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도 참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가 들어오기 전부터 오금이 저렸다. 나뿐만 아니라 같은 반, 아니 그의 물리 수업을 받는 학생 전부가 그랬을 테다. 고등학교 물리 선생 이야기다. 별명이 아마 '피바다'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지 확신은 안 서지만 아무튼 그 비슷한 무시무시한 거였다. 물리 수업은 물질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과 우주에 대한 경외는 고사하고 공포 그 자체였다. ‘오늘도 무사히! 제발 내 번호를 부르지 마소서~’ 물리 선생이 그렇게 무서웠는데도 시험은 늘 반타작도 못 했다. 물리 과목뿐만 아니라 생물을 제외한 화학, 지구과학 과목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과학 과목에 젬병인 것을 선생 탓만 하는 것도 억지이긴 하다. 싶다.
학교 다니면서 수업 시간에 1962에 출간된 토머스 S.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1980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들었다고 해도 과학에 관심이 없던 내가 기억할 리도 만무하지만, 학교 앞 서점 주인 내외분이랑 친할 정도로 단골이었으니 자극이 있었다면 책을 집어 들었을지 모른다.
그때 그런 책을 알았더라면 책을 읽고 과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을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뉴턴의 사과, 아담과 이브의 사과, 스피노자의 사과, 신데렐라의 사과, 세잔의 사과, 스티브 잡스의 사과 그리고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황금사과로 이해하는 수준이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중력, 양자역학은 엄두를 낼 일이 아니다.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를 보면 뭔가 특이하고 재밌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이 휘어진다는 것, 우주로 날아가 웜홀을 지나온 아빠와 지구에서 생활한 딸 머피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갔다는 과학적 현상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중력의 영향으로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다니… 공간은 모르겠지만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걸 느낄 때가 많다. 놀 때는 시간이 '벌써?’이고, 일할 때는 '아직도?'다. 중력의 작용은 일정한데도 시간은 한결같지가 않다.
팬서와 짱아, 같이 사는 반려묘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5년 정도로 인간의 그것에 비해 1/5 수준이다. 수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나의 하루는 녀석들의 닷새다. 나의 하루하루도 정말이지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데 녀석들의 시간은 나보다 5배나 빠르다. 그런데도 하루의 반 이상을 잠으로 보낸다. 그러면서 꼬박꼬박 하루 세 번 간식 달라고 떼쓰는 건 인간의 시간에 맞춰 산 적응의 결과일까? 그들에게는 하루가 닷새이니 간식도 다섯 배를 줘야 한다고 말하면, 간식 많이 주지 말라고 타박하는 딸들이 기함하지 싶다.
<양자역학의 역사>라는 어려운 책을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잘 쓴 책이다. 물리 과목에 피 비린내의 트라우마가 있는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니 말이다. 박스를 열기 전에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은 것인지 살아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양자 중첩 현상은 이해 못 하더라도 팬서와 짱아가 간식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는 대개 알 수 있다. 물론 아내에게 얻어먹고도 안 먹은 척하며 떼를 쓸 때는 간식의 중첩 현상이 종종 일어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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