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은 비결이 뭡니까? 평소에 몸에 좋은 거 드십니까?”
아침에 출근했더니 어젯밤 늦게까지 술자리를 같이 선생님이 묻는다.
평소에 좋은 걸 먹어 술이 센 것이 아니라, 사실 어제는 꺾기를 많이 했다.
한 잔을 한꺼번에 비우지 않고 조금씩 마셨으니 덜 취한 거다.
다음날도 술자리가 예정되어 있어서 ‘못 깨우(태국어로 원샷)’할 때마다 반 잔만 마셨다.
술은 대학생 때부터 가끔 마시기는 했지만, 마흔 정도까지는 소주 석 잔 정도가 주량이었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
당시 소주는 지금보다 도수가 높아 더 독했다.
석 잔 마시고 나면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뭐 이런 쓴 것을 마시는지 모르겠다 할 정도였으니...
체질적으로 소주던 맥주던 한 잔만 마셔도 온 몸이 벌게져서 남세스러웠다.
혼자 술 다 마신 마냥 그랬으니.
“아이고 혼자 술 다 드셨나 보네요~”
“소방차 불러야겠어요~”
그러면서 같이 앉은 사람도, 가게 주인도 종종 놀렸다.
그러던 것이 점점 술이 늘었다.
술자리가 많아지니 자연히 는 모양이다.
한창 술 먹고 놀기에 재미 붙이던 마흔 초반 시절, 창원 상남동 번화가에서 1km 정도 되는 집까지 휘적휘적 걸어갈 때 기분도 좋았다.
술에 취하면 꽃가게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꽃도 잘 사가고, 집에 가서는 딸들에게 용돈도 척척 잘 줬다.
술 취해 오면 남편, 아빠 기분 좋아 온다고 가족들이 그리 타박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맑은 정신일 때는 무뚝뚝하거나 잔소리가 심하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테니 그랬을 테다.
그런 날이 잦거나 너무 취해 가면 당연히 혼나고는 했지만.
요즘은 가만 보니 술이 세다는 사람도 내 앞에서 종종 취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나도 취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취한 내 눈에 더 취해 보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어, 좀 세다더니 취했네? 나는 아직 덜 취했는데...’
약간 취한 눈으로 더 취한 사람을 보면 좀 우습다.
하긴 덜 취했는지, 더 취했는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더 우스운 일이긴 하다.
술 취한 사람한테 취했냐고 물어보면 그렇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술이 세던 약하던, 많이 마신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차이는 확연하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표가 난다.
몸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제시간에 일어나 그 날의 일상을 별 무리 없이 하면 동그라미 다섯 개다.
자제하지 않고 마구 마신 다음 날의 모습은 스스로 생각해도 참 한심하다.
겪어 본 남자들은 다 안다.
그런 모습을 본 여자들은 더 잘 안다.
‘에구 불쌍한 인간아, 인간아~’
뒤통수가 종일 따갑다.
그래도 어쩌나,
사람을 만나니 술을 마시고,
아니 술을 마시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만나서 부딪히는 소주잔이
나를 웃게 하고, 자랑을 늘어놓게 하고, 큰소리 뻥뻥 치게 하고, 시름을 잊게 한다.
그게 단지 그 몇 시간뿐이라는 것도 알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한 고통이 엄습한다는 걸 알아도 도리 없다.
마흔 전에는 술맛 모르고 어떻게 살았을까?
좀 더 젊었을 때 더 많이 마실 걸 그랬나?
평생 마실 술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근데, 그 양을 누가 정해 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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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생각>은 중년의 사소한 상념과 일상 이야기입니다. 꼰대인 줄 알지만 꼰대이고 싶지 않은 바람입니다.
<책의 이끌림, 2017>, <뇌가 섹시한 중년, 2019>를 출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