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북엔돌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쌤작가 Sep 01. 2020

다이너마이트 인간, 니체

<니체의 삶>

올해 초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으며 사랑받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도 한번 보고 나서는 계속 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요소를 갖춘 드라마였다. 그중에 특히 나의 눈길을 끈 장면이 있었는데, 극 중 조이서가 박새로이에게 책 속의 한 구절을 읽어주는 장면이었다. 


용기는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 공격적인 용기는,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이렇게 말함으로써 용기는 죽음까지 죽여 없애준다.


죽음의 고비에서 주인공 박새로이는 이 말을 기억하며 다시 생의 의지를 다짐하는 장면이었다. 이 말은 극 중에서 조이서가 어느 책을 펴고 읽는데, 그 책이 바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다. 


'니체'라는 독일 철학자를 아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학창 시절 스치듯 들어 보았거나 인문학 관련 미디어에서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이름. 나 또한 스치듯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독일의 철학자 '니체'. 그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철학자가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책 <니체의 삶>을 읽으며 인간 프리드리히 니체가 어떤 과정으로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는지 그의 삶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위대한 철학자는 어떻게 탄생하는지, 역사에 남은 위대한 인물이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니체의 철학의 핵심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

https://en.wikipedia.org/wiki/Friedrich_Nietzsche


1. 영원회귀

오히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 자기 자신이 되려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어떤 성향이 있다면, 그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을 할 것이고, 이는 반복될 것이다. 만약 삶이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긴 선이고, 인간이 이 선의 어느 한 지점에 있다면, 그가 거기 있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따라서 이성이 있는 인간은 언제까지 반복될지 모를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이 순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니체는 실바플라나 호숫가에서 그가 나중에 '차라투스트라 바위'라고 부근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며 처음 '영원 회귀 사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영원회귀 사상은 같은 것이 똑같은 모습으로 계속해서 반복되고 그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순간, 모든 것이 중심점이 되며 각 순간이 과거와 미래를 응축시킨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순간'에 있다. 


영원히 반복되는 이 순환에서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 그 순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것도,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에 누구를 탓하거나 비난하거나 상심할 일도 아니다. 오직 그 순간에 진정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니체는 말한다. 그것이 시간의 수레바퀴 혹은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2.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나무뿌리가 암반을 깨뜨리는 것이 힘에의 의지다. 얼음이 팽창해서 절벽을 가르고 해안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 것이 바로 힘에의 의지다. 힘에의 의지는 궁궐 지붕의 기와에 낀 미세한 이끼 포자에도 있다. 급 팽창한 이끼 포자는 하인들이 놀라 양동이를 들고 뛰어다니게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지붕이 내려앉게 하거나, 혹은 집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힘에의 의지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힘에의 의지는 권력의 의지로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니체의 삶을 생각해 보았을 때 권력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그 보다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타인의 요구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이루어 가는 의지가 더 자연스럽다. 권력이나 대표적 숭배의 대상인 신에 압제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힘이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가 아닐까. 



3. 위버멘쉬(Übermensch , overman, 초인)

위버멘쉬는 니체가 미래를 위해 마음속에 그린 강력한 인물이고, 유럽의 타락과 교회의 지배 아래 탄생한 도덕적, 문화적 소인배에 대한 해독제이다. 그는 신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회의론과 허무주의에 굴복하지 않는 인물이며, 종교에서 벗어난 자유로 자신의 삶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종교적 믿음에서 벗어났듯 그 믿음을 과학으로 옮겨가기도 거부한다. 위버멘쉬는 안정된 세상을 느끼기 위해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글로는 초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나 초인으로 단순히 번역하기에는 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인지 <니체의 삶>에서는 원문 그대로 위버멘쉬라고 번역하고 있다. 위버멘쉬는 니체가 신을 죽이고 그 자리에 세우려고 했던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니체의 삶의 전반을 읽어보면 결국은 니체 스스로 위버멘쉬가 되길 원했고 결국 그러한 경지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은 항상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수많은 책과 명언을 남긴 것을 보면 니체 스스로 위버멘쉬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 나오는 위버멘쉬(Übermensch , overman, 초인)는 존재하지 않는 목적지로 여행하는 자로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삶을 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생의 불확실성과 무상함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자유를 얻는다. 그는 생각의 진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새벽을 언제나 환영한다. 이상, 혹은 신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실존에 대한 고뇌는 해결될 수 있다고 그려진다. 

위버멘쉬는 이상적인 인간임에 틀림없다. 불확실성과 무상함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고, 자유를 만끽하며 새로운 진화를 가져오는 생각, 관념을 퍼뜨리는 그런 존재. 존재하지 않는 목적지로 삶의 여행을 즐기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를 더 자유롭고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자유롭고 그 무엇에 기대지 않은 강한 사람. 만약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같은 인물이지 않을까.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우정과 사랑을 알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 나갈 줄도 아는 그런 자유로운 사람 말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 말이 아마 가장 유명의 니체의 말일 것이다. 고통과 역경을 극복하면 스스로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니체의 삶>을 읽어보면 이 말이 그렇게 간단히 나온 게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니체는 평생을 어마어마한 신체적 고통 속에서 살았고 그 과정을 하나하나 극복해 가며 스스로 위버멘쉬가 되는 길을 택했다. <니체의 삶>을 읽으며 그의 생애를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명받고 배운 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가. 


위대한 사람은 그만큼의 큰 벽을 넘어선 사람이겠지만, 벽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아무나 그 벽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니체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뇌 연화증'이라는 질병으로 사망했다. 유전의 영향으로 니체의 건강은 어릴 적부터 좋지 않았다. 특히 그의 눈이 문제였다. 

어릴적 니체 / https://en.wikipedia.org/wiki/Friedrich_Nietzsche
니체는 예민한 눈을 보호하기 위해 뿌옇게 만든 안경을 쓰고 다녔다. 학교 의사가 나중에 완전히 실명할 거라고 진단했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방법 말고는 달리 희망적인 생각을 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 니체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와 암울한 진단에 자극을 받아 슐포르타에서의 모든 순간을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는 배움에 대한 욕구가 누구보다 뛰어났다.


언젠가 내가 실명할 거라고 진단을 받으면 어떤 마음일까?? 상상도 하기 힘들 만큼 절망적일 것이다. 니체에게 언젠가 실명할 거라는 의사의 말은 그의 배우려고 하는 욕구에 불을 지폈다. 니체는 학창 시절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데드라인을 설정할 때 좀 더 효율적이고 열심히 하게 된다. 언젠가 실명한다는 사실은 거역할 수 없는 데드라인이 아니었을까. 


에를랑겐에서 보낸 첫 일주일간, 니체의 병세는 거의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때 처방받은 약인 질산은과 아편, 탄닌산 관장제는 당시에는 일반적인 치료제였지만, 환자의 장기에 평생 영향을 줄 만큼 치명적이었다.


그는 장기 손상과 황달, 불면증, 구토, 치질, 구강 출혈에 시달리느라 몸도 괴로웠고, 전쟁의 기억이 심어준 공포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전쟁에서의 경험, 잘못된 약의 복용으로 니체의 건강은 점점 더 나빠졌다. 시력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는데 특히 밝은 빛은 큰 고통이었다. 니체는 대부분 어두운 방 안에서 생활했다. 외출할 때에는 두꺼운 초록 안경으로 눈을 보호하고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시력이 너무 나빠져 나중에는 책을 읽기가 힘들어졌다. 대학에서 문헌학 강의를 하던 니체는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자 그의 조력자가 책을 대신 읽어주고 니체는 필요한 부분을 머릿속으로 기억했다. 니체는 절망했을지언정 포기하지 않았고 시력을 탓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방법을 찾아 나갔다. 안 좋은 시력을 딛고 그는 또 나아갔다. 


내 병은 내 모든 습관을 완전히 바꿀 권리를 주었다. 내 병은 내가 망각하기를 허용했고, 요구했다. (...) 내 눈은 책벌레와 관련된 모든 습관에 작별을 고하게 했다. 쉽게 말해 문헌학과 작별 인사를 고했다. 나는 '책'에서 벗어났다. (...) 그것은 나에게 내린 최고의 축복이었다! 제일 밑바닥에 있던 나 자신, 끊임없이 다른 자아의 목소리를 듣느라 침묵을 강요당했던(독서를 말한다!) 나 자신이 수줍어하며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서서히 깨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쁜 시력으로 인해 책과 작별할 수 있었고,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았던 문헌학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철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보통 인간의 한 가지 감각이 무뎌지면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 니체는 시력을 잃은 대신 내면세계가 더 성숙하고 진화했다. 자아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책에 얽매이지 않았다.


나는 아포리즘에 숙달한 최초의 독일인이다. 아포리즘은 영원성이 부여되는 형태이다. 나의 야심은 다른 사람들이 책 한 권으로 말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책 한 권으로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열 마디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다.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탐험' 51절


나중에는 글을 쓰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주로 대필자를 고용했는데 항상 대필자를 찾을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그러다가 만난 매력적인 프랑스의 여성 레의 우아한 잠언식 문체에 자극을 받았다. 하루 종일 반복되기도 하는 극심한 신경통에 매일 생각하고 읽고 쓸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간결하고 짧은 잠언식 문체에 니체는 매력을 느꼈다. 이러한 잠언식 문체로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을 썼다. 건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짧고 강렬한 방식의 문체는 니체를 독창적인 사상가로 거듭나게 했다. 



니체는 실스마리아를 열렬히 좋아하지는 못했다. 아픈 날이 많아서였다. 7월과 9월에는 거의 벼랑 끝에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정망적이네. 고통이 내 삶과 의지를 집어삼키고 있어... 다섯 번이나 죽음의 의사를 불렀다네." 니체는 오버베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생각도 깊어져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각들이 떠오른다."고도했다. 자신을 폭발할지 모르는 기계라고 말한 그는 정말로 8월 초에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적 이분법을 떠올린 이후 처음으로 폭발적인 생각들을 떠올렸다. 실바플라나 호숫가에서 그가 나중에 '차라투스트라 바위'라고 부른 피라미드 보양의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영원 회귀 사상'을 생각해냈다.


https://en.wikipedia.org/wiki/Friedrich_Nietzsche / 차라투스트라바위


니체의 고통은 점점 더 깊어졌다. 동시에 그의 생각과 사상도 더 강하고 진해졌다. 니체는 어두컴컴한 숲 속을 헤치고 다니며 영감을 받을 때마다 작은 수첩에 휘갈기듯 메모를 했다. 길게 지속되는 고통이 잠시 멈춘 사이에 생각을 남기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니체는 사방이 확 트인 야외에 있을 때 생각들이 가장 잘 떠오른다고 했다. 몇 시간씩 야외를 걸어 다녔고 그러던 중 수많은 영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에 담긴 생각 들고 힘든 행군 중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니체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났는데, 그가 가장 사랑 한 곳은 니스, 실스마리아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고향으로 토리노를 삼았다. 니체가 처음 토리노에 갔을 때 그는 마음의 여유와 자유, 자긍심을 느꼈다. 일시적이었지만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에게 토리노는 완벽한 곳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니체는 곧 정신적 이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행복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이어 그는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와 문장들로 이상한 말을 쏟아냈다. 그러는 사이에도 바보스럽고 외설적인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피아노 앞에 달려가 격렬하게 감정을 분출했다가도 갑자기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춤을 추었다.


니체의 오랜 진정한 친구인 오버베크는 토리노로 니체를 만나러 왔다. 니체는 오버베크를 부둥켜안고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누구보다 사랑한 사람은 '오버베크 자네' 였다고 니체는 말했다. 


그는 자신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건강한지 말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렇다. 그는 건강상에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단지 '일종의 지엽적 퇴화'로 인한 결과였다. 이 작은 지엽적 퇴화가 전반적인 피로감과 위장 계통을 약화시켰고, 그를 육체적, 정신적 면에서 극한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덕분에 관점을 완전히 뒤엎는 기술과 지식을 얻었다. 니체는 자신을 상처 입은 의사에 비유한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사회에 대한 걱정과 관심으로 바꾸어 놓은 의사였다. 오직 그만이, 그 상처 입은 문화적 의사만이 모든 가치의 전도를 이뤄낼 수 있었다.


니체가 평생에 걸쳐 겪은 고통은 인간이라면 견디기 너무 힘든 고통으로 니체를 내몰았다. 그는 그 고통으로 죽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 거의 맹인에 가까운 시력으로 인해 사물을 일반인과 같이 보지 못했던 그는 사물의 본질을 보려 노력했다. 아주 잠깐만 주어지는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니체가 아포리즘식 글을 쓸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그의 정신적 제약은 그를 더 뛰어나고 독창적인 사상가도 만들어 주었다. 



니체의 마지막


결국 니체는 정신이상이 심해져 결국 어머니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거의 감금당하다시피 11년을 정신이 이상한 상태로 지냈다. 그동안 자신의 동생 엘리자베스에게 철저히 이용당했다. 마침내 유명해진 니체의 책 들고 그녀는 많은 돈을 벌여들였고 니체의 글들을 짜깁기 해서 자신의 민족주의 이념을 뒷받침하는 데에 사용했다. 니체가 그렇게 경멸했던 것이 민족주의였음에도 말이다. 그녀는 니체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니체의 책과 글을 잘 이용해먹었다. 결국 히틀러로 대표되는 독일의 반유대주의와 민족주의에도 이용되었다. 


니체는 이런 일을 예견이라도 했듯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언젠가 자격 없는 사람들이,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의 권위를 들먹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구나." 니체는 엘리자베스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인류의 모든 위대한 스승이 겪은 고통이다. 그들은 상황과 사건을 고려할 때 자신이 인류에게 축복이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나는 내 운명을 안다. 언젠가 내 이름은 어떤 놀라운 회상과 관련될 것이다. 지상에 한 번도 없었던 위기, 가장 깊은 양심과의 충돌, 이제까지 믿고 요구되고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반하는 결정에 관한 회상과 접목될 것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니체가 점점 정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이러한 고통을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일까.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확장하고 자아를 발견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일까? 내 일상의 작은 고통도, 작은 벽도 제대로 넘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나도 극복할 수 있을까?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자아를 발견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위버멘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