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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 밭 Apr 17. 2021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는 당신에게

홍성, 논밭상점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는 당신에게


점점 생기있는 자기 색을 드러내는 꽃과 나무들을 감상하며 봄을 맞이하고 계신가요? 허전했던 논밭이 초록색으로 가득차는 것을 바라보며 봄이 왔구나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홍성역에서도 버스로 40분 이상을 달려 도착한 이곳 홍동면은 온통 논밭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허브를 기르는 농장의 이름이 '논밭상점'이라는 것이 이해되는 풍경이죠. 매일 비닐하우스에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 노을빛이 비친 논밭 풍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합니다.



저의 하루는 진짜 농부보다 조금 늦게 하루가 시작됩니다. 8시에 집 바로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출근을 하는데요. 아직은 인턴농부라고 할 수 있는 저를 배려해주신 거예요. 이미 한시간 전부터 출근해 있는 진짜 농부, 농장 직원 분이 고수를 따고 있습니다. 저도 옆에서 허브를 함께 수확하거나 포장 작업을 돕습니다. 10시쯤 새참을 먹고, 서둘러 포장 작업을 마무리하면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농산물이 판매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많아요. 수확하는 것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판매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 농장에서 가정집의 식탁까지 전달되는 과정에 생각보다 많은 손을 거쳐간다는 것, 가장 빠르고 신선하게 먹기 위해서는 농장 직거래가 최고라는 것. 자꾸 농장으로 찾아가야하는 이유가 늘었습니다.


농장의 시간은 도시의 다른 곳 만큼이나 바쁘게 흘러갔어요. 대부분 새로 들어온 주문을 위해 허브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계속 했는데요. 화분에 심어진 펜지꽃의 시든 부분을 다듬고, 물을 주거나, 파종을 위해 씨앗을 심거나, 화분을 만들기도 했어요. 해야하는 일은 항상 많았고, 어떤 점에서는 도시보다 더 치열했죠. 자연은 매순간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자연과 가까운 삶 또한 그랬어요. 시골에 가면 여유롭게 산을 바라보며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영화 속 한 장면에 불과했던 거예요. 어디서 사는지 보다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주문 물량이 너무 많지 않은 날이면 늦은 오후에는 힘 센 강아지 두마리와 산책을 합니다. 덕자와 작덕. 둘은 모녀 관계에요. 거의 끌려다니는 것처럼 논밭 사이를 뛰놀면 지금 시골에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골목길이 아닌 논밭을 가로지를 때, 논밭 너머로 계속 논밭이 이어질 때, 저녁 8시만 되어도 거리에 어떤 빛도 보이지 않을 때, 버스 배차간격이 한시간 이상인 것을 확인하며 읍내 나가는 것이 큰 일처럼 여겨질 때. 농부 님은 기운이 빠지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어김없이 밭에서 김매야했던 날에 시골에 있다는 걸 실감하셨다고 해요. 우리의 상태와 관계 없이 풀은 자라고, 자연의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 진짜 농부의 삶인가 봅니다.


자연은 매순간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자연과 가까운 삶 또한 그랬어요. 어디서 사는지 보다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논밭에서 배웁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는 판매할 수 없는 꽃과 허브를 버리고 수레를 비워냅니다. 하나 하나 소중한 아이들인데 버려지는 것이 마음이 아팠어요. 거의 평생을 농사 지으며 살아오신 농부님은 농사를 인문학에 비유하셨어요. 자신만의 철학과 내공을 가지고,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판매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버릴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논밭에서 마음을 버리고 내려놓는 것을 배웁니다.


일을 많이했던 날에는 농부 님과 근처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의 관점과 진지한 대화 말고도 실없는 농담, 여행담, 서로의 수치스러운 추억들과 연애담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죠. 논밭에서든 맥주집에서든 우리는 서로를 그냥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서로를 지칭하던 어떤 수식어도 따라붙지 않은 채로요.


논밭에 둘러싸여 지내는 동안 저는 그냥 사람으로 존재했습니다. 과장하여 어떤 수식어를 붙이거나 거대한 목표를 내세우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옷에 흙이 묻어도, 조금 더러워져도, 얼굴이 타고 주근깨가 생겨도, 옷이 헤져도, 이상하게 웃어도 괜찮았습니다. 괜찮은 일이 늘어난 이곳에서 자연스러운 저를 발견할 수 있었고, 어느 곳보다 더 편안했습니다. 이제는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어떤 곳이라도 저만의 포레스트를 꾸려나갈 용기를 얻었거든요.


당신은 어떤 포레스트를 꿈꾸나요? 아파트에 있는 베란다여도, 집 뒷켠에 있는 작은 흙밭이어도 괜찮아요. 어떤 곳이라도 우린 서로 각자의 밭을 가꿔나갈 수 있으니까요.


이제는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어떤 곳이라도 저만의 포레스트를 꾸려나갈 용기를 얻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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