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로 서울 나들이를 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서울에 자주 가기는 하지만, 이번 나들이는 촌놈 서울 구경 가듯이 갔다. 시청 근처에 숙소를 잡고, 청와대, 현대미술관, 덕수궁과 호림박물관을 따라 주위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정이다. 교보문고 sam 강연에 운 좋게 당첨이 되어 <창조적 시선>이라는 목침 두께의 신간을 낸 김정운 교수(이 양반도 전직이다)의 강연을 직관하는 호사도 누렸다.
한옥의 옷을 입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부라타 샐러드와 피자로 점심을 먹고 청와대 관람을 갔다. 경복궁의 동쪽을 따라 올라가는데 감회가 새롭다. 얼어붙은 땅에 봄이 왔다고나 할까? 길거리에 생기가 돈다. 전경차와 경찰, 바리케이드는 거의 보이지 않고, 길가와 골목 사이에 카페와 음식점이 참 많이도 생겼다. 리모델링 공사사도 한창이다. '여기 와 본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청와대 오른쪽 끝에 있는 건물이 기자회견 등을 하는 춘추관인데, 여기에 바깥으로 문이 생겼다. 청와대 개방을 하면서 생긴 것인지, 그 이전에 기자들의 출입 편의를 위해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다. 20여 년 전 그날, 내가 처음 청와대에 온 날에는 이 문이 없었으니.
2001년 초, 교육부 교육연구사로 발령을 받은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국장이 부르더니 청와대 행사를 맡아서 해야 하는데 잘 준비하라고 당부한다. 초등 여자 교장 250명을 이희호 여사님이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서 오찬 하는 행사다. 초등 여교장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자리였다. 그나저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다가 온 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은 나에게 이 업무가 떨어졌다. 사수인 교육연구관과 둘이 청와대 여민관에 있는 교육비서관실에 협의하러 몇 번 들락거렸다.
그 첫날, 그러니까 청와대를 처음 간 날이다. 걱정하던 나에게 연구관님은 청와대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아무 걱정 말고 자기만 따라오면 된단다. 경복궁 앞에 있는 광화문 세종청사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왜 차를 몰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둘이 차를 타고 가서는 지금의 춘추관 바깥 공터에 주차를 했다. 차에서 내려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어깨에 힘도 좀 주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청와대 안쪽에서 경비들이 뛰어 오면서 호루라기를 막 불어댄다. 깜짝 놀랐다. 다짜고짜 길 건너편 경복궁 쪽으로 가라고 고함을 친다. 당장 안 가면 허리에 찬 권총이라도 뽑아들 기세다. 나보다도 연구관이 더 놀랬다. '이전에 한 번도 안 와 봤구나' 속으로 낄낄 웃었다. 청와대 첫 경험이다.
춘추관 출입문으로 들어가니 직원분이 친절히 안내해 준다. 춘추관에 들어가 대변인이 브리핑 하던 마이크도 잡아보고, 청와대의 가장 뒤쪽에 있는 관저로 올라갔다. 헬기장 터의 잔디는 말할 것도 없고, 소나무들은 티 없이 맑게 하늘로 뻗어나가고 잎은 한여름의 생기를 하나하나 그대로 담았다. 관저는 일부 공사 중이고 내부는 들어갈 수 없어 건물을 한 바퀴 빙 둘렀다. '여기에 살던 대통령과 그 가족은 살다 보면 나오기 싫었겠구나. 구중궁궐이라는 말이 맞는 말이구나.' 직접 와서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관저를 보고 내려오니 녹지원이다. 녹지원에서의 추억도 생각이 난다. 2003년 5월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섬마을 초등학생 청와대 초청 행사가 있었다. 아이들은 녹지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방 행사를 다녀오시느라 좀 늦었다. 상기된 얼굴로 오시더니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 내가 대통령입니다.' 하시던 소탈한 인사말씀이 생각난다. 아이들은 입고 있던 티셔츠에 사인을 해달라고 해맑게 매달리곤 했다. 우리들은 긴장하며 쭉 줄지어 서 있다가 관등성명을 대고 악수를 했다.
녹지원 앞에 있는 미색 건물이 여민관이다. 대통령 비서실과 정부부처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뉴스에 자주 나오던 '모 행정관'이 근무하는 곳이 바로 여기다. 2015~2016년 박근혜 정부 말에도 이곳에 여러 번 들어왔었다. 그곳에서 내려오는 오더를 그대로 할 수는 없다고 겁 없이 우기기도 했었다. 큰 무리 없이 업무처리가 잘 되어서 그런 건지, 운이 좋아 그런 건지 모두 잘리지 않고, 뉴스에도 나지 않고, 재판도 받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생각해 보면 참 아슬아슬하고 힘든 시절이었다.
녹지원들 돌아 다시 본관으로 올라갔다. 여기가 바로 대통령이 근무하던 곳이다. 좌우측 홀에는 역대 대통령을 기억하는 소소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홀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2층 집무실로 올라가는 계단 앞이 포토존이다. 관람객은 한국 사람보다는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더 많다.
1층을 잠시 둘러보고 영빈관으로 내려갔다. 이곳이 20여 년 전, 이휘호 여사 초청 오찬을 하던 장소다. 여사님 옆에는 어느 출신 누가 앉고, 교육비서관 옆에는 누구, 총무비서관 옆에는 누구 등 300여 명의 자리 배치 계획도 짜고, 테이블에 놓는 이름표도 직접 만들었다. 여사님 말씀 자료 초안도 직접 쓰고, 교육부장관 말씀 자료도 썼다. '어린아이의 아픈 배를 쓰다듬는 마음으로 교육에 임에 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과장이 꼭 집어서 칭찬하던 문구다.
정문으로 내려오면서 뒤를 돌아봤다. 본관 뒤의 북악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수많은 굴곡진 상처를 가진 곳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명당이다. 왼편에는 인왕산의 바위가 당당하다. 겸재 정선이 1751년(영조 27년)에 소나기가 지나간 뒤 비에 젖은 인왕산의 모습을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국보 제216호) 모습 그대로다. 그로부터 250년, 인걸은 간데없고 산천은 의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