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농장 임대밭 구하기
주말에 남편과 야외 드라이브를 다녀왔습니다. 드라이브라고 적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지만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드라이브라고 적어 봅니다.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은 적극 지지해 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한지 며칠 되지 않았기에 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동행하였습니다.
요즘 남편은 주말에 몹시 바쁘지만 뭔가 신이 나 있습니다. 열심히 땅 보러 다니는 것이 즐거운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는 시큰둥한데 남편만 신이 난 이유는 뭘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돈이 많아서 진짜 내 땅을 구입하러 다니는 거라면 정말 좋을 텐데 남편은 주말 농장 농사지을 임대할
밭을 보러 다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학교 과제로 부모님과 주말농장 체험이 있었는데 과제하러 들린 주말 농장에 빠져서
남편은 바로 주말 농장을 시작했고, 그렇게 15년이 넘는 동안 혼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고, 바쁘다는 핑계로 마누라는 어쩌다 한번 수확시기에만 눈도장을 찍는 수준이었음에도
꿋꿋이 주말농장 농사를 이어왔고, 이제는 반 농사꾼이라 하여도 될 만큼 주말농사꾼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먼 농장부터 시작하여 몇몇 곳을 전전하다가 몇 년 전 우연히 집과 가까운 곳에 꽤 넓은 평수의
주말농장을 운 좋게 분양받아 다양한 채소들과 농작물을 기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파트 부지로 땅이
매입되는 바람에 주말농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참에 잘되었다 싶어 건강이 좋지 않음을 핑계로 극구 반대를 하여 주말 농사는 종료를 한 상태입니다.
시골농사와는 거리가 먼 남편은 책으로 유튜브로 참 열심히도 공부하였습니다.
자그마한 땅이어도 농사는 크기와 상관없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어요.
농작물이나 채소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귀한 경험이 된 건 좋은데 생각보다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주말을 온종일 밭에서 보내야 하는 게 제가 싫었던 거 같습니다.
남편은 고관절 상태가 좋지 않아 좋아하던 마라톤도 포기하고, 함께하던 자전거 타기도 할 수 없게 되니
활동적인 운동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밭을 갈고 가꾸며 힐링이 되었던 주말 농장마저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니 남편은 마음이 많이
우울했었나 봅니다. 전 저의 갱년기만 생각하고 힘들어서 남편의 어려움은 헤아리지 못했던 거지요.
물론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거래처 사람들과 골프도 치러 다니지만 분위기상 내기를
많이 하게 되는 골프가 그리 재미있지는 않은 눈치였어요.
1월 설날 명절 연휴에 남편은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여 늦은 밤 응급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어지간히 아프면 절대 병원을 가지 않는 남편이 제 발로 병원을 간다고 하니 많이 아팠던 모양입니다.
저도 덜컥 겁이 나서 운전해서 병원 가는 길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응급실에서 남편이 CT와 여러 가지 검사를 하며 기다리는 동안 저는 혼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늘 내가 자주 아파서 응급실에 가면 저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자인 줄만 알았는데 저도 그날은 남편의
보호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다행히 혈관이 터지거나 하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외래 예약을 하고 응급실에서 3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새벽에 무사히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응급실에서 기다리던 그날 저는 앞으로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함께
하고 응원해 주어야겠다고 혼자만의 결심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 그런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남편은 혼자 잘 다니던 주말농장 찾기를 이번 주말에는
저랑 같이 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다녀온 것입니다.
집에서 너무 멀어서 안되고, 수도가 없어서 안되고, 길이 너무 좁아서 차가 다니기 힘들고,
주말농장 찾기가 이리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만 해도 주말농장이 아주 많았었는데 모두
그 땅 위에는 아파트들이 키재기를 하며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변신을 해버렸습니다.
다행히 모든 조건이 다 맞지는 않아도 적당히 타협점을 찾은 곳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말농장을 보고 온 이후로 남편의 관심과 대화는 온통 주말농장에 무엇을 심을지가 주제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고관절이 좋지 않은 남편의 주말농장 농사는 100% 찬성할 수 없지만 본인이 좋아하고 힐링이
된다니 포기하고 함께 관심을 가져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TV 프로그램도 자연인을 가장 좋아하는 우리 남편!!
김창옥 교수님이 강의에서 한국 남자들이 자연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가장 재미있게 시청한다고 하셨는데
저 역시 남편이 자연인이 되고 싶다고 하면 산으로 기꺼이 보내주어야 할까요?
일단 고민은 뒤로 미루고 주말 농사꾼으로 복귀하는 남편의 건강부터 잘 챙겨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