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멀미가 심했다.
버스를 타고 진주에서 대구 정도만 가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구토를 할 정도였다.
차를 타기 전에 멀미약을 먹어도 차만 타면 여지없이 멀미를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좀 덜하긴 했지만 어질어질하고 속이 머쓱 거리는 건 여전했다.
초임 교사시절, 방학 때 동 학년 선생님들이랑 울릉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포항에서 배를 탔는데..., 지옥 체험이었다.
전날 배가 뜨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심한 영향이 다음날도 있어서 그랬겠지만,
포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그 몇 시간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었다.
문만 열어주면 배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나뿐만 아니라 배 안에는 멀미로 고통받은 분들이 많긴 했다.
그래도 같이 갔던 선생님들은 아무도 멀미를 하지 않았다.
울릉도에 내려서도 멀미가 가라앉지 않아, 차를 타고 하는 울릉도 관광을 혼자만 포기하고 숙소에서 쉬었다.
그 당시 나이 서른이 되기도 전이었고, 일행 중에 제일 어렸는데도 그랬다.
돌아올 때는 다행히 멀미를 하지 않았다.
정년을 앞둔 선생님(정순*)이 ‘이제 괜찮냐?’고 하시며 계속 나를 놀려 먹었다.
요즘에 학교 통학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자주 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40km 거리이고, 아침 6시에 출발하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내 차로 운전을 하고 오면 다리만 아픈데, 통학버스를 타면 멀미가 난다.
어질어질하고 속이 매스겁다. 다행히 구토까지는 아니다.
운전을 직접 하면 차가 어디로 움직일지를 알고 몸이 그에 맞게 따라가지만,
뒷자리에 앉아 오면 차의 움직임에 한박자씩 늦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말에 우리 학교 선생님들께 이렇게 인사를 했다.
“올 한 해, 새 교장 만나서 변화에 적응하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이 매년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른 듯도 합니다.
학교, 아이들, 동료 교사, 교장 교감, 학부모들...
변화를 주도하느냐, 적응하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요즘 학교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드네요.
운전을 하고 다니면 멀미가 안 나는데, 누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다니니 멀미가 많이 나요.
선생님들도 멀미를 심하게 하셨을 듯^^”
개혁과 혁신이 매년 화두다.
앞장서서 외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뒤따라 가는 수많은 이들은 아마도 어느 정도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을까?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세상도 좀 더 느리게 변해 갔으면 좋겠다.
<꼰대 생각>은 중년의 사소한 상념과 일상 이야기입니다. 꼰대인 줄 알지만 꼰대이고 싶지 않은 바람입니다.
<책의 이끌림, 2017>, <뇌가 섹시한 중년, 2019>를 출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