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중년,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중입니다
신화가 현실이 되다
1873년 어느 날, 영국과 독일의 신문에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만한 기사가 났다. 신화가 사실로 드러났다는 내용이었다.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이라는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터키의 차나칼레(Canakkale) 지역의 트로이에서 고대의 유적을 발굴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호메로스( Homeros, Homer 약 기원전 800년 ~ 기원전 750년 경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시인)의 일리아스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트로이 전쟁의 증거를 발굴하고 확인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는 보도였다.
트로이의 고대 유적지는 초기 유럽 문명 발달사 중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곳이며, 유럽 문명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더욱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2,000년 이상 예술 창작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 때문에 이곳은 특별한 문화적 중요성을 가진다. 트로이는 에게 해의 아나톨리아와 발칸 반도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동양적 매력을 가진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 유적지이며 현대 고고학의 출발 지점으로서 공인받은 유적지다(고 이윤기 선생은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작가정신, 2002)』에서 트로이 탐방이 터기 여행의 계륵이라고도 했다. 터키 여행에서 빼먹자니 아쉽고, 가서 보자니 그 수고에 비해 실제로는 별로 볼 것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의 자서전인 『고대에 대한 열정(일빛, 1997)』에 의하면, 이 유적을 발굴한 슐리만은 1822년, 메클렌부르크 슈베른(독일 북부에 위치한 대공국)의 작은 도시 노이부코프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1850년대 크림전쟁과 미국의 남북전쟁 와중에 하던 사업이 번창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1866년 파리로 이주하면서 사업을 접고, 오랫동안 갈망하던 고대사 연구에 착수한다. 이후 꿈에 그리던 터기와 그리스 일대를 탐사하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관련된 유적들을 탐구하던 중 1870~1873년 히실리크 언덕(Hisarlık Tepesi)에서 대규모 발굴 작업을 통해 그것이 트로이 유적이라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전 세계에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후에도 세 차례나 히실리크 언덕 일대를 발굴하여 여러 층에 걸친 트로이 유적을 발견하는 등 고대 유적지 발굴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다.
슐리만이 발굴한 트로이 지역은 고대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이 전쟁을 벌인 곳이다. 전쟁이 있기 전에는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이 다르다넬스 해협을 오가는 상선으로부터 통행료를 받으며 부유하게 살던 곳이었다. 하지만 트로이 전쟁 후, 도시국가는 멸망하고 폐허가 되었다. 트로이 전쟁의 기원은 그리스 로마 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야기는 트로이의 반대편인 그리스 연합군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태어나기 전에서 부터 시작한다.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모든 신이 초대받았지만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은 예외였다. 불화의 여신이 가만히 있을리 만무하다. 에리스는 초대받지 못한 결혼식에 홀연히 나타나서는 황금사과를 하나 흘리고 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그 사과의 주인이라며 불화의 씨를 남겨 놓은 것이다. 아니라 다를까, 자기가 사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세 여신이 나타난다. 제우스의 아내이자 결혼과 가정의 신 헤라, 전쟁과 정의의 신 아테네, 사랑과 아름다움의 신 아프로디테가 그들이다. 서로가 자신이 제일 아름답기 때문에 사과는 당연히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다투기 시작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다툼이 계속되자 급기야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에게 결정을 해 달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여신들의 다툼이 휘말리기 싫었던 제우스는 그 심판을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에게 떠 넘겨 버린다. 파리스는 우여곡절 끝에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주겠다는 아프로디테의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여인이 다름 아닌,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였다. 이미 결혼하여 남편까지 있는 여자였지만 쿠피트가 쏜 사랑의 화살에 맞은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들고 만다. 스파르타에 사신으로 간 파리스와 눈이 맞은 헬레네는 트로이로 야반도주를 하게 되고, 아내를 잃은 메넬라오스가 그의 형인 뮈케나이 왕 아가멤논에게 도움을 청해 그리스 연합군이 꾸려진다. 이 연합군과 트로이 간의 10여 년의 전쟁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트로이 왕자와 사랑에 빠진 헬레네를 되찾아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좀 어처구니가 없기는 하다. 게다가 그 전쟁에 헤라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관여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향
호메로스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트로이의 흔적들을 슐리만이 실제로 발굴했으니 신화가 현실이 된 것이다. 고대의 신화가 사람들의 눈앞에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신화를 읽은 세계의 많은 관광객들이 트로이를 찾고 있다. 남아 있는 것은 오래된 벽돌과 흙과 바람뿐인데도, 그 속에서 사람들은 신화를 떠 올린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트로이 성을 지켜내는 트로이 군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아킬레우스에게 목숨을 잃은 헥토르의 죽음을 지켜본 프리아모스의 슬픔을 느낀다. 에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그 날의 절규와 함성이 묻어 있기라도 하듯이 온 몸으로 바람을 맞아 보는 이도 있겠다. 브래드 피트가 영웅 아킬레우스 역을 연기한 영화 <트로이(2004)>를 이미 본 사람이라면 영화의 장면들을 폐허 속에서 떠 올리기도 하겠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서양 문명 저변에 대단히 큰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가 융성했던 중세에도 수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소재를 가져다 썼으며, 근대와 현재까지 그리스 신화에 관련된 소재가 주요 개념의 어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그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나르시시즘 등 용어가 대표적이다. 신화의 내용을 알아두면 서양문화와 문학작품을 이해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이 그리스 신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으며, 신화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림으로 조각으로 소설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제우스 신을 비롯한 신들이 주인공이지만 내용을 보면 우리 인간들의 세상살이와 비슷한 면이 많다. 누가, 언제, 어떻게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전해져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화를 만든 이도 사람일 것이고 사람의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화에는 신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랑과 질투, 배신과 복수, 기쁨과 슬픔 등 인간사의 모든 애환이 그 속에 담겨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때론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부모와 자식간의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카루스의 추락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왕국의 건축가다. 그의 이름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는 이야기에 등장한다. 크레타 왕국의 왕비 파시파에가 황소와의 정분으로 낳은 자식인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 지은 미로(라비린토스)를 만든이가 바로 그다.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는 라비린토스를 만들었지만, 그리스의 영우 테세우스에 의해 그 비밀이 풀리면서 다이달로스도 곤경해 빠진다. 그 일로 미노스 왕의 신임을 잃은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섬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으나 왕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크레타 섬을 몰래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새의 날개에서 깃털을 모아 실로 엮고 밀랍을 발라 날개를 만든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루스에게도 날개를 달아 주며 비행 연습을 시키고 함께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아들에게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에 의해 밀랍이 녹으니 너무 높이 날지 말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물기에 의해 날개가 무거워지니 항상 하늘과 바다의 중간으로만 날아라"라고 단단히 주의를 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자식은 부모 말을 세겨 듣지 않는다.
마침내 탈출하는 날, 날개를 단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카루스는 자유롭게 날게 되자 아버지의 간곡한 당부도 잊은 해 하늘 높이 마음껏 날고 싶어졌다. 그는 한껏 날아올랐다. 그러자 태양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깃털을 붙였던 밀랍이 녹아버린다. 이카로스는 날개를 잃고 바다에 떨어져 죽고 만다. 이때 이카로스가 떨어져 죽은 바다가 '이카로스의 바다'라는 뜻의 이카리아 해이다.
누구나 어릴 때는 부모님으로부터 조심하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마라. 지나다닐 때 차 조심해라. 물 깊은 곳에는 가지 마라.",
"사람들 앞에 네가 나서지 마라. 꼭 네가 나서야 할 필요가 있나? 네가 그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아."
어른이 되고 자식을 둔 지금에서야 그 말들이 늘 자식을 걱정했던 부모의 마음임을 안다. 세상살이의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내 새끼는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때는 쓸데없는 잔소리로만 들렸다. 세상의 부조리와 잘못에도 눈감고 조용히 살아라는 비겁함이었다. 이제는 그 깊은 의미를 알아가지만, 그땐 왜 조금도 몰랐을까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자식이란 원래 그런 것인가? 지금의 내 자식들도 내 말을 잔소리로만 듣고 있는 걸까? 부모가 되어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
니오베의 자식 자랑
니오베(Niobe)는 리디아의 왕 탄탈로스의 딸이자 테베의 왕 암피온의 아내다. 그녀는 각각 7명의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그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테베에서는 여신 레토를 숭배하고 그녀의 자식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기념하는 축제가 해마다 열렸다. 니오베는 레토여신은 자식이 둘밖에 없는데 자신은 자랑스러운 아들, 딸들을 7명씩이나 두었다고 거만스럽게 말하면서, 그런 레토에게 제물을 바치는 제전을 중단하게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레토는 분노했고,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불러 니오베의 자식들을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먼저 아폴론이 니오베의 아들들을 하나씩 활로 쏴 죽였다. 이때 아들들 중 막내아들이 신들에게 용서를 빌자 아폴론이 불쌍히 여겼으나, 이미 화살을 쏴버린 상태라 살려줄 수는 없었다.
이를 본 아르테미스가 대신 딸들이라도 살려주려 했으나, 니오베가 "잔인한 레토여, 내겐 아직 7명의 예쁜 딸들이 있다!"며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여전히 기고만장하자 딸들도 죽여버리기로 결심하고 화살로 첫째 딸을 맞췄다. 그것을 시작으로 7명의 딸들을 모두 화살로 쏘아 죽였다. 이 모든 비극을 겪은 남편 암피온은 그 충격으로 자살하고, 니오베는 슬픔과 회한에 흐느끼다 돌로 변해 버린다. 지나친 자식 자랑이 화를 불러, 결국 모든 자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요즘은 '착한 부모 콤플렉스'가 부모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한 가정에 한 둘인 자녀가 소중하다는 생각에 부모가 자녀에게 잔소리나 야단을 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쩔쩔매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자녀 곁에서 모든 것을 다 해 주다 보니 대학, 군대, 심지어 직장의 문제에도 부모가 나서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이런 걸 자녀 사랑으로만 보기에는 좀 불편하다. 내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지나치다 보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생기지 힘들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몇몇 대기업 창업주의 자녀들이 보여주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은 그 태생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니오베의 이야기는 슬프고 참혹하지만,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중년이 되고 보니, 세상을 먼저 떠난 아버지와 늙은 몸으로 혼자 고향을 지키기는 어머니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지나온 시간들을 들춰 보아도 아버지와의 살가운 추억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을 건사하기에도 힘겨웠기 때문이리라. 자식의 입장에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비의 마음에서는 어떠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걸 보니, 이제야 철이 드나보다. 중년에야 겨우 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