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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May 23. 2018

 새로운 중년-나이를 잘 먹는 법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는 날 이른 아침, 나는 자택 뒤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다. 측근들이 자주 드나 들던 자택의 입구 쪽에 초등학교 후문이 있는데, 학생 등교 안전문제를 염려해서 점검 차 출장을 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를 막기 위한 지지자들의 시위가 예상되었기 때문에 모두들 걱정이 많았다. 나뿐만 아니라 그 초등학교 교장, 교감선생님, 관할 교육청 직원들과 구청 사람들, 자원봉사자, 학부모들도 나와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침 일찍부터 시위자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60대 이후로 보이는 분들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를 반대하는 각종 피켓과 태극기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타까웠다. 그분들이 살아온 날들과 그들이 가진 신념에 대해 잘잘못을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 자리에서 하는 그분들의 말과 행동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학생 안전을 위해 봉사하러 나온 분들에게 고함을 치고, 욕설을 내뱉고, 차도에 드러눕는 모습은 결코 어른스러운 행동이 아니었다. 좀 더 우아하고 품위 있을 수는 없었을까?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던 걸까?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웠다. 세월이 좀 더 지나, 나이가 더 들면 나 역시 저런 모습이 될까? 우아하고 품위 있는 늙은이가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런 생각과 다짐도 집채같은 시간의 파도가 모든 것을 삼켜 버리지나 않을까? 낡은 관념에 사로잡혀 세상의 변화를 외면하는 외골수 늙은이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인가? 내 생각의 옳음만 고집하며 자식들과 후배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스스로 거부해 버리지는 않을까?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의 성기를 낫으로 자르는 모습>


나이 듦은 낡음이 아니라 새로움에 관한 것

중년 이전에는 열심히 앞만 보고 내 달렸지만, 이젠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현재보다 먼 미래도 내다봐야 한다.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해야 외골수의 늙은이가 되지 않는다.  앤 카르프의 말을 들어보자.

'육체는 변화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완고하고 강박적으로 낡은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성숙한다. 따라서 나이 듦은 낡음이 아니라 새로움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뇌, 정신, 관계 능력은 충분한 음식과 사랑, 건강, 격려가 있으면 모두 발달하고 성장한다.『나이드는 법(앤 카르프, 프런티어, 2014)』'


신체적으로는 젊음을 이겨낼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는 퇴화와 소멸의 길을 걷는다. 과학의 도움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재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겠지만 이 마저도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행히 우리의 뇌와 정신은 신체의 쇠퇴를 굳이 따라갈 필요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백 년을 살아보니(2017, 덴스토리)』의 저자, 김형석 옹은 1920년생으로 2019년이면 나이 100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 2시간 강의를 내내 서서 할 정도는 못되지만, 그의 강의를 들으면 여전히 정신이 발달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시간에 따른 신체적 쇠퇴를 되돌리거나 막을 방법은 없지만, 우리의 뇌와 정신을 보다 오래도록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십 년 동안 신줏단지 모시듯 지켜 온 낡은 패턴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굳어가는 뇌에 꾸준히 자극을 주면서 정신에 맑은 산소를 계속 공급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벗들을 만나고, 낯선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래야 나이 듦이 낡음이 아니라 새로움에 관한 것이 된다. 


배움을 지속하라

에도 시대의 유학자 막부의 관리이기도 했던 사토 잇사이(1772~1859)는 <언지록>이라는 수상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자네 늙어봤나 나는 젊어봤네(책베개, 2015)』에서 인용)

어려서 배우면 커서 이루는 것이 있고

커서 배우면 늙어도 쇠하지 않으며

늙어서 배우면 죽어도 썩지 않는다.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것이 직업을 얻는 것이든,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것이든,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과정이다. 목표를 세워 하나 둘 성취해 나가는 보람은 있겠으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없을 수 없다. 이때의 배움은 사실 즐겁게 하기가 어렵다. 배움이 강제적이고 타율적이다. 그러다 보니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힘들고 싫어지기도 한다. 

 

중년의 시기에 배우는 것은 젊은 시절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 시기에 배움은 대부분 자발적이고 자율적이다.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해 또다시 타율적 배움의 길로 들어서는 이도 있겠으나,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전공과는 다른 분야, 자신의 생업과는 상관없는 것을 읽히고 배운다. 젊은 시절에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고, 취미나 여가 생활이 즐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기의 학습은 그 어느 때보다 즐겁다. 하고 싶어서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시기의 배움이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더 이상 배우지 않고도 자신의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 지난 시간의 지식과 경험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제는 좀 쉬면서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뭣 하러 이 나이에 배운다고 고생을 한단 말이야'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진짜 늙음이 시작된다고 이기주는『언어의 온도(말글터, 2016)』에서 이렇게 말한다. '느끼는 일과 깨닫는 일을 모두 내려놓은 채 최대한 느리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유일한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순간, 삶의 밝음이 사라지고 암흑 같은 절망의 그림자가 우리를 괴롭힌다. 그때 비로소 진짜 늙음이 시작된다. ' 우리는 진짜 늙음이 너무 일찍 시작되지 않도록 배움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늙은이가 된다.


새로운 관계 맺음을 하라

'인턴(2015, 워너 브라더스)'이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영화는 은퇴 후, 집에서 쉬고 있던 70세인 벤(로버트 드니로)이 30세의 젊은 여자 CEO 줄스(앤 해서웨이)가 창업한 인터넷 쇼핑 회사의 시니어 인턴 채용 면접에 응시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의 생각은 애초에 서로 다르다. 벤은 자신의 삶에서 가치와 기쁨을 얻기 위해 용기를 내어 도전한 것이고, 줄스는 시니어 인턴 채용을 사회적 공헌과 연관 지어 단지 회사 이미지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로만 간주한다. 회사에 채용된 벤은 타고난 성실성과 인생의 풍부한 경험, 그리고 사람에 대한 따뜻함으로 젊은 동료들로부터 신망을 얻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사람들이 인생의 고민을 상담하기도 하면서 그를 따른다. 뿐만 아니라 직장내의 마사지사인 아름다운 피오나(르네 루소)와 썸도 탄다.

<영화 '인턴', 2015, 워너 브라더스>

한편, 젊은 나이에 회사를 창업하여 짧은 기간 동안 제법 잘 나가는 회사로 만든 줄스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새로운 CEO를 영입해야 한다는 압박, 남편과의 관계, 아이의 양육 등 직장과 가정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고민과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 그녀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시니어 인턴 벤이 그녀의 멘토가 되어 준다. 줄스의 고민을 들어주고 때로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성공한 젊은 CEO 줄스가 아니라, 시니어 인턴으로 인생의 제 2막을 시작하는 벤의 모습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늙고, 은퇴한, 그리고 배우자도 없이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무료한 시간을 보낼 것으로 예상되는 나이 일흔의 벤. 그는 새로운 세상으로 용감무쌍하게 다시 걸음을 내딛는다. 낯선 세상에 자신을 놓으면서 새로운 관계 맺음에 도전한다. 그가 새로운 직장에서 한 일은,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나누어주고, 아픈 이들을 격려한 것이다. 누구보다도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인생을 그처럼 오래 살지 않은 다른 이들은 잘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어린 동료들은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서 용기를 얻고, 그에게도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해 준다. 그들로부터의 지지가 벤에게도 더욱 활기차게 살아가는 새로운 에너지가 된다. 벤은 자신을 전혀 낯선 곳에 두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젊은 CEO, 최신의 유행을 살아가는 젊은이들, 새로운 감각과 기술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속에 자신을 용기 있게 놓음으로써 새로운 관계 맺음을 통해 나이 듦이 낢음이 아니라 새로움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라

일생의 후반기를 싱싱한 지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젊은 시절의 사고력과는 다르겠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있어야 정신의 유연함을 유지할 수 있다. 신체적 유연성은 점점 줄어들겠지만 생각과 사고의 유연성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고의 유연성이란 자기 삶의 한 단계에서 고수했던 규범적인 생각이 다른 단계, 다른 인생의 시점에서는 적당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젊은 시절의 가치관과 신념을 모두 버리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다만, 새로운 것과 변화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 변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과감히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방법 중에는 책 읽기가 좋은 방법이다. 책 읽기에는 알파 읽기와 베타 읽기가 있다. 알파 읽기는 이미 알고 있는 말과 표현을 읽는 스타일이다. 소설이나 수필 읽기는 그때까지 키워온 독서력이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읽기 편하고, 나의 인생과 견주어 생각해 봄으로써 젊었을 때의 독서와는 다른, 심도 있는 독서가 된다.  자신의 인생관이나 가치관, 신념에 살짝 맛을 더해 인생의 맛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다. 

반면에 베타 읽기는 난해하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표현 형식 또는 내용을 읽는 스타일이다. 자신의 전공이나 직업 분야와는 다른 분야의 독서를 말하는데 이해하기 힘들고 진도가 잘 안나가지만 상상하고 생각하고 사색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다. 가끔은 어렵고 낯선 책을 읽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베타 읽기가 자신을 낯선 곳에 두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무엇을 하던 중요한 것은 자신의 머리로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일이다.

<싱가포르 국립미술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예측할 수 있지만,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그 예측할 수 있는 바를 예측한 대로 흘러가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만만찮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일도 아니고, 해결할 수도 없다. 건강, 경제, 자녀, 그리고 가치관에 관련된 문제들을 젊은 시절의 문제보다 더 빠르고 더 깊어 해결이 어려워진다. 그러니 중년에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말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고 배려하면서 인생 황금기인 중년을 보내야 한다. 그러면 벤과 같은 찬란한 노년기가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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