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 하신다고요? 대단하시네요.
3년 전 부모님은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사를 가셨고, 나도 작년 연말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강릉으로 이사를 갔다. 늘 사람들이 북적이는 관광지여서 꿈꿔왔던 시골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도시와는 다를 거라 생각했다.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되면 조금 더 자연에 가까운 삶을 사는 줄로 알았다. 약 2달 정도 강릉에서 지내보니, 시골(지역)과 자연 친화적인 삶의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을 자주 해야 했고, 자차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고, 일회용 쓰레기의 사용이 늘었다. 물론 서울보다는 사람이 적고, 건물이 낮기 때문에 조금 더 한적한 분위기는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것과 자연 친화적인 라이프의 의미는 전혀 달랐다.
풀풀농장의 농부님은 자연농을 한다고 하면 흔히 듣는 말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대단하시네요." 엄청나게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 거라는 선입견을 포함해서다. 자연농을 하게 되면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환경에 훨씬 이로운 일을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을 자연 친화적인 삶과 연관 짓는 건 다른 이야기다. 앞서 말했듯 농사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 그분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고민하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사람일 것이다.
시골은 21세기의 블루오션
북적이는 사람들과 촘촘히 모여있는 건물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하늘. 이런 서울생활에 지칠 때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즐겨보곤 했다. 몇 번이나 돌려 볼수록 시골 라이프에 대한 환상은 커져갔다. 귀농한 지 10년이 넘은 농부님께 시골생활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시골은 돈 빼고는 모두 있는 곳이에요. (웃음) 대신 돈의 부족함을 마을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공동체를 통해 메꿀 수 있죠. 시골에서 살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요. 그래서 전인적 인간이 될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자존감, 내 인생에 대한 주체성을 느끼죠. 시골은 21c의 블루오션이에요.
강릉에서, 그리고 농장 여행 중 짧게나마 느꼈던 시골 라이프에서 '리틀 포레스트'같은 건 없었다. 그저 살아가는 환경이 바뀔 뿐 어떻게,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는 개인의 몫이었다.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골에서 살고 싶다. 아직 발자국이 남지 않은 눈길에 첫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랄까. 흙을 마음대로 밟으며 흙투성이가 되어도 괜찮은 곳에서 나만의 포레스트를 만들어가고 싶다.
풀과 아름다운 공존
자연농은 아직 나에겐 생소한 단어다. 풀을 뽑거나 비료를 주지 않아도 농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믿기지 않았다. 자연농이란 개념을 처음 알게 된 건 구례에서 강수희 님을 만났을 때였다. 구례에서 우핑을 하던 중 우연히 인스타그램으로 수희 님을 알게 되었고, 같이 우핑을 하던 친구에게 함께 만나러 가자고 했다. 알고 보니 수희 님은 자연농을 하는 농부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자연농(Final Straw)>의 감독님이셨다. 만나러 가기 전, 매우 들뜬 우퍼 태원이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감상했다. 다큐멘터리와 수희 님의 이야기를 통해 접한 자연농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풀풀농장의 농부님은 집 앞에 있는 밭을 보여주시며 자연농에 대해서 소개해주셨다. 어느 것이 작물이고, 어느 것이 풀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나에게 하나하나 짚어주시며 설명해주셨다.
밭을 갈지 않는다 :: 보통 풀을 뽑고, 비료를 땅 속에 넣기 위해 밭을 갈지만 자연농은 풀과 공존하는 농법.
풀과 공존한다 :: 풀은 풀로 없앤다. 봄에 풀을 뽑지 않으면 여름에 새로운 풀이 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다루기 수월하다.
풀은 햇빛 저금통이다 :: 한여름에 받았던 햇빛 에너지가 풀의 뿌리로 흡수되어 땅에 전달된다. 그 에너지는 내년 농사에서 이용될 수 있다. 하지만 풀을 뽑게 되면 햇빛 에너지는 흙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그냥 흙을 마르게 할 뿐이다.
풀과의 공존은 사람과 공존으로 이어진다 :: 자연농은 각자 필요한 만큼의 밭만 농사지을 수 있다. 결국 어느 한쪽이 독점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이 공존하며 농사지을 수 있다.
3m 농법 :: 비료는 흙의 30cm까지만 도달할 수 있지만 풀의 뿌리는 땅의 3m까지 에너지가 닿을 수 있다.
풀과의 전쟁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자연농과 일반농(혹은 유기농)으로 나뉘는 것 같았다. 일반적인 농법에서는 총, 칼로 무장해서 엎어버린다면 자연농에서는 적과의 동침, 공존을 통해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느낌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최근 풀무학교 전공부 학생들이 토양 조사를 했는데 다른 밭에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질소, 인산, 칼륨 등이 측정되었다고 하신다. 흙이 어느 정도 좋아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직접 가서 본 풀풀농장은 풀들이 풀(full)하게 많은 곳이었다. 낯설었던 풍경이 이제는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곳에 우리를 살게 해 줄 수많은 에너지가 모여 있겠구나. 농부님들도 우리와 같이 고민하고, 갈등하겠지만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분들일 것이다. 이제는 자연농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이런 감탄사가 나올 것 같다. 자연농 하신다고요? 아름다우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