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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작가 Dec 03. 2019

엄마보다 쉬웠던 아빠 육아휴직 신청

27개월 아들과 시작하는 아빠 육아

한국도 이제 좀 바뀌어 가는 것 같다. 공중파 TV 광고에서 아빠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내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유럽의 '라테 파파'의 바람이 한국에도 불어오는 것일까. 그냥 그런 듯 보이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회사에는 육아휴직을 쓰는 남자 직원들이 요새 들어 많이 늘고 있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내가 육아휴직을 아무 어려움 없이 쓸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아래와 같이 크게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 회사 특성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독일계 회사이다. 독일 본사는 공무원에 자주 비교될 만큼 여러 가지 면에서 편하고 체계가 잘 잡혀 있으며 복지가 좋은 곳이다. 전 세계에 뻗어 있는 지사들도, 그리고 내가 근무하는 한국지사도 비슷한 문화와 복지체계를 갖추고 있다.


휴가를 쓰는 것도 간단하다. 포털에 접속해 날짜를 지정해 휴가를 올리고, 팀 동료 및 프로젝트 관련 있는 인원들에게 부재 예정 공지 메일만 띄우면 된다. 사전 허락도 필요하지 않고 구체적인 이유를 밝힐 필요도 없다. 또한 주 1회에 한해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이는 미리 공지만 하면 된다. 금요일만 되면 많은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신청해 집에서 일을 한다.


육아휴직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포털에서 연차 대신 '육아휴직'을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기간을 설정하고, 증빙서류를 첨부해 제출만 하면 된다. 물론 그전에 부서장과 면담을 통해 계획을 나누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나의 공백 기간 동안 내 일을 대신 봐줄 동료와 사전에 말을 맞춰 놓으면 한결 쉽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규정만 잘 지키면 대부분 수용해 주는 상사와, 기꺼이 내 공백을 메워 주겠다는 사수가 있었다.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부서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 적어도 우리 회사가 동종 업계에 비해 업무 강도가 약하고 복지가 비교적 좋다는 것은 대부분 직원들이 동의하는 사실이다. 휴가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론 단점도 많다.)


2. 회사(업계 비즈니스)의 특수한 상황

자동차 업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요즘처럼 불안한 시기가 없다. 모든 곳에 전동화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을 거야' 라던 생각을 비웃듯 전 세계 유명한 OEM들은 전기차 출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테슬라의 공이 크다. 이런 상황은 자동차 부품업계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우리 회사는 전 세계 자동차 부품 회사 중 넘버 1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지만, 이런 큰 물결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회사의 전략과 상황도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있다. 경영진들의 날카로운 소식도 많이 들린다.


위협을 감지하면 몸을 움츠리듯, 경제위기 또는 비즈니스 수익성 악화가 시작되면 회사들은 비용을 줄인다. 가장 먼저 즉각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고정비용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건비다. 그러나 회사가 어렵다고 바로 줄일 수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때 육아휴직은 좋은 대안이 된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해당 기간 동안 회사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은 국가에서 회사 대신 정해진 만큼 매월 수당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직원 한 명의 일 년 고정비가 1억이라고 하자. 그 직원이 육아휴직을 1년 동안 쓰게 되면 회사는 1억의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나의 육아휴직 신청은 회계부서의 반가운 소식이 되었다. 물론 비용을 관리하는 부장님 에게도.



3. 프로젝트 매니저 업무의 특성

프로젝트 매니저. 나의 업무이자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선정되면 그에 맞는 팀원들을 구성하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일이다. 전반적인 프로젝트 기간 동안 비용, 시간, 품질 관리를 한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의 꽃은 바로 양산이다. 3년 정도 프로젝트를 잘 운영하면 마침내 양산 승인을 받을 수 있다. 그때부터는 진짜 돈을 벌어들이는 시기이자 프로젝트 매니저의 가장 큰 역할이자 책임을 완수한 것이 된다.


이때부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생긴다. 양산 후에 자잘한 업무들을 챙기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이 기간은 항상 다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미리 시작할 수도 있고, 끝내자마자 바로 다시 새로운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번에 나는 운이 좋게도 약 3~4개월 정도 여유 있는 기간이 생겼다. 팀에 큰 부담 없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 공백을 대신 봐줄 사수의 부담도 많이 줄어든다. 그렇게 나는 현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고 5개월의 육아휴직을 홀가분하게 시작했다.


육아휴직과 5개월,

내가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는 듯이 말을 했다. 회사 밖의 사람들은 더욱 그렇게 나를 대했다. 동시에 회사에서 불이익당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 심지어 나의 아내도. 하지만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쉽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팀과 상사에 대한 신뢰가 있다. 육아휴직 또한 내 권리인 만큼 누구 눈치 보지도 않고 당연한 권리를 행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불이익이 예상되고, 팀 동료들의 험담을 참으면서도 꿋꿋하게 육아휴직을 쓰는 아빠들이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이 박수받아 마땅하다. (아, 물론 임신, 출산, 육아를 오롯이 감당하는 엄마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로 위대한 존재들이다. 진심으로.)


육아휴직을 망설이고 있는 아빠들이 있다면 나와 함께 라테 파파가 되어 보았으면 좋겠다. 나도 아직은 육아휴직 2일 차라 아무것도 제대로 해낸 게 없다. 그러나 5개월 뒤에는 정말 육아휴직 잘 썼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그 시간들을 알차게 꽉꽉 채워 보려 한다. 아내도, 아들도 나도 행복한 시간들로 말이다. 일단 육아에 좀 더 기여할 방법의 첫 단계로 아들 어린이집 등원을 모두 내가 맡았다.

아빠 육아휴직이래~~신난다~


자, 5개월 육아휴직을 썼다. 이제 그 후가 더 중요하다. 직장생활 8년 차에 찾아온 5개월의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어떻게 아들과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더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 어떤 추억과 성과를 남기고 성장해야 할까. 어떻게 더 육아에 기여할 수 있을까. 다음 글에는 그에 대한 생각을 써보려 한다.


*육아휴직 관련 정보는 아래 링크에 들어가 보시면 자세히 안내되어 있습니다. (새롭게 바뀐 '아빠육아휴직 보너스제'에 관해서도 잘 나와 있으니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https://www.ei.go.kr/ei/eih/eg/pb/pbPersonBnef/retrievePb0302Inf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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