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움직이는 밭 Apr 13. 2021

농사는 어떤 수단일까

홍성,풀풀농장

3월 중순, 농장 여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난 시기였다. 그간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로부터 자극을 받아 머릿속엔 여러 생각들로 가득 찼다. 하고 싶은 일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너무나 많았다. 농사를 배우고, 농부의 삶을 경험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우핑이었지만 복잡한 머릿속에서 갈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그때 풀풀농장을 찾아갔다. 풀풀농장은 홍성에서 유기농업으로 유명한 홍동면에 있다. 이곳으로 귀농한 이후 직접 집을 짓고, 밭을 갈거나 거름을 주지 않는 자연농으로 농사짓고 계신다. 마침 홍동면에서 우핑 중이던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 빨간 지붕 흙집에서 농부님을 만날 수 있었다.


논밭에 둘러싸인 홍동면. 논밭을 바라보며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농사는 어떤 수단일까?


농부님은 마당에서 깨를 말리고 계셨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나무로 된 문을 열고 흙집에 들어갔다. 아늑하고 포근한 흙의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집이었다.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농부님은 다시 집을 짓는다면 이런 집은 짓지 않을 거라고 하셨지만.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나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드렸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 반쯤은 자급자족하고 싶다는 꿈, 도시보다는 시골의 삶을 느끼고 싶어 떠난 농장 여행. 차근차근 귀 기울여 들어주신 농부님은 공감과 걱정이 섞인 말씀을 해주셨다.


*아래 내용은 그 날의 대화를 기억해내서 재구성했습니다.

저도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관점에서 농사를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농사는 하나의 '수단'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꼭 농사를 지을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네요.


예상 밖이었다. 꼭 농사를 지을 필요는 없다니. 자연농과 농부의 삶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보단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말씀을 먼저 해주셨다. 이미 나와 같은 고민을 하셨고, 먼저 실천하고 계시기 때문에 해주실 수 있는 답변 같았다. 농사를 '수단'이라고 표현해주신 점이 인상 깊었다. 사실은 첫마디를 듣자마자 머리를 친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농사의 목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나에게 농사란 어떤 수단일까 깊이 생각해보았다. 자급자족과 농부에 대한 동경, 시골 라이프에 대한 환상 같은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환경에 해가 덜 가는' 방식으로 먹고살자는 목적이었다. 나에게 농사는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환경운동으로서 수단인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는 도시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어요. 도시에서도,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런 가치를 담아낼 수 있어요. 때론 현실과 이상의 거리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내가 살 집을 짓기 위해 밭을 덮어버리는 것처럼. 그런 순간에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않길 바라요.


너무 한쪽 길만 보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이신 것 같았다. 어찌 보면 극단적이라 할 수 있는 자연농법을 실천하시는 농부님께 들은 조언이어서 더욱 진하게 와 닿았다. 현실적으로 해주신 조언들이 오히려 따뜻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비닐포장 없이 빵을 사기 위해 무거운 용기를 들고 다니고, 골목길에서 플로깅을 하고, 주말 아침잠을 포기하고 나무를 심으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과자를 먹은 후 쌓여있는 비닐 쓰레기나 달콤한 탕수육 앞에 무너져 고기를 먹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 괴리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었다. 가끔씩은 생각이 많아지거나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비건을 지향하고, 쓰레기를 줄이려 의식하는 생활을 이어나갈 용기를 얻은 날이었다.




도시에 살아도, 시골에 살아도, 농사를 지어도, 농사를 짓지 않아도.
각자의 영역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원하는 걸, 조금 더 좋아하는 걸 하면 된다. 어떤 선택지에서도 자유롭게 방법을 찾아갈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갖자.



작가의 이전글 작아도 쓸모 있는 감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