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좋으면 다 좋다
1길 청령포~각동리 : 15.60km 5시간 30분 고도 186~637m
- [아침 이동] 세종(7:00)-<173km, 2:30분>-운탄고도 1330 통합안내센터(9:30)
- [1길 트레킹] 통합안내센터-별빛 트레킹 지점-세경대입구-각고개 입구-남한강 카누-길론골-각동리(14:30)
[원점 회귀] 각동리(15:54/15구인사, 20분)-씨티볼링장앞,푸른사랑병원(16:14, 17:37)-청령포주차장-(22km, 20분)-예미MTB마을호스텔(1박)
- 볼거리 : 청령포, 고씨동굴
이제 출발이다.
세종시에서 운탄고도 1330의 1길의 시작점인 강원도 영월군 '운탄고도 1330 통합안내센터'까지는 177km, 2시간 20분 거리다. 09:30에는 트레킹을 시작해야 하니 07:00에 출발한다. 출발은 그 보다 30분 일찍 했는데 고속도로에 차가 많이 밀려서 결국 9시 30에 도착. 통합안내센터는 문이 굳게 닫혀있고, 거미줄까지 쳐져 있는 걸 보니 운영을 안 한지가 꽤 된 모양이다. 시작은 강 건너편 청령포 주차장이라 차를 두고 걸어서 갔다.
첫날 트레킹은 15.6km, 5시간 반이 걸리는 코스다. 도착점인 각동리에서 출발지점인 통합안내센터로 다시 돌아오려면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버스 시간을 미리 알고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 버스는 오전에 2번, 오후에 3번 운행하는데 배차 시간이 3시간 정도로 길어 한 번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택시 부르기도 힘든 곳이라 트레킹 계획을 세울 때 미리 잘 살펴봐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몇몇 사람들이 단종유배지로 건너가기 위해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다. 조선의 제6대 왕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채 한양에서 이곳 영월로 유배길에 오른다.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당한 뒤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장릉에 묻히기까지 영월 곳곳에는 단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어느 겨울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단종유배지는 선착장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곳이다. 강의 이편에서 저편이 보이는 넓지 않은 강이지만 청령포는 그렇게 강물이 삼면 둘러싸여 있고, 강이 없는 남쪽은 육육봉의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어 육지이면서 외딴섬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단종은 그렇게 열일곱의 나이로 비운의 생을 마감한다.
청령포 주차장에 있는 운탄고도 푯말을 확인하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오르막이다. 1~2코스는 석탄을 운반하던 길이 아니라 그런지 길이 좁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100여 m 정도 지나자 길이 넓어지고 걷기에 좋다. 맨발 걷기를 하고 있는 분도 있다. 별빛트레킹 종점을 지나자 길가 양쪽으로 군데군데 집들이 들어서 있다. 말라버린 옥수숫대를 타고 보랏빛 나팔꽃이 핀 모습이 낯설다.
2km 지점에 오니 <청령포역>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역문에는 자물쇠가 단단히 잠겨 있다. 청령포역은 태백선이 지나는 길인데, 태백선은 충북 제천역에서 강원도 태백시 백산역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다. 전 구간이 전철화되어 있고, 여객 운송보다는 화물 운송 비율이 높은 노선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해발고도가 높은 구간이다. 세경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기차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역시 화물차다. 역은 그 역할을 잃었지만 철길은 여전히 살아 기차를 보내고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세경대학교가 있고, 대학을 지나 오른쪽을 돌면 작은 지하차도가 나오고 곧 팔괴교를 만나게 된다. 지난 수해 때 이곳도 피해가 많았는데 포클레인과 트렉트가 강변을 열심히 정비하고 있고,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서강이다. 서강은 평창군 오대산 남쪽에서 발원한 평창강과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이 만나 영월읍 서쪽으로 흘러 동강과 만나는 지점까지를 말한다. 서강은 동강과 만나 남한강을 이루어 단양, 제천, 충주호로 흘러들어 간다. 강은 제 몸과 다른 강물을 섞어 새로운 이름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그렇게 흘러 바다가 된다.
팔괴교를 지나 곧 왼쪽으로 꺾어 걷는다. 맞은편에 빨간 지붕에 하얀 목재 외벽을 가진 <성은교회>가 있고 옆에는 교회건물보다 낮은 높이의 <꿈을 담는 도서관>이 보인다. 교회와 도서관이라는 그 배치도 건물 외양만큼이나 앙증맞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나 같은 사람도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 잠시 기도를 드리고 싶어 진다.
마을 길을 따라 걷다 곧 각고개 입구다. 여기서부터 다시 오르막 산길이다. 그러다가 곧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이다. 걷기에 참 좋다. 왼쪽으로는 남한강의 거친 물이 세차게 흘러간다. 높지 않은 오르막과 급하지 않은 내리막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7km를 걸었다. 고도 250m 이곳에도 주택이 군데군데 있고, 가지, 고추, 고구마, 호박 농사가 제법 크다. 길가의 밤나무에 밤송이도 옹골지다. 추석 때쯤이면 가족들이 모여 밤을 따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그려져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게 이름이 다소 이상한 팔괴2리 마을에 도착한다.
팔괴리라… . 무슨 사연이 있을까 찾아봤다. 팔괴리(八槐里)는 원래 남면(南面) 땅이었으나 1973년 7월 행정 구역 개편으로 영월읍에 편입되었는데, 팔괴리의 지명 유래는 1914년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령에 의해서 '팔계리(八溪里)'와 '괴안리(槐安里)'마을에서 첫자를 따서 '팔괴리(八槐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팔괴2리는 카누 타기로 유명하다는데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카누는 보이지 않는다. 거친 남한강이 이곳에서는 다소 얌전해진다. 강물이 흐르는 직선 방향 끝에 넓은 곳이 있어 여기서 물이 순해지고 왼쪽으로 꺾어지며 얕은 자갈을 따라 흐르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소란스럽다. 이 순하고 넓은 강물에서 카누를 타는 모양이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개울을 만나는데, 여기서 소위 ‘알바-길을 잃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헤매는 것’를 하게 되었다고 하는 후기들이 많다. 지난주 내린 비로 수량이 많아져 개울을 넘어가기 힘들어 길을 좀 둘렀다. 개울을 건너고서도 길이 물에 잠긴 곳이 많아 경사진 옹벽 위로 올라 걷다가 보니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체력 소모도 많았다.
고가도로 아래쪽에서부터 다시 태화산을 오른다. 숙소에 돌아와 고도를 확인해 보니 오늘 올라간 최고 높이는 635m다. 이곳에서부터 5km 정도 오르막 산행이다. 돌아와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도 숨이 찰 정도다. 경사가 가파른 것도 힘들었지만 한참을 올랐다 다시 내려가고 좀 편하다 싶으면 다시 오르기를 서너 번 반복하는 구간이다.
그렇게 고개 정상에 오르면 이제부터 내리막이다 싶은데 그렇지도 않다. 산을 내려오는 길도 오르내리는 길이 반복된다. 길론골을 2km 정도 앞두고는 줄곧 내리막인데, 이 내리막 길도 크고 작은 바위로 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 쉽지 않은 코스다. 내리막 경사도 심하다. 그렇게 2km를 내려와 길론골에 이르렀어도 끝이 아니다. 시멘트 포장길도 경사가 심해서 풀린 다리에 줄곧 힘을 주고 걸어야 한다.
소요시간 5시간 30분을 예상하고 걸었는데, 각동리 마을 올라가는 길에 내려서기까지 6시간 55분이 걸렸다. 3시 54분 버스는 떠난 지 오래다. 다음 버스는 3시간 뒤 6시 54분에 있다. 각동교를 건너 버스정류장 표지판도 없는 정류장에 서서 히키하이킹을 시도했다. 참 오랜만에 해보는 짓이다.
차가 10대 정도 지나가고, 각동리 쪽에서 나오던 차가 영월 쪽으로 가더니 유턴을 해서 온다. ‘됐다!’ 우리 앞에서 유턴을 해서 선다. 부부가 골프연습장에 가는 중이라면 뒷좌석 짐을 한쪽으로 치우고 서는 친절하게도 청령포주차장까지 태워준다. 각동리 강가에 집을 짓고 산지 11년째라고 하며, 버스나 택시가 잘 없어 고생할 것 같아 되돌아왔다고 한다. 예상외의 힘든 오늘 여정의 끝이 다시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참고>
숙박: 예미MTB유스호스텔 6~7만원
식사 : 저녁-마당> 낚지볶음 1만원, 아침-햇반과 인스턴트 곰탕, 밑반찬
<운탄고도 1330을 걷다> 연재는 10화까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