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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 탄차와 광부의 흔적을 따라 걷다

영월 청령포에서 삼척 소망의 탑까지 173.42km

by 배정철

1. 다시 설레는 마음


2023년 10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완주하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2차 순례를 가기 전에 작년에 개통하고 올해 9개의 코스가 모두 열린 '운탄고도 1330'을 걷는다. 산티아고 2차 순례(레온~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13일, 310km 코스이고(1일 평균 23.8km), 운탄고도는 9일, 173km(1일 평균 19.2km) 일정이다.


지난봄부터 간간이 하루에 10km 이상을 걷기는 했지만 매일 20km 내외를 1주일 이상 걷는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우선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견딜 수 있을지, 버티어 낼지 모르겠다. 걷기 연습을 많이 하지 않은 상태라 2022년 여름에 스페인 산티아고 1차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하던 걱정이 가슴을 잔뜩 움츠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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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스스로 대견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걷는 날만 스무날이었는데, 초반 4~5일은 감기 몸살로 힘들었고, 그다음부터는 발에 물집이 생겨 고생했는데도 계획한 20일, 493km를 계획한 대로 걸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운탄고도는 그리 걱정할 것도 못된다. 우선 말이 통하는 국내이고, 위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우리 먹거리를 먹을 수 있으니 크게 염려할 것도 없다. 힘이 들면 조금 천천히 걷고, 땀이 나면 식혀 가고, 다리가 아프면 쉬어가면 된다.


2. 운탄고도 1330이란?


'운탄고도 1330'은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에서 삼척시 소망의 탑까지의 173.42km, 430리 길이다. 고도가 제일 높은 곳은 함백산 만항재로 해발고도 1330m, 제일 낮은 곳은 삼척의 소망의 탑과 오십천이다. 2022년 9월에 정식 개통이 되었는데, 석탄 호황기 시절에 석탄을 싣고 달리던 차들이 오가던 길이라 하여 '운탄고도', 해발고도가 제일 높은 만항재가 1330m라 하여 길의 이름을 '운탄고도 1330'으로 정했다고 한다. ‘석탄을 나르던 옛 길(運炭古道)’이라는 뜻이지만, 멋을 아는 이들은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고원 길(雲坦高道)’이라고도 한다.

l_2022021401001530100137502.jpg <그래픽은 경향신문에서 인용>

"석탄산업 호황기에 가장 질 좋은 무연탄을 생산하던 옥동광업소와 폐광산의 잔해들, 철분 가득한 물줄기가 쏟아지는 황금폭포, 석항역의 폐열차를 활용한 이색 숙박시설 트레인스테이, 석탄을 싣고 달리는 차들이 오가던 만항재, 광부의 아내들이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연못에 살고 있던 도롱뇽에게 기도를 했던 도롱이 연못, 폐선이 된 영동선 스위치백 구간을 활용한 하이원 추추파크, 대표적인 광산촌 마을 까막동네, 석탄산업 합리화 이후 본연의 임무를 뒤로하고 추억의 장소로 남게 된 간이역까지... 한때 지역과 대한민국의 부흥을 이끌었던 탄광의 흔적을 코스 내내 발견할 수 있다.'라고 운탄고도 1330 공식 홈페이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람의 냄새가 가득한 곳이라는 말이다.


3. 석탄 산업의 호황과 쇠퇴


우리나라의 근대적 석탄개발은 1896년 니시첸스키가 함경도 경성과 경원지방의 석탄채굴권을 획득하면서 시작되었다. 문경탄광을 비롯한 화순, 은성, 영월, 삼척 등의 탄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에 따른 석탄 수요를 충족하기 위함이었다.


해방 이후 당시 탄광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자치운영회를 조직 운영하였고 1950년 11월에는 '대한석탄공사'가 발족하였다. 1961년 군사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석탄증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으로 1966년에는 1161만 톤을 생산함으로써 석탄의 자급자족을 거의 실현하기도 했다.

NISI20230504_0001258931_web.jpg <Newsis 사진 인용>

하지만 1966년 10월 연탄파동을 계기로 꾸준히 성장했던 석탄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연탄파동이 발생하자 정부는 에너지정책을 석탄위주에서 유류위주(주유종탄)로 전환한다. 정부의 ‘주유종탄’ 정책으로 인해 쇠퇴가 더욱 빨라진다. 1980년대 중반부터 국제유가가 안정되면서 1989년부터 1996년까지 모두 334개의 탄광이 폐광되어 석탄산업은 찬란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980년 후반 대학을 다닐 때, 학교 앞 자취방은 거의 대부분이 연탄보일러였다. 연탄가스로 인한 인명 사고가 뉴스에 심심찮게 보도되던 시절이었다. 1991년 거제로 첫 발령을 받아 간 곳의 자취방은 다행히 기름보일러였고, 선배가 숙식하던 학교 사택은 여전히 연탄보일러였다. 겨울철이면 연탄을 꺼지지 않게 잘 이어 탄을 갈아주는 게 아주 중요했다. 새벽녘에 연탄불이 꺼지기라도 하면 손이 꽁꽁 얼 정도로 찬물에 세수를 하던지, 아니면 씻지도 않고 학교에 가야했다.


한 때의 영광을 누리던 탄광과 광부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살던 마을과 그들이 지나던 길은 남았다. 석탄을 가득 싣은 트럭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힘겹게 산길을 오르내리던 그 길은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그 길을 기억하던 사람들의 손에 의해 다시 되살아났다. 트럭에 실려 바람에 날리던 석탄재는 비바람에 씻기고 땅속에 스며들었지만 광부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흔적은 언뜻언뜻 남았으리라. 이제 그곳에 화려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날의 흔적을 따라 길을 걷는다.



<운탄고도 1330을 걷다> 연재는 10화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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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대한민국의 부흥을 이끌었던 탄광의 흔적을 코스 내내 발견할 수 있다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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