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이 되어가는 엄마
친정엄마를 모시고 목욕탕을 다녀왔습니다.
오래전 명절이 가까워지면 엄마는 온 가족들을 데리고 단체로 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벗기는
연중행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올망졸망한 딸들은 엄마를 따라 여탕으로 들어가고,
막내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남탕으로 들어가는 행사였습니다.
시골에 목욕탕은 하나뿐이었던 때인지라 명절이 다가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목욕탕에 와서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뜨거운 온탕에서 때를 불리고 있으라는 엄마의 명령에도 딸들은 냉탕 온탕을 오가며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깔깔거리고 놀았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이렇게 차례대로 엄마손에 끌려가 피부가 빨갛게 될 때까지 이태리타월로 때를
박박 밀고 나면 엄마는 노란 바나나 우유를 하나씩 사주셨습니다. 젖은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한 채
목욕탕을 나오며 먹던 노란 바나나 우유의 맛은 정말 달콤하고 신나는 맛이었지요.
아직도 목욕하고 나서 먹는 바나나 우유의 맛을 잊을 수가 없는 이유는 아마도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가던 목욕탕에 대한 그리운 추억이 함께 담겨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이후부터 목욕탕 문화가 사라져서 집에서 간단한 샤워가 일상화되었었는데 ,
엄마가 저희 집에 머무시는 동안 명절을 맞이하게 되어 저는 엄마를 모시고 동네 목욕탕을 다녀
오게 된 것입니다.
기존에 있던 동네 목욕탕은 찜질방을 모두 없앤지라 규모가 아주 작아졌습니다.
예전 시골 목욕탕 마냥 아주 작은 탕 두 개가 전부인 목욕탕 안에는 명절 준비를 끝내고 온 사람들인지
부모님 댁을 방문한 방문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전히 때를 밀어주는 세신사 분들이 계시고
내 또래의 아주머니들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엄마는 허리수술을 받으시고 병원에 오래 계시는 동안 치매라는 반갑지 않은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평소 활달한 성격에 중장년 배드민턴 선수단에서 선수로도 활동하시고, 벨리댄스 동호회
발표회에서도 가장 중앙인 센터에서 빛나는 몸놀림을 보여주셨던 분이시라 딸인 저에게도
엄마 본인께서도 쉽게 치매를 받아들이시지 못해 약을 드실 때마다 나이 들어 머리 좋아지는 약이라며
속이고 약을 드시게 했습니다.
초기치매 판정을 받으신 이후로 예전 기억은 곧잘 소환하시지만 단기 기억들이 흐려지셔서 대문
열쇠를 까먹거나 꽁꽁 숨겨둔 주민등록을 기억하지 못하셔서 분실로 신고하고 재 발급도 여러 번
받게 되셨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분가하여 혼자 살고 계시니 더욱 외로움을 느끼시는 듯합니다.
저는 혼자 목욕탕을 가면 등을 밀지 않고 타월로 샤워하듯 살살 문지르고 그냥 나옵니다.
엄마의 등을 밀어 드리고 나니, 할머니가 된 엄마는 나이 든 딸에게 때를 밀어주겠다고 등을 대라고
하십니다. 얼굴은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가 되셨지만 제게 엄마는 아직도 속살 고운 젊은 날의
엄마로 남아 있습니다.
못 이기는 척 엄마께 등을 대고 돌아 앉았지만 예전 기억 속 엄마는 이제 할머니가 되어 어릴 때
명절 전 목욕탕 가던 날의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십니다
동전을 넣고 드라이기로 엄마 머리를 말리고 매점사장님께 바나나 우유 두 개를 샀습니다
"엄마 이 바나나 우유 기억나셔요?"
"우리 목욕탕 갔다 나올 때 엄마가 사주시던 건데,,,,"
딸이 건네는 바나나 우유를 한 모금 드시더니 맛있다라고 해주시는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가 넘어질까
조심조심 목욕탕을 나왔습니다. 엄마는 노인들이 다니시는 유치원 일명 노치원생입니다.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매달 노치원의 소식지를 받고 있습니다.
내일은 우리의 명절 구정 설날입니다. 새해는 엄마의 머릿속 지우개가 없어져서 나이가 한 살씩 거꾸로
세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으로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