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니던 시절, 80년대 말에 음악다방에서 일한 적이 있다. 상호가 <유니버스>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구시내 중심가인 중안동에 위치하고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았다. 유니버스는 옛 다방에서 카페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모습이었다. 메뉴는 블랙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타서 마시는 다방식 커피와 주스, 콜라 등이 있었고, LP판으로 음악을 틀어주는 곳이라 나름 인기가 많았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다가 나중에 판돌이 아르바이트를 몇 개월 했다. 판돌이는 뮤직박스에서 음악은 틀어주데 멘트는 하지 않는 디제이를 말한다. 매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3만 원을 받았다. 삼십 대 마담이 가끔 칼국수도 사주고 월급도 5천 원을 더 줬다. 나에게만 그랬는지 다른 판돌이들에게도 그랬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 시절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았다. 일부러 커피를 찾아 마시는 경우도 없었고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다방이나 커피점을 가는 것도 아니었다. 용돈이 부족한 시절, 고성 유지 아버지를 둔 친구 원택이가 커피값을 자주 냈다. 친구가 돈을 내는 날에는 오렌지 주스나 쌍화차를 주문해도 소용이 없었다. 원택이는 항상 '커피 네 잔'으로 늘 통일해서 주문했다. 커피는 가격이 제일 싼 음료였다. 블랙커피에 크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을 꼭 타서 달달하게 마셨다. 다 식은 달달구리 커피를 앞에 놓고 몇 시간이고 죽치고 놀았다.
90년 대 초, 발령받은 학교는 거제도 둔덕면에 있는 산골 벽지학교였는데, 읍내에 다방이 두어 개 있었지만 학교가 멀어서 커피 배달은 안 되는 곳이었다. 학교에 인스턴트커피를 구입해 두고 마셨다. 각각 병에 든 커피, 설탕, 크림을 넣어서 마시기도 했지만, 믹스커피가 더 편하고 좋았다. 출근해서 한 잔, 점심 먹고 나서 한 잔, 매일 두 잔 정도는 마셨다.
"정선생은 커피를 하루에 몇 잔이나 마셔요?"
"세 잔요."
"아이고 그럼 거의 중독이네!"
믹스 커피 값이 많이 든다고 분교장 선생님이 같이 근무하던 동기 정선생에게 은근히 타박을 주기도 했다.
90년대 말, 창원시 소재 학교 근무할 때는 퇴근 후에 카드놀이를 하는 선후배가 많았다. 저녁을 시켜 먹고 나면 다방에 커피 배달을 시켰다. 카드놀이가 저녁 늦도록 길어질 때면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 숙직실로 다방 레지가 배달을 몇 번이나 왔다. 커피가 물리면 몸에 좋다는 쌍화차를 시켰다. 매일 마시는 커피였지만 그 커피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카이로에 근무할 때도 우리나라 커피믹서인 맥심모카골드가 귀하고 제일 맛있는 커피였다. 아메리카노를 알게 된 건, 2000년대 초 서울에서 근무할 때도 아니고,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 이웃나라 이집트에 몇 년을 근무할 때도 아니다. 이집트 파견 근무를 마치고 경남으로 다시 내려와서다. 경남신문사 1층에 생긴 커피점에서 아침 출근길에 커피를 사서 손에 들고 출근을 했다. 설탕도 프리마도 타지 않은 쓴 아메리카노를 마신 건 맛 때문이 아니라 멋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시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멋으로 알고 마시던 커피 맛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요즘은 하루에 두세 번 정도 커피를 마신다. 주로 집에서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린다. 아내에게 잔소리 들어가며 프라이팬에 생두를 볶고 화장실에서 선풍기로 식히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로스팅도 벌써 16년째다. 이제는 로스팅한 커피를 판매까지 하고 있으니, 커피와의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요즘도 가끔 달달구리 커피가 생각나는 걸 보면 1976년 12월 동서식품에 의해 처음 출시된 커피믹서는 한국인의 입맛에 기가 막히게 맞춤한 맛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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