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남편 안티팬 1호가 되다.
한집에 산지 오래된 남자가 당당하게 나의 약점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안티팬 1호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츤데레남편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연예인도 아닌데 무슨 안티팬이냐고요?
제가 작년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관심 없는 척하더니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시간이 나면
어느 날부터 글을 써야 한다고 남편에게 관심을 살짝 덜어냈더니 대뜸
"당신 글은 반찬가게에서 파는 반찬들 같은 맛이나"라는 평가를 했습니다.
"뭐라고요?"
"당신이 반찬가게에서 사 오는 반찬은 재료들은 달라도 양념이 비슷하니까 맛이 거의 다 똑같아.
당신 글도 특징이 없어. 개성이 없는 비슷한 글들이야."
띠~~~~~~~~~~~~이잉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큰 충격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마누라가 틈틈이 올리는 글들을 전혀 관심 없는 척하더니 시간 날 때마다 들어가서 읽어본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남편에게 왜 저는 반박을 할 수 없는 것인지...
혼자 뒤돌아 곱씹어 보니 전혀 아니라고 부정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배운 것도 아니었고, 일기처럼 일상을 적는 글을 시작하였다가 온라인 세상에서
선생님을 만나 온라인 사이트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이웃들의 좋은 글을 읽으며 스스로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저의 모습에 혼자서 대견해하는 아기의 걸음마 수준이었던 것이지요.
1일 1포의 힘이 저를 단단한 글쓰기 근력을 키워줄 거라는 희망으로 여기며 매일 나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소하게 적어나가고 있었던 저에겐 처음으로 다가온 강한 피드백이었고,
망치소리 같은 울림이었습니다.
남편의 느닷없는 충고는 한 여름날 우산도 없이 가다가 쨍쨍한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부어 어디로 피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그런 느낌이랄까요?
한동안 말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안티팬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안티팬(Antifan)은 흔히 특정한 텍스트에 대한 강한 반대를 보이는 수용자들을 지칭한다
(Duffett, 2013). 그러나 이는 단순히 불만이 있는 시청자를 지칭하는 용어는 아니다.
안티팬들은 사실상 팬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안티팬은 바로 이러한 애호적 비판자의 반대상으로서의 증오적 비판자 (hating critics)로 파악한다
(Duffett, 2013, pp.48~51). [네이버 지식백과] 안티팬 (팬덤 문화, 2014. 4. 15., 홍종윤)
안티팬이 팬과 비슷한 존재들이라는 관점에서는 한국의 한 웹사이트에서 만들어 배포한 “안티가 하는 일”
이라는 분석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안티가 하는 일은 루머 및 조작, 악플 달기 등이 있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팬 활동과 같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티팬 (팬덤문화, 2014. 4. 15., 홍종윤)
굳이 긍정으로 해석을 해보고자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니 그중에서 안티가 하는 일은 악플 달기도 있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팬 할 동과 같다는 뜻이었습니다.
함께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니 남편은 닭살 돋는 멘트나 애정표현을 과하게 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던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츤데레 남편인 것입니다.
마누라가 하는 일은 대체로 지지를 해주고 기꺼이 기사 노릇도 자처하는 편이라 그 부분에서 저는 남편을
정이 많고 따뜻한 남자라고 인정하고 있었기에 살가운 멘트를 해주지 않아도 무의식 속에 늘 저를 응원해
주는 나의 편이라 생각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의 글이 반찬가게에서 사 오는 비슷한 맛이 나는 반찬들과 같다는 여과되지 않은 직설적 표현을
해주니 아주 많이 당황했던 것입니다. 나의 글을 응원해 주는 진정한 팬이 생기기도 전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안티팬 1호가 생겼습니다.
아무도 해주지 않는 현실적이고 지극히 객관적인 비평을 해준 츤데레 남편이 몹시도 당황스럽고 서운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내게 꼭 필요한 팬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나의 글에 대해 이렇게 표현해 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사실 평가를 받을 만한 글을 써 본 적이 없기에 저의 일기장이라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의 50대 후반 퇴사 후에 무얼 하며 지냈는지 나의 과거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훗날 색이 바랜 사진첩을
보듯이 그렇게 내가 기록하는 일상의 기록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기를 기대했던 것인데 살짝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일상의 글쓰기를 시작하고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져 보게 되었습니다. 무관심보다는 독설이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낫다고 스스로를
당당한 안티팬이라 말하는 츤데레 남편이 정말 고마운 걸까요?
갑자기 나태주 시인의 사랑에 답함이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싦은 것도 잘 참아 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뜬금없이 나타난 저의 안티팬 1호 츤데레 남편의 대처법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고민하며 해결해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