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모운동과 비에 젖은 부석사
광부의 삶을 돌아보며 걷는 길
[아침 이동] 숙소(8:00)-<도보 5분>-예미역정류장-<20(함백), 08:37, 12분>-석항리정류장<22(녹전), 09:06, 40분>-주문교앞정류장<17, 10:26, 10분>
[3길 트레킹] 모운동(10:40)-황금폭포 전망대-싸리재-만봉사갈림길-수라삼거리-석항삼거리-신동읍 집하장-예미농공단지-예미역(16:30)
[원점 회귀] <25.4km, 23분>- 그랜드인투라온 호텔 정선(3박)
- 볼거리 : 모운동 벽화마을, 황금폭포
04:30에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야 하는데, 비가 그쳤을까?’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온다.
‘어쩌지?’
오늘 예정한 길이 운탄고도 3길, 모운동에서 숙소가 있는 예미역까지 16.8km다. 예미역에서 모운동으로 가서 이곳 예미역으로 다시 올 계획인데, 모운동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 버스를 3번을 갈아 타야 모운동 출발지까지 갈 수 있다. 저녁 내내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차를 타고 세 번째 버스를 갈아 타야 하는 주문교앞 정류장(6:41, 10:26 출발)까지 차로 이동한 다음, 마을버스로 모운동까지 갈려다가 그냥 차로 모운동까지 바로 가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느긋하게 새벽밥을 먹고 출발!
비가 많이 온다. 죽전마을 작은 다리 위에 잠시 정차하고 물구경, 어제의 그 맑디 맑은 물이 온통 흙탕물이다. 이곳 강원의 산들은 가파르다. 비가 오면 개울이나 강으로 물이 곧장 내려 모이고 그 힘들이 모여 소란하고 거칠게 낮은 곳을 찾아 내달린다. 저 힘 앞에 인간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쓸데없는 감상이 불쑥거리는 건 나이 먹은 증거다.
주문교 다리에서 운탄고도 마을호텔이 있는 모운동까지는 5km 거리다. 차를 타고 올라와 보니 걸어서 오기는 힘든 코스다.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고, 차가 두 대 지나갈 정도로 넓지만 경사가 제법 심해서 걸으면 2시간 정도는 족히 걸리겠다. 모운동, 구름이 모여 쉬어 가는 마을, 해발 700m가 넘는 곳이다. ‘운탄고도 마을호텔’ 앞에 주차하고 버스 정류장 안에서 가져온 커피를 마신다. 정류장은 의외로 아늑하다. 비와 바람도 막아주고, 전망 마저 좋다. 비 내린 모습을 보며 마시는 모닝 커피, 전망 좋은 카페가 따로 없다. 아직 아침 7시가 안 된 시각, 첫 버스가 막 올라온다.
한참을 쉬다 판초우의를 꺼내고 채비를 한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일단 가보자.‘
벽화마을(벽화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두 어채 담벼락에 그림이 있는 정도)을 지나 트레킹을 시작한다. 비는 오지만 공기는 상쾌하고 기분은 좋고 발걸음은 가볍다. 탄차가 다니던 길이라서 그런지 길도 넓다. 작은 돌이 깔린 길이라 군데군데 물웅덩이만 피하면 걷기에도 나쁘지 않다. 조금 걷다 보니 (구)동발제작소다. 갱도가 무너지지 않게 받치는 나무기둥을 ‘동발’이라고 하는데 이곳이 그 동발을 제작하는 곳이다. 광산사고의 60% 이상이 갱도붕괴로 인한 것인데, 나중에는 나무 대신 콘크리트로 동발을 만들었다고 한다. 제작소의 창문이 달린 벽채와 이끼가 잔뜩 끼인 부서진 콘크리트 동발만이 풀숲에 덩그러니 남았다.
곧이어 ‘광부의 샘’이다. 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이 옹달샘은 광부들이 동전을 던지며 자신의 안전과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던 곳이다. 갱도로 향하며 ‘오늘도 무사히’라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어 낸 광부들의 마음을 이 작은 옹달샘은 기억하고 있을까? 그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구리 한 마리가 수영에 한창이다.
얼마 안 가 오른편으로 나무 계단을 오려면 황금폭포 전망대다. 이곳은 옥동광업소가 운영하던 옥동광산이 있던 폐광구 내부에서 흘러나온 물을 별도의 동력 없이 낙차를 이용해 이곳까지 끌고 와 만든 폭포가 황금폭도다. 갱도의 철분 성분으로 인해 물 빛깔이 황금색처럼 보이고 물이 흘러내리는 암석들도 황금빛으로 물들어 ‘황금폭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운무와 함께 깊은 계곡이 장관이다. 겨울철에는 얼어붙은 얼음벽이 볼만하다고 한다.
계단 옆에는 이희경 작가가 만든 ‘휴식’이라는 청동 작품이 있다. 석탄을 캐다 나온 부산물인 잡석을 실어와 버리던 곳이라는데, 탄차에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광부의 모습을 담았다. 광부의 얼굴에 잔주름과 함께 옅은 미소가 멈췄다. 갱도에서 나와 상괘한 공기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는 그 짧은 시간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걸까.
이번에 운탄고도 트레킹을 간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더니 예전에 같이 근무하시던 교장님이 연락을 주셨다. 부친께서 이곳 탄광에서 일 하신 적이 있다고. 그 당시 교장님은 태백시 황지초등학교 2~3년 때로 기억하시는데, 1년 정도 살다가 경남으로 다시 돌아가셨단다. 잡석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다. 수순한 석탄이 아닌 잡석은 분리하기 힘들어 광산 근처에 버려 놓으면 동네 아이들이 주워가서 불을 때곤 했다고.
싸리재로 올라가는 갈림길 오른편으로 옥동광업소 갱도 표지판이 있다. 광업소 목욕탕도 있다고 해서 잠시 들렀다. 광부들이 갱도에서 나와 퇴근하기 전에 목욕을 하던, 당시 나름의 직원 복지 시설이다. 지금은 건물 입구부터 풀이 자라 가까이 갈 수도 없다. 목욕탕을 지나니 곧 갱도다. 갱도 앞에는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고, 갱도는 검고 까마득해서 그 깊이가 짐작이 안된다. 입구 안내판을 보니 갱도의 길이는 2.1km이고 산 반대쪽까지 관통이 되어 있는데 갱도 내부에 맑은 샘이 있어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이 물이 조금 전에 보고 온 황금폭포로 가는 물이다.
갱도 쪽에서 나와 다시 싸리재로 길을 잡았다. 싸리재까지는 2.0km 남짓, 길 위로 개울처럼 물이 흘러내린다. 비가 더 오면 이 길도 물에 잠길 것 같다. 아쉽지만 오늘도 여기까지만 하고 되돌아 간다. 운탄고도의 진정한 시작이 바로 이 3길부터인데 다 걷지 못하고 내려가는 게 아쉽기만 하다. 인생이 늘 그렇다. 목표한 것을 가끔은 이루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지 않은가. 무리하지 말고 되돌아 서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살아온 지혜다.
모운동으로 다시 내려와 마을 쉼터 정자에서 바라보는 ’운탄고도 마을호텔‘이 참 이쁘다. 샛노란 벽이 비 오는 날에 잘 어울린다. 문 옆에는 tvN에서 2022년 8월부터 10월까지 8부작으로 방영한 <운탄고도 마을호텔 1>의 출연진인 엄홍길 대장, 배우 정보석과 이장우의 모형 사진이 서 있다. 손님을 즐겁게 맞이하듯 엄대장을 팔을 활짝 펼치고 있고, 정보석과 이장우는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살짝 허리를 굽혀 다정한 미소를 보낸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10시 전이다. 다음 숙소인 사북역까지 가더라도 호텔 체크인이 안 되는 시간이다. 시간이 있으니 그리 멀지 않은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로 가자. 30km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 길이 굽어 1시간이나 걸린다.
가는 길에 김삿갓 유적지도 있어 잠시 들렀다. 김삿갓 조형물과 한 동짜리 건물 난고정, 그리고 묘역이 잘 정돈되어 있다. 경기도 양주 출신인 김삿갓 평연은 그의 조부가 선천부사였을 때 홍경래의 난을 겪으며 항복한 죄로 폐족 처분을 받아 영월로 유폐된다. 그의 모친은 그런 사실을 숨기고 글을 가르치며 평연을 키웠는데, 20세 되던 해에 영월 동헌에서 개최된 백일장에서 선천부사 김익순의 행적을 비판하는 글로 장원을 하게 된다. 그 후에 김익순이 그의 조부임을 알고서 괴로움에 방랑생활을 하며 자책과 통한을 시로 승화시키며 김삿갓이 되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영월에서 영주로 넘어가는 길은 소백산 줄기라 길이 험하다. 고불고불한 고갯길은 조심조심 넘는다. 1시간여 만에 도착한 부석사, 주차장도 거의 비었고, 길가 좌판도 모두 철시다. 지키는 이 아무도 없는데 좌판 덮개 위에 빗방울만 후두두둑 떨어진다. 몇 해 만에 다시 와 보는 부석사다. 은행나무길, 안양루, 선묘 전설과 부석 그리고 혜곡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들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친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학고재, 2008>
그가 느낀 사무친 고마움은 여전히 내게는 명징하지 않다. 물안개에 싸인 저 먼 산들의 풍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