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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May 08. 2018

시(詩)_다시 읽는 시

김사인의 『시를 어루만지다(도서출판 b, 2013)』를 다시 읽었다. 시(詩)만 있는 시집을 읽는 것 보다 시를 설명해주는 글이 더 읽기에 편하다. 시를 읽고 가슴으로 느끼기 보다는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하는데 더 익숙하기 때문일까? 김사인의 책은 시를 좋아하지만 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시는 이런 것이라고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준다. 두번 째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 보다 마음이 가고 공감이 되는 시들이 더 많아졌다. 시도 사람살이 마냥 한 번 보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보다는 두 번 세 번, 보고 또 보면 미운정 고운정이 드는가 보다. 또 세월이 한참 지나, 내 삶의 경험과 시간이 많아지고 나면 시도 이전의 그 시가 아니라 또 다른 시로 다가오기도 하나보다. 시는 그대로인데도 달리 읽히는 걸 보면 내 세상살이의 눈도 제법 깊어진 걸까?

시인은 말한다. '좋은 시를 만나면 우리는 차라리 그 시속에 들어가 먹고 자면서 한 두어 달쯤 살다가 나왔으면 한다. 그런 가운데 세상살이를 보는 우리 눈이 좀 더 깊고 그윽해질 터이다.’ 시를 읽을 때는 마음을 열고 공경하라고 한다. 인간에 대한 겸허와 공경, 풀과 들, 나무, 벌레들에 대한 공경, 그리고 자신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시를 진정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을 4~50년 살았으니, 이젠 좀 여유를 가지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을 열 수 있을 것도 같다. 중년에게 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 옹이를 간직한 금강송>

돌아봄


< 힘 >    박시교


꽃 같은 시절이야 누구나 가진 추억


그러나 내게는 상처도 보석이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 몇 개


밑줄 쳐 새겨 둔 듯한 어제의 그 흔적들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힘인지도 모른다


몇 군데 옹이를 박은 소나무의 푸름처럼


'좋았던 시절만이 아니라 아팠던 시절도 의미 있는 것. 상처도, 흉터도, 어제의 그 흔적들이 오늘을 사는 힘이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옹이'가 굳은 살의 비유로 쓰인다는 걸 안다면, 옹이를 박은 소나무가 무엇을 뜻할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말랑말랑한 어제는 위험하다. 이 또한 지나갈 테니까. 굳은살 박인 어제 덕택에 오늘을 산다.’ - 『그대를 듣는다(휴머니스트, 2017)』 - 

이 시에 대한 정재찬의 해석이다. 시인은 지나 온 상처가 보석이며 어쩌면 오늘을 사는 힘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되돌아보면 힘들었던 일도 다 추억이라는 말도 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중년은 자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식이 커 가는 걸 보면서 자신의 그 시절을 떠 올린다. 많이 변한 세상에서, 예전보다 좋아진 세상에서 지금의 아이들은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직장의 후배들을 보면서 힘들었던 옛 시절을 떠 올린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호시절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쉽게 상처받고 아프다고 한다. 그들이 너무 나약한 걸까, 달라진 세상에 사람의 체감도 달라진 탓일까. 너무 말랑말랑한 현재를 사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밀한 흉터를 들춰본다. 잘 아문 상처도 있고, 여전히 아픈 곳도 있다. 몸 부대끼며 사는 남편이나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은 상처다. 시인의 말처럼 상처가 옹이가 되어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 되면 좋으련만 여전히 아프다. 나약한 게 아니라 사람이니까 그렇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픔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잘 이겨내기도 했지만, 봄철 꽃가루 알러쥐처럼 때가 되면 찾아오는 고통에 힘들어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아물기도 하겠지만,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아물 것 같은 아픔도 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고통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중년은 견디며 산다. 이겨 온 것들에서 용기와 힘을 얻고, 사라지지 않는 아픔을 어루만지며 살아온 날들을 반추한다. 시를 읽으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위로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유시민은『청춘의 독서(웅진지식하우스, 2017)』에서 말하길, 이 시를 어릴 적 이발소에서 처음 봤다고 한다. 푸시킨의 대표작도 아닌 이 시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이발소며 식당에 붓글씨로 써져 붙어 있는지 의아했단다. 그러면서 이 시가 일제강점기 때 힘겹고 슬펐던 조선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짐작한다. 누가 어떤 연유로 시를 소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저마다의 울림을 가지는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시의 힘이라고 한다. - 

<푸시킨>

한 편의 시가, 단 한 줄의 시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내 삶이 힘든 것은 나 자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고 노력했지만 삶이 나를 속이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 기쁨의 날이 오리니'. 내 탓이라고 괴로워하지 말고, 이런 날들을 조금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현재는 늘 슬픈 것이고, 모든 것이 다 지나갈 것이고, 이 힘들고 슬픈 시절도 그리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살았어. 이제 겨우 인생의 절반이니 조금만 참고 견뎌보자.'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인생의 후반전을 위해 파이팅을 외칠 수 있는 거다. 시를 읽으면 위로가 된다.


깨달음


< 그렇게 못할 수도 >  제인 케니언


건강한 다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시리얼과 달콤한 우유와

흠 없이 잘 익은 복숭아를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개를 데리고 언덕 위 자작나무 숲으로 산책을 갔다.

오전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누웠다.

그렇고 못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은촛대가 놓인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벽에 그림이 걸린 방에서 잠을 자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느 날인가는

그렇게 못하게 되리라는 걸.  

          - 류시화,『시로 납치하다(더숲, 2018)』에서 인용 -


나이 마흔이 한참이나 넘은 나를 그냥 '철아~'라고 부르는 선배가 있었다. 아직 육십도 되지 않은 한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예전에 좋지 않았던 곳이 재발했다고 한다. 그 선배랑은 창의성교육연구회 활동도 같이 했고,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같은 부서에서 근무도 했다. 그는 장학사도 일찍 되고, 교감도 동기들보다 빠르게 했는데도 교장 발령이 늦게 나면서 마음고생을 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교장이 먼저 되는 것이나, 조금 늦게 되는 것이나 혹은 교장이 아니되더라도 별 것 아닌 인생인데도 그 땐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막상 교장으로 되고서도 뭔가에 쫓기듯이 바쁘게 사셨다. 몸이 아프면서도 남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다고, 아픈 사람이라는 소리 듣기 싫다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미련곰탱이 같은 선배다. 훌쩍 떠나 버린 그 선배를 보면서 세상일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도 병상에 누워서 아마도 참 많은 후회를 했을 테다. '뭐하러 이렇게 달려왔을까, 내가 지금 가진 것은 뭔가, 다 부질없구나. 다시 일어난다면 이렇게는 살지 않으리'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침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으로 아침 먹기, 동네 한 바퀴 산책하기,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기. 시시한 일상이지만 몸이 아프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좀 더 일찍, 건강할 때 깨닫지 못할까. 조금만 지나면 알게 되면서도 남과 비교하면서 매일 지고 산다.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지고, 더 빨리 승진하는 사람에게 지고, 더 넓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게 진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매일 잊고 산다. 제인 케니언의 시를 다시 읽어 본다. 그때가 되어서야 그 작고 소소한 것들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지혜


대학 동기 밴드에서 논란이 있었다. 교육부에서 예고한 교장공모제 확대 관련 문제였다. 전교조 지부장을 하고 있는 동기가, 어느 중등 사립학교 교사가 쓴 글이라며 올린 글에 대해 동기들이 댓글을 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서로의 입장들이 달랐다. 지부장을 하고 있는 동기는 교장공모제 확대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밴드에 글을 남기고 댓글을 다는 동기들은 교감으로 승진하고 교장을 기다리는 처지라 공모제 확대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서로가 커다란 벽을 두고 마주 선다. 댓글이 늘어나면서 교장공모제의 확대에 따른 이야기가 이성적 논리와는 점점 멀어졌다. 글과 또 다른 글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이 이어졌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보다는 자기 이야기만 했다. '왜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지켜본 후에, 좀 비겁하게도 마크햄의 시로 댓글을 달았다.


 < 원 >  에드윈 마크햄


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 류시화,『시로 납치하다(더숲, 2018)』에서 인용 -

'지금 우리는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고서 자신의 주장과 다르거나 자기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동그라미 밖으로 밀어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실제로는 다 같이 연결된 '우리'인데도. 여기에 놀라운 진리가 있다. 계속 밀어내면 원은 점점 작아진다. 더 많이 초대하고 끌어들일수록 원은 넓어진다.' 류시화 시인의 말이다.


중년에 새로 읽는 시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시를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때때로 찾아오는 아픔에 위로를 받는다. 시의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살아갈 시간들을 위한 지혜를 얻는다. 그러면서 꽃과 바람, 태양과 파도, 사랑과 헤어짐 속에서 '사람'을 읽는다. 깨달음이 너무 늦지 않도록 툭 하고 나의 어깨를 친다. 지금 다시 읽는 시는 그렇게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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