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꼰대 생각 26 : 코골이_무죄추정

by 배정철

새벽 3시까지 버티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침낭과 베개를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뒷좌석을 접고 차에 둔 토퍼를 펴고 침낭 안에서 웅크린 채 서너 시간을 겨우 잤다. 춥고 불편해서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모를 지경이다. 잠이 부족해서인지 오전 내내 머리가 아프고 몽롱하다. 몸살이 올 듯 온몸이 뻐근하니 편하지가 않다.


낮에 2인실 옆자리 환자가 퇴원하고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환자가 대부분 여성이라 보호자도 여성이 많은데 이번 보호자는 나처럼 남자다. 40대 후반쯤. 커튼 너머로 들리는 소리로 짐작하건대, 하루이틀 정도만 남편이 간병을 하고 후에는 친정엄마가 와서 있을 모양이다. 우리는 입원 6일째인 내일 퇴원이라 하룻밤만 같은 병실에서 지내는 거다.


낮잠을 조금 잔 탓인지 잠이 오질 않아서 늦게까지 이어폰을 끼고 드라마를 봤다. 새벽 1시쯤 자려고 이어폰을 빼고 누웠는데 코 고는 소리가 심하게 들린다. 옆자리 보호자의 소리다. ‘저러다 잠잠해지는 틈이 생기면 그때 잠이 들면 잘 수 있을 거야.’ 10여 분을 기다려도 끊어지지가 않는다. 이어폰을 다시 끼고 음악을 틀었다. 소리를 높였다. 잠시 잠이 들었나 싶은데 그게 아니다. 비몽사몽, 시계를 보니 막 3시가 넘었다. 침상에 누운 아내를 보니 잠이 들었다. 다행이다. 지하주차장 차에서 자고 아침 일찍 올라와서 물어보니 잠을 잘 잤단다. 아마도 진통제 등 약 때문인 모양이다. 옆자리 보호자는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 잔 얼굴이다. 하긴 알 턱이 있나, 나도 그러는데.


입원 수속 마치고 처음 배정받은 곳은 5인실이었다. 아침 일찍 세종시에서 서울까지 운전을 하고 왔고, 입원 수속 등 몸이 지쳤을 테니 코를 많이 골 상황이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차에서 자고 오겠다는 걸 아내가 말렸다. 날씨도 춥고, 밤에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는 동안 대여섯 번을 아내가 흔들어 깨웠다. 한 시간에 한 번씩은 깨운 것 같다. 코를 너무 많이 골아서 그랬단다. 앞쪽 다른 환자분이 자꾸 크게 한숨을 쉬고 잠을 못 자는 것 같아 미안해서 깨웠단다. 한 방의 다른 환자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종일 피했다.


작년 여름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의 일이다. 숙소인 알베르게는 다인실이 대부분이다. 하루에 20~30km를 걷는 사람들이라 코를 고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경우에는 코를 골아도 그렇게 미안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좀 심하게 골더라도 몸이 피곤하니 잘 모르고 잔다. 서로들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하루 일정을 마치고 낮잠을 좀 자고 일어났더니 아내가 끼끼 웃으면서 일러준다. 같은 방에 있던 호주에서 온 가족 중 십 대 아이들 두 명이 내 코 고는 소리에 반응을 보이더란다. 방을 들고 나면서 코를 골고 자는 내 모습을 보면서 재밌다는 듯이 웃더라고. 밤에 잘 때 신경이 좀 쓰였고 아침에 괜스레 미안했다.


아이코, 다음 날 도착한 알베르게에서 그 일행을 또 만났다. 방으로 들어가며 눈이 마주쳤다. 웃으면서 “Sorry~” 했다. ‘너 운이 없는 걸 어쩌나, 나도 어쩔 수 없어, 미안해~’라는 뜻이었다. 그 녀석은 씩 웃으면서, “No problem~” 했다. ‘괜찮아요, 상관없어요~’였다. 그 녀석의 웃는 얼굴을 보면 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같은 알바르게에서는 만나도 같은 방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스치면 서로 눈으로 키키거렸다.


내 코 고는 소리를 내가 직접 들은 적은 없기 때문에 장담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나보다 한 수, 아니 몇 수 위인 사람들이 있다. 1박 2일 골프 여행을 갔다가 한 방에 자게 된 K선배. 견디다 견디다 못해 새벽에 카운터에 전화해서 빈방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해서 이불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한두 시간 새우잠을 잤다. 두 번째는 충남대학교 출장을 같이 가서 대학 기숙사에서 바로 옆 침대에서 잤던 C선배. 그 음향의 크기와 톤의 고르기, 지속성은 지금 생각해도 귀청이 울린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분은 20여 년 전, 독일 출장을 같이 갔던 보건복지부 C사무관. 이 분은 머리만 대면 코를 골았다. 비행기에서도, 회의실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머리가 좌석에 닿고 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여행 첫날, 자주 깨워달라고 부탁을 하길래 왜 그러나 싶었다. 독일 관공서에서 회의장에서 커피 타임 빼고는 앉으면 잤다. 2~3분마다 옆구리를 찔러 깨우는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날아가는 방귀 잡고 시비할 수 없듯이, 세상모르고 자는 사람 코 고는 소리 잡고 다툴 수는 없는 노릇. 남의 잠은 훼방을 놓더라도 내 잠은 꿀잠인걸 어떡하나. 그러니 내 허물은 모르고 코 고는 남 탓도 할 것이 못된다.

그나저나 그 오랜 세월, 매일 듣고 견디는 옆지기가 참 대단하다.

이것도 다윈이 말한 적응이 되는 걸까?


주 : 표지 사진의 주인공은 렉돌종인 짱아. 이 녀석 코골이도 만만찮다.



keyword
이전 14화꼰대생각 49. 냥이 간식의 양자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