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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Jun 02. 2018

섹스(Sex)_오래된 사랑을 위한 타협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이집트 등 이슬람 국가에서는 공식적으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다. 카이로 한국학교 파견근무 당시(2004~2008년) 같이 근무하던 이집트인 직원 중에도 아내가 둘인 직원이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내를 세 명까지 둘 수 있다고 했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도 가능하냐고 농담 삼아 물으면, 공식적으로 무슬림이 되어야 한다며 피식피식 웃곤 했다. 물론 무슬림 성인 남자들 모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것은 아니다. 교육 수준이 높고 외국과의 교류가 많은 도시 중산층이 많이 사는 도시는 대부분 일부일처제이고, 도시 외곽이나 농촌지역에서는 여전히 일부다처제가 흔한 일이라고 했다. 한 남자가 세 명의 아내와 같이 살려면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도 했다. 새로운 아내를 맞이 할 당시에는 지참금을 주기 위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그 아내들이 벌어서 오히려 한 명의 남편을 부양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이집트처럼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나라들도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 명의 성인 남성이 한 명의 성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는 말이다. 적은 예이긴 하지만 일처다부제의 경우도 있다. 일처다부제는 국가 제도가 생겨나기 전 인간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던 관습이었다. 지금도 일부 국가의 몇몇 부족들에 이런 풍습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제도는 아니다.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보편적인 문화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일부일처제는 다른 동물이나 포유류와 다른 인간만의 독특한 성적 습성 중의 하나다.

즉 대부분의 인간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짝을 이루어 생활하며, 두 당사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구성원들도 이를 의무로 결합된 계약으로 간주한다. 결혼식이라는 공개적인 선언과 혼인신고라는 법적 절차를 거쳐 짝을 이룬 두 사람은 합법적이고 반복적인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 이 점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인간의  독특한 성(性, Sex) 습성

인간의 성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 성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이다. 또한 남녀 간의 사랑의 완성이기도 하며 가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이기도하다. 반면에 성은 쾌락과 유희의 도구이기도 하고, 엄청난 갈등과 처절한 복수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권력의 수단인 동시에 남용과 착취의 대상 될 때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인간의 성은 인류가 긴 역사를 이어오는 젖줄이자, 그 역사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다채롭게 만든 강렬한 색채이기도 하다. 연애, 사랑, 결혼뿐만 아니라 모험, 헌신, 탐욕, 성공, 불륜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의 교집합이자 세상의 모든 문학과 미술, 영화와 음악, 심지어 유행가 가사의 바탕에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포장된 원초적 성이 존재한다.


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섹스의 진화(사이언스 북스, 2005)』에서 ‘인간만의 독특한 성적 습성들이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시켜 주는 고유의 특성들을 만드는 데 있어서 직립 보행이나 커다란 뇌만큼이나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라고 주장한다. 즉, 우리의 고도로 발달된 문화, 언어,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간만의 독특한 성적 습성은 여러 가지다. 장기적인 성적 배우자 관계, 자녀의 부부 공동 양육뿐만 아니라 여성의 배란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폐경이 있다는 점, 생식보다는 쾌락을 위한 성관계를 주로 한다는 점 등이다.

인간 이외의 대부분의 동물들은 특정한 시기에 한해 그 시점에 결정하는 파트너와 성관계를 하는 반면에, 인간은 배란기와는 관계없이 언제든지 성관계를 할 수 있다. 인간의 성관계는 주로 쾌락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자녀를 더 낳을 목적이 아니라면 배란기를 피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일반적이다. 인간 이외의 대부분의 동물들은 암컷의 배란기, 즉 번식을 위한 시기에만 성관계를 가지고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은 따로 생활한다. 더구나 배란기 때마다 같은 파트너를 만나는 게 아니라 다른 파트너와 성관계를 맺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간은 결혼 또는 동거의 형태로 장기적인 성적 배우자 관계를 맺으면서 그 목적을 총족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장기적인 성적 관계의 지속성은 여성의 배란기를 남성은 알 수 없도록 진화하도록 한 요인이었다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한다.

인간과 달리 다른 동물들은 배란기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낸다. 성기 주변이 붉게 물들기도 하고(시각), 특유의 냄새를 발산하기도 하며(후각), 특유의 소리를 내기도 하고(청각), 수컷에게 성기를 내 보이기도(특정 행동) 한다. 포유류의 암컷은 배란 시기를 드러냄으로써 오직 가임기에만 수컷을 유혹한다. 가임 시기를 정확히 수컷에게 알림으로써 더 건강한 유전자를 받아들이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섹스가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생식을 위한 것으로만 진화했다. 이기적 유전자의 엄정한 명령인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장기적인 성적 배우자 관계는 자식에 대한 부부 공동의 양육 형태로 이어진다. 요즘에도 여전히 남성보다는 여성의 양육 역할이 크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부부가 자식을 공동으로 키운다. 인간 이외의 동물의 세계에서는 대부분 암컷이 양육을 책임진다. 수컷은 자신의 정자를 암컷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그 임무가 끝났다고 여긴다. 또 다른 상대를 찾아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에 바쁘다. 새, 개구리, 물고기의 일부 종은 수컷이 양육을 책임지기도 하고, 심해어의 일부 종은 수컷이 교미 후에 암컷의 몸속으로 융합되거나, 사마귀, 거미나 곤충 중에는 교미 중에 또는 교미 후에 암컷에게 먹히는 경우도 있다. 태어날 자손들의 영양 보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수컷들이다.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섹스리스(Sexless)와 금욕주의적 평온

다른 포유류와 구별되는 인간의 성적 습성은 배란 시기와는 관계없이 성관계를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배란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 폐경을 겪는다는 것은 성관계가 임신을 통한 자손을 남기려는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것으로 진화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인 성적 배우자 관계는 그런 진화의 목적에도 부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부부관계 조사 결과, 섹스리스 부부가 많아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진화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일까? 유전자의 전달 이외에 쾌락의 목적으로 성관계를 해 왔던 인간의 진화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결혼한 경우에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성적 만족을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부간에 성관계를 적게 맺는다. 섹스리스(sexless)는 최근 1년간 성관계 횟수가 월 1회 이하인 상태를 말한다. 해외 논문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세계 섹스리스 부부 비율은 평균 20% 수준이다. 이에 비해 한국(36%)은 일본(45%)에 이어 두 번째로 섹스리스 부부가 많은 나라로 조사되었다. 더구나 50대 이상 부부는 43.9%가 섹스리스인 것으로 파악됐다(주간경향 칼럼,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 2018.4. 11)'.


이런 섹스리스 현상은 20~30대에서부터 점차 증가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높아진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와이프랑 아직도 섹스를 한다고?, 부부는 그냥 손만 잡고 자는 거야.',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면서?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하는다는데, 축하해.' 등의 농담은 부부간의 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부부간의 섹스리스 현상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나이가 들면 성기능이 당연히 감퇴한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학적인 연구나 조사에 의하면 남성의 경우에는 80대까지도 성기능에 문제가 없다고 하며, 여성들도 나이가 든다고 해서 성적 욕구나 기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섹스리스는 성기능 장애 등 치료가 필요한 경우보다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요인이 더 크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우선 우리나라의 부부는 늘 피곤하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직장에서 힘들게 지내다 보면 섹스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어진다. 20~30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40~50대는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로 아이들 등교시키기에 바쁘고, 저녁에는 맡겨놓은 아이를 찾아와서 부족한 부모의 사랑을 채우기에도 버겁다. 늦은 시간에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데리러 가거나, 학원차를 타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간식이라도 챙겨 먹여야 한다. 야근도 많다. 직장 동료들과 회식도 해야 한다. 몸은 지치고 늘 피곤하다. 휴일에도 옆집 부모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아이들과 놀이동산도 가고, 여행도 가야 한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내일을 위해 쉬어야 한다. 그러니 부부간에 섹스를 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섹스는 점잖지 못한 행위라는 오래되고 견고한 사고방식도 섹스리스의 한 원인이다. 인간의 성적 습성 중에서 다른 포유류와 다른 점 중 하나가 남의눈을 피해 사랑을 나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가옥을 보면, 대문을 들어서면 바깥 주인이 거처하는 사랑채와 안주인이 거처하는 안채가 나뉘어 있다. 부부라도 각자 자신의 생활공간을 가지도록 구성한 것이다. 부부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잠든 밤에 남편이 사랑에서 안채로 조심조심 건너가야 한다. 마루로 연결된 구조에서는 비꺽 거리는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렸을 듯도 하다. 남녀를 구분하는 유교적인 문화가 섹스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했고, 이런 풍조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심해진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50대나 60대의 성관계는 당황스럽고 예외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이 섹스리스의 한 원인이다.

 

남편이 샤워를 하고 알몸으로 욕실에서 걸어 나온다. 알몸임에도 중요 부위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태연하다. 젊은 시절의 매끈한 몸매는 아니더라도 아직까지는 봐줄만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자주 보아 익숙한 남편의 벌거벗은 몸은 성적 흥분을 일으키지 않는다. 익숙함은 편안하지만 설렘을 주지는 않는다. 휴일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난 아내는 휴일에는 그저 편안한 시간을 갖고 싶다. 간단히 세수하고 머리만 동여맨다. 20년 이상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아내는 편안하지만 신비롭지는 않다. 아내와 남편의 모습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익숙해지면서 그만큼 성적 매력도 줄었다. 오랜 산 부부간의 서로에 대한 편안함과 익숙함이 커질수록 성적 매력은 감소해 버린 것이다. 부부간의 성관계가 뜸해지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한 장면>

늘 피곤해서이든, 배우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이든, 중년의 섹스는 점잖지 못한 것이라는 캐캐 묵은 사고방식이든, 그 원인이 무엇이든 섹스리스 부부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섹스가 없는 부부는 사랑과 애정이 식어버린 위기의 관계인가? 사랑이 없는 부부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 같은 위험한 시기가 아닐까? 쾌락을 위한 섹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가정의 붕괴가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 사회에 섹스리스 부부가 많다는 조사 결과에서 중년들은 위기의식이 아니라 위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알랭 드 보통이  『인생학교 ‘섹스’ (쌤앤파커스, 2013)』에서 한 말은 그런 위안 중에 하나다.

 '평생에 걸쳐 만족스러운 성관계가 몇 번 안된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성관계를 무조건 자주 갖는 것을 정상으로 여기는 생각이 과연 옳을까? 섹스와 결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가장 좋겠지만, 바란다고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헛된 기대를 고쳐먹고, 비현실적 환상을 버려야 하는 것 아닐까? 소위 '무능'이라는 오명을 털어버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침대에서 그 누구의 원망도 없이 금욕주의적 평온으로 돌아누우며, 오래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타협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 더 지혜로운 것 아닐까?'


오래된 사랑을 위해 타협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이 위로가 된다. ‘그래, 섹스리스가 사랑이 식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잖아. 위기는 아니야’. 쾌재를 부른다. 문제는, 오래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나의 타협을 나의 짝도 순순히 받아줄지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다. 물어보기라도 했다가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자칫 뜻하지 않는 화를 자초하는 결과로 이어질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등을 돌리며 슬며시 돌아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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