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에는 교내에서 커피 연수 강의를 했다. 커피의 역사와 종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핸드드립 방식으로 직접 커피를 한 잔씩 내려 보는 실습도 했다. 생각보다 신청자가 많아 한 번에 다 하지 못하고, 돌봄 강사 등 오후에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은 오전에, 선생님들은 수업을 마친 오후에 두 번, 세 시간 진행했다. 교장선생님 혼자, 교장실에서 매일 어떤 맛난 커피를 먹나 궁금했나 보다.
참 오랜만에 하는 연수 강의였는데 재밌고 신나고 즐거웠다. 선생님들과 직원들도 교장실에서 교장이 커피 이야기를 해주고 드립 하는 법을 가르쳐주니 신기하고 재밌어한다. 뭐 이게 신기하기까지 한 일인가 싶긴 하지만.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집에서 핸드드립으로 내려 마시는 분도 여럿이고, 커피메이커로 내려 마시는 분, 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카페에서 사 드시는 분. 커피를 나름 즐기고 맛있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맛있는 커피를 열심히 찾는 편은 다들 아니다.
이번 연수를 통해서 핸드드립 커피를 맛을 보고, 이해한 분들은 핸드드립 커피를 도전해 보고 그래서 같은 커피라도 더 맛나고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찾아가면 과정을 즐기면 좋겠다. 커피를 마시느냐 않느냐, 어떤 커피를 마시느냐, 어떤 방식의 커피를 마시느냐에 대한 정답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찾아 즐기면 그뿐. 그 과정을 즐기고 작은 차이를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 어쩌면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있는 그것,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이 아닐까.
핸드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제법 귀찮은 일이다. 좋아하는 원두를 골라 구입하고, 그라인더로 알맞은 굵기로 분쇄하고, 적당한 양에 적절한 온도의 물을 사용해서 조심스럽게 드립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핸드밀이나 전동밀 등 그라인더도 있어야 하고, 드립퍼, 서버, 필터, 계량기, 그리고 주둥이가 가늘고 길게 생긴 드립주전자도 필요하다. 재료와 기구가 다 준비되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로스팅 정도에 따라 분쇄되는 알갱이의 크기도 고려해야 제 맛이 난다. 커피 가루 위에 물을 떨어 뜨릴 때는 요령과 기술이 필요하다. 한 잔의 커피를 내리고 나면 뒷정리에도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 그런지 꼭 그렇게 해서라도 핸드드립을 고집해야 하냐고 이해 못 할 듯이 말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지금은 커피를 나만큼 즐기는 아내도 핸드드립한답시고 부산을 떨며 커피를 내릴 때, 나를 보며 쯔쯔쯔 혀를 찼다. 혀 차는 소리까지야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혀를 찼다. 혀 차는 소리와 한심과 불쌍이 가득 담긴 숱한 시선을 견디며 지난 온 세월이 베인 달콤 쌉쌀한 커피 한 잔. 그런 호들갑을 떨면서 한 잔의 커피를 수고스럽게 만드는 건, 맛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모카커피라고 들어 보셨죠?"
"커피의 한 가지 종류 아닌가요?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모카(Mocha)는 중동에 있는 예맨의 항구 이름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는 아라비아 반도 남서쪽에 있는 나라가 예맨인데, 이 나라의 서쪽 해안가에 있는 항구 도시다. 커피의 원산지로 알려진 아프리카 대륙의 에티오피아, 홍해의 가장 좁은 해협 건너편의 예맨의 모카. 그렇게 커피는 아프리카에서 모카로 유럽으로 그리고 아시아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간단한 커피의 역사를 들려주자 직원들의 눈이 밝아진다.
에티오피아에는 7세기경 커피를 처음 발견했다는 목동 칼디의 전설이 있다. 커피 향에 칼디의 전설이 서리면 흔한 커피가 아니라 먼 나라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고 전설이 된다. 커피 한 모금에 칼디의 전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커피 맛이 더 깊어지지 않을까?
"세계 3대 커피 중에 하나가 예맨 모카 마타리이고, 고흐가 즐겨 마시던 커피입니다. “
예맨 모카 마타리라는 커피는 몰라도 인상파 화가 고흐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 예맨의 사막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상이 안되더라도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의 낭만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파리의 어느 골목길 카페에 앉아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쓰디쓴 에스프레소 한 잔을 홀짝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퍽 어울린다 싶다. 왠지 꼭 그렇게 해보고 싶어 진다. 커피는 낭만이고 설렘이다.
“자~ 이제 커피를 내려 볼까요?”
커피 알갱이를 갈고 필터를 끼우고 조심조심 물을 붓는다. 향긋한 커피 향이 코끝에 와닿는다. 내가 직접 내린 커피는 과연 어떤 맛일까?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설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