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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pr 27. 2018

책 읽는 중년: 책 읽는 중년은 멋져 보인다

1장 중년,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중입니다

몽테뉴의 독서 예찬

'은퇴 이후 그것(독서)이 나를 위로한다.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통증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의지하기만 해도 된다.'  -수상록 2-

몽테뉴의 수상록에 있는 문장인데,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청미래, 2012)』에 소개된 내용이다. 이 짧은 문장은 노년의 철학자가 독서로부터 얻는 도움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말해준다. 직업으로부터, 일로부터 벗어난 이후 무료해지고 게을러지기 쉬운 나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독서라고 한다. 독서는 무료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책 속의 다른 세상에서 흥미와 재미를 발견하게 한다. 아마도 그는 몸도 성치 못하고, 때로는 심한 통증에 시달리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럴 때에도 독서는 통증을 잊게 하거나 완화시켜준다고 한다. 통증이 심해 책을 읽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면 늘 독서를 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때론 침울하고 우울한 생각이 들 때도, 그저 책에 의지하면 무기력한 심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어찌 독서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민낯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한 번 살펴보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의뢰하고 한국출판연구소에서 수행한 <2017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통해 살펴보자. 이번 조사는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6,000명과 , 전국 초중고 학생 3,329명을 대상으로 2017년 11월부터 40일간 실시한 것이다. 지난 1년간 일반도서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을 의미하는 연간 독서율(종이책 기준)에서 성인은 59.9%, 초중고 학생은 91.7%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15년 대비 각각 5.4%, 3.25%가 감소한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성인은 10명 중에 4명, 학생은 1명이라는 의미다. 연간 독서량을 보면 성인은 8.3권, 학생은 28.6권(초 67.1권, 중 18.5권, 고 8.8권)으로 나타났는데, 연간 독서량도 2년 전에 비해 각각 0.8권, 1.2권 감소했다고도 한다.


 조사 보고서는 이러한 독서율, 독서량의 감소의 원인은  경쟁적인 학업 및 취업준비(대학생), 사회생활(직장인) 등으로 대다수 성인들의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줄고 독서습관이 부족하며, 스마트폰의 일상적 이용과 같은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독서에 투여하던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향후에도 위와 같은 독서의 부정적인 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으므로 '19년도에 나올 독서실태 조사의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다. 독서율과 독서량은 더욱 감소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학생의 연간 독서량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독서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초등학생은 보는 책이 주로 동화책 등 분량이 적은 것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아침 독서 등 독서를 적극 권장하는 프로그램이 많아 독서를 많이 하게 된다. 중학생이 되면 본격적으로 성적을 위한 공부에 시달리게 되고, 학원 등을 다니느라 책을 가까이할 시간이나 환경이 부족해지기 시작한다. 한 달 5.6권(초)에서 1.5권(중)으로 급격히 줄어든 독서량이 그것을 말해 준다. 고등학생이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한 달에 1권도 채 읽지 못한다. 입시 준비를 위해 교과서나 참고서 외에 다른 책을 볼 여력이 아예 없어서다. 뿐만 아니라 책을 손에 잡고 있을 마음의 여유도 없어진다. 인간의 발달 단계를 고려했을 때, 사실 이 시기에 독서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독서를 전혀 하지 못한다. 이러한 경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사회에 진출해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성인의 낮은 독서률로  이어진다. 고등학생의 독서량(8.8권)과 성인의 독서량(8.3권)이 비슷한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서 흥미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성인의 과반수(57.5%)는 과거 학생 시절에 부모나 교사가 책 읽기를 권장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성인의 연간 독서율(59.9%)과 매우 유사한 수치다. 학생 시절에 책 읽기를 권장받은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책을 읽는 비율이 높게 나온다는 분석 결과를 보면, 두 가지 수치를 연결하는데 무리가 없는 듯하다. 더욱이 학생에게 독서를 권장하는 비율은 선생님(56.4%)이 부모님(59.5%) 보다 낮게 나왔는데, 선생님의 절반 가량이 독서를 권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유가 뭘까? 책을 읽는 것은 학업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까, 아니면 선생님 자신이 독서를 하지 않기 때문일까? 모든 선생님은 학생에게 책 읽기를 권장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책 읽는 중년은 멋있다

부모나 선생님이 책을 읽으라고 권장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으면 좋다는 점을 누구나 안다. 어릴 때의 독서와 대학생의 독서가 다르고, 성인이 되어서의 독서의 목적이 다르긴 하지만, 독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해야 하는 것임을 안다. 더구나 중년은 더 책 읽기에 좋은 시기다. 중년의 독서가 좋은 점은 무엇일까?


책 읽는 중년은 멋져 보인다. 커피점이나 공원에서 책 읽는 중년 남녀를 본 적이 있는가? 커피 전문점에서 책을 열심히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들이다. 그들도 '독서'라기보다는 리포트를 준비하거나 공부를 하는 경우다. 주말에는 카페에서 중년이 책을 읽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부부가 책을 읽는 모습, 창가에 앉아 혼자 책을 읽는 남자, 읽던 책을 탁자에 엎어 두고 물끄러미 창 밖을 내다보는 여자... 멋있지 않은가? 공공도서관에 가면 그런 모습은 더 흔하다. 비록 노안으로 돋보기는 썼지만, 책 읽기에 몰두하는 중년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중년의 독서는 살아온 경험과 지식을 조화시킬 수 있다. 학생 때의 책 읽기는 자신이 스스로 책을 선택해서 읽기보다는 학교에서 과제로 내어 주거나, 공부를 위해 하는 위주로 이루어진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의 책을 읽을 시간과 여유가 없다. 설령 읽는다 하더라고 내용을 다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도 힘들 것이다. 책을 이해하는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경험이 부족해서다. 중년의 독서는 경험과 지식의 조화가 쉽다. 나의 삶과 책 속의 그것을 비교하고,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얻은 지혜를 내 삶 속으로 바로 가져올 수도 있다. 중년에 하는 독서가 좋은 이유다.

중년의 독서는 생각을 유연하게 한다. 나이가 들면 생각이 굳고 경직되기 마련이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오면서 만들고 다듬어온 나름의 가치관과 주관, 신념이 있지 않은가. 그것이 지금까지의 나를 지탱해 온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무너지면 끝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렇게 되면, 나와 다른 생각을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라고 판단하게 된다. 틀렸다고 생각하면 벽을 쌓게 되고, 갈등이 생긴다. 그러니 변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소중한 것을 중심에 세우고, 세상을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과 가치관, 신념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다양한 '다름'이 모여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독서를 통해 생각의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남은 인생의 절반이 즐거워진다.

 

중년의 독서는 무료한 시간으로 부터의 해방이다. 중년이 되면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 예전 하고는 다르게 일과 직장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르겠다는 생각도 옅어졌다. 야근과 회식, 이어지는 술자리도 심드렁해진다. 자녀들은 대학입시에 바쁘거나 대학을 다니고 있을 시기라 부모의 손길이 덜 필요해진다. 시간이 남는다. 이런저런 동아리 모임에도 기웃거려 보지만 한창때처럼 열의가 생기지도 않는다. 그러니 책을 읽자. 중년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쩌면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온 날들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중년은 노년을 기다리는 시기가 아니라 노년을 준비하는 시기다. 잊고 지냈던 내 안의 욕망을 다시 일깨우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찾아보는 시간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새로운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자.


사실 이런 여러 가지 이점에도 불구하고 책 읽기를 꾸준히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시대의 글쟁이 고종석도 『쓰고 읽다(알마, 2016)』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덜 읽는 사람보다 꼭 더 지적이거나 현명한 건 아니야. 그러나 책은 우리가 직접 겪을 수 있는 세상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해 주지. 그리고 삶에 재미를 주지. 재미! 사실 이것만큼 중요한 독서 목표는 없을 거야. 아무리 평판이 좋아도, 재미없는 책이라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어.
 -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 현명해지고 싶어 책을 읽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하긴 그런 자신이 재미있으니 책을 읽게 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책을 꾸준히 읽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뭐 책을 읽는 일만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책은 누구나 좋아하고 '읽어야 한다'거나 '읽으면 좋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책 읽기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좀 힘든 일이다. 그 '좀 힘듦'이 주는 이점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중년들이여 책을 읽어 보자. 그러면서 멋진 중년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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