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 비야 오지 말아라
<2길> 각동리~모운동 : 18.80km, 6시간 45분 643~171m
<오늘 걸은 길> 각동리~김삿갓 면사무소 10.1km, 4시간 02분
[아침 이동] 숙소(7:00)-<35.8km, 30분>-각동리
- [2길 트레킹] 각동리입구(7:30)-가재골-대야리-김삿갓면사무소-예밀교차로-출향인공원-장재터-모운동(14:20)
- [원점 회귀] 모운동-<15번/14:53/16분>-각동리(15:13)-<35.8km, 30분>-예미MTB마을호스텔(2박)
- 볼거리 : 예밀촌 마을(포도밭 와인 체험), 김삿갓 유적지
2길을 걷는 둘째 날이다. 밤새 다리가 아파서 끙끙 앓았다. 작년에 산티아고를 30km 걸은 날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운탄고도 1길을 먼저 걸은 이들이 남긴 후기에서 ‘영혼이 털렸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이해가 된다.
”내일 비가 오면 좋겠다 “
태풍 9호 사올라가 올라오고 있다며 영동, 영서 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릴 거라고 예보다. 오늘과 내일, 2~3길을 걷는 날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이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살짝 든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비는 오지 않고 하늘에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니 강한 바람이 오기는 오는 모양이다. 준비해 온 햇반과 곰탕 국물로 아침을 해결하고 커피도 한 통 내려서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오늘 일정은 각동리부터다. 어제 마음씨 좋은 부부가 살던 그 동네다. 각동리(角洞里)는 영월군의 김삿갓면에 있는 9개 마을 중 하나다. 마을 형상이 큰 소가 물을 마시는 형상이어서 ‘뿔 각(角)’ 자와 ‘고을 동(洞)’ 자를 써서 ‘각동리(角洞里)’라 한다. 김삿갓면은 하동면(下東面)을 2009년 10월 20일 변경한 것인데 와석리에서 김삿갓으로 불리는 조선시대 시인 김병연의 묘가 발견되고 지역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아침 기온은 27도, 선선하다. 숙소에서 각동리까지는 차로 30분 거리다. 차 유리창에 간간히 빗방울이 날린다.
각동리 버스 정류장 근처에 주차를 하고 등산화를 꺼내 신고 배낭을 멘다. 다리의 통증도 조금 덜 해진 느낌이다. 햇볕이 나지 않고 바람이 불어주니 걷기에는 오히려 좋은 날씨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 앞에 있는 가재골교를 향해 가면서 운탄고도 2길 시작이다. 다리를 건너면서 뒤를 돌아보니 각동마을이 명당이다. 마을 앞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뒤로는 태화산이 있고, 강변에 자리를 잡았으나 물과 마을 사이의 공간이 많아 물이 들이칠 염려는 없어 보인다. 매일 산과 강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 넉넉한 곳이다.
가재골로 올라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어 걷기에 좋다. 길 오른편으로는 맑고 세찬 물이 흐르는 계곡이고, 왼편 높은 곳은 대야산성이 있던 큰재(400.8m)다. ’대야산성은 돌로 축조한 테뫼식 산성(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산 정상부를 둘러쌓은 산성)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둘레는 약 400m, 높이는 4.5~5m 정도로 현재는 붕괴되어 남쪽과 서쪽 성벽 일부만 남아있다. 삼국시대 남한강 뱃길을 지키기 의한 성으로 온달성과 왕검성 사이에 축조되었다. 대야산성에서 바라보면 남한강과 어우러진 마을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라고 안내 표지판에 적혀 있다.
가재골까지는 2.0km. 계곡 양편으로 비탈진 곳에 주택이 여럿 있다. 밭에서 고추를 한 바구니 따서 들고 가는 분과 인사를 나눴는데, 지나간 뒤에 끝에 매운 향이 코끝을 찌른다. 산세가 험해서 그런지 고놈 고추도 참 맵겠다. 큰재 고개까지는 0.5km 거리인데 경사가 가파른 산길이다. 오늘 넘어야 할 세 번의 고개 중에 제일 낮은 곳이다. 산을 넘어가니 대야리 마을이다.
내리막 길을 거의 내려오니 멀리 마을에서 보이는 것은 ‘대야감리교회’. 우리나라는 도심이던 농촌이던 산골이던 어디든지 교회가 있다. 작은 마을에서는 교회가 제일 크고 화려하다. 마치 중세 유럽의 마을이 그랬듯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넓은 밀밭과 옥수수밭을 지나면 저 멀리 마을이 보이는데, 마음이 가운데 자리잡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확연히 보인다.
대야리(大野里)는 큰 대에 들 야자를 쓰는 이름처럼 커다란 산이 즐비한 이곳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들이 넓다. 주택은 산비탈에 주로 자리를 잡았고, 강과 마을 사이에 있는 넓은 들에는 대부분 콩이 자라고 있다. 마을 정자에서 할머니 두 분을 만났는데, 콩 잎이 벌레가 먹은 것 같다고 했더니 그렇잖아도 최근에 드론으로 약을 쳤다고 한다.
“여기는 주로 콩 농사를 짓나 봐요?”
“요즘을 쌀보다 콩이 비싸니께 다들 콩을 심나벼”
하긴 쌀 소비량이 얼마나 많이 줄었나. 나 같은 사람도 효과도 없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쌀밥을 줄이고 있으니…
마을을 벗어나면 강옆을 돌아가는 차도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오른다. 고도 438m까지 올라가는 산길이다. 1.5km를 올랐다. 오늘 두 번째로 산을 넘는 것이다. 어제 걸은 1길도 힘들었는데 오늘의 2길도 만만찮다. 인터넷에 후기를 남기는 사람은 그나마 애정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영혼이 털림‘, ’개 힘듦‘, ’길을 다시 정비해야 할 듯‘ 하는 글이 심심찮게 나온다. 아직 3길 이후를 걸어보지 않아서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1~2길은 정비와 개선을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주말에 하루이틀 정도 시간을 내어서 한두 코스를 걷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하루에 산을 2~3개를 넘는 난코스라 쉽게 도전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산을 넘는 길은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을 새로 만들고, 1길의 팔괴마을 이후에는 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테크길을 조성하면 어떨까. 15~20km 되는 거리는 사실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산을 넘어야 하는 산길은 등산 코스라면 몰라도 트레킹 코스로는 적당하지 않다.
특히 이곳 강원의 산은 가팔라 오르막도 힘들지만 내리막은 경사가 심해 미끄럼 사고 위험도 높아 보인다. 산을 넘어가는 것보다 산을 돌아가면 산을 더 잘 볼 수 있다. 남한강의 그 힘찬 물결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면 명품길이 될 자원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곳이다.
대야리에서 3.5km를 힘겹게 걸어 산을 넘었다. 얕은 물을 세차게 흐르는 강물의 소리가 땀을 식혀준다. 물이 너무 맑고 좋다. 잠시 쉬어 가자. 강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신발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니 천국이 따로 없다. 계곡이 아니라 강물인데도 물이 차서 뜨거운 발이 금방 식는다. 어릴 때 엄마가 해 주던 등물도 하고 한참을 놀았다.
새로운 기운을 얻어 김삿갓면 사무소 쪽으로 걷는다. ‘행복한 나눔마을 옥동리’라는 커다란 표지석과 함께 ‘백우 김상태 의병장 전적비’가 이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을 짐작케 한다. 표지석 뒤에 김삿갓면 아리랑 장터에 포도판매 자판이 펼쳐졌다. 못 들고 간다고 두 송이만 달랬더니 한 송이를 주면서 우선 먹어 보란다. 포도가 탱글탱글하고 달다. 결국 만 원어치를 샀다. 포도 파는 아주머니 말씀이 재밌다.
“부작이 이 정도인데 주작(주로 재배하는 것)은 어떻것어요?”
“주작은 뭔데요?”
“절임배추요” 하시며 명함을 주신다.
“아하, 이번 겨울 김장배추는 꼭 아주머니께 주문할게요.”
예일 마을로 가는 길에 포도 한송이 순삭.
예밀교차로, 출항인공원, 장재터를 지나 모운동까지 가려면 아직 9km는 더 걸어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길이 미끄러워 가파른 산을 오르기는 위험한데 어떡하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저 앞정류장에 버스가 멈춰 선다. 뛰었다. 우리를 보고 잠시 기다려 준 버스에 아무런 주저함 없이 올라탔다. 2시간 후, 아니 5시간 후나 되어서야 각동리로 돌아가기 위해 타야 할 그 노선 버스다. 4시간을 걸어 간 길을 10분만에 되돌아 왔다.
오늘은 여기까지. 힘들어서가 아니라 비 때문이다.
<점심> 정선 <가보세식당> 김치찌개 9,000원 연세 드신 내외가 운영하는 정겨운 집밥 맛집
#운탄고도1330 #트레킹
* 운탄고도 1330을 걷다> 연재는 10화까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