 농산물 고를 때 기준을 다르게 두게 되더라고요.
꽃비원 농부님) 저희도 여러 경험을 했지만 지금은 농산물을 판매할 때 '선별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내세우고 하고 있어요. 큰 감자는 큰 감자대로, 작은 감자는 작은 감자대로 드시라고 권하고 있어요. 저희가 감자를 첫 해 생산했을 때 박스 같은 걸 주문하다 보니까 감자를 분류하는 기준이 다섯 가지인가 있더라고요.
꽃비원 농부님) 농산물을 유통하는 회사들이나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준에 따라서 농산물을 분류하도록 하죠. 뭔가 규격화되는 기준들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생산자에게는 엄청 불리해요. 왜냐하면 농산물들이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규격화되면 적재하기도 쉽고, 옮길 때도 쉽고, 여러 가지 편의를 위해 그렇게 하는 건데요. 그런 유통의 복잡한 과정 때문에 생산자들이 엄청나게 노력을 해도 좋은 값을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그런 게 너무 불공평하다는 거죠. 소비자들에게도 (어떤 모양과 크기의 농산물을 고를지) 선택권이 주어져야 하는데 마트에 가면 이미 규격화된 것들로 세팅되어있죠. 그런 것들이 그냥 판매되죠. 전부 대량 생산되는 것처럼요.



사과상자에 맞지 않는 사과는 퇴출되어야 하는 걸까. 규격화되지 않은 농산물은, 그러니까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농산물은 각자의 쓸모가 있다. 큰 감자는 튀김용, 작은 감자는 조림용 등 용도가 다를 뿐 각자에게 알맞은 사용법이 존재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도 어딘가 닮아있는 것 같다. 규격화된 재단에 의해 쓸모를 가늠하고, 거기에 맞지 않는 존재는 외면당한다. 핵심은 소비자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인 것 같다. 배달과 쓰레기가 넘쳐나는 삶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우리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마음에서 시작해 자연과 흙에 가까워지는 시간이 쌓인다면 어떤 농산물도, 어떤 사람이라도 각자의 용도에 맞게 빛날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풀리지 않을 고민이지만 계속해서 시도하고 계신 모습이 든든했다. 파머스 마켓, 농산물 꾸러미, 팜 카페,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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