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의 웃음과 소박한 골목길이 공존하는 길
- 6길_함백산 소공원에서 산업전사위령 / 16.8km 5::30 651~1330m / Gamin 측정 17.82km, 5시간 42분
[아침 이동] 정선인투라호텔-<7.5km, 10분>-상갈래교차로-<버스 57-4(만항), 7:40>-만항재-만항정류장-<1.2km 도보(약 25분)>-함백산소공원(8:10)
- [6길 트레킹] 함백산소공원(8:30)-태백선수촌-오투전망대-지지리골 임도 입구-자작나무숲-탄탄대로-상장동 벽화마을-대림 1차 아파트-산업전사위령탑(14:00)
- [원점 회귀] <1.4km 도보/23분>-태백시외버스터미널-<60번(고한), 15:00/20분> - 상갈래 - <23.7km, 34분>- 태백호텔
- 볼거리 : 지지리골 자작나무숲, 황지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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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탄고도 6길(함백산 소공원~태백 순직산업전사 위령탑)을 걷는다. 숙소도 태백으로 옮긴다. 운탄고도는 아직 백패커 트레킹이 불가능한 코스다. 코스의 종착지에 숙소가 없기 때문에 2~3코스마다 한 번씩 숙소를 옮겨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15,000원 내외의 저렴한 숙소(알베르게)가 없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제주도의 올레길에는 숙소가 있기는 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도미토리 형태는 많지 않다. 앞으로 운탄고도 거점 지역에 백패커를 위한 숙소를 마련할 계획이라고는 하는데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의 출발지는 어제 만항재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함백산 소공원이다. 길 입구에 <태백선수촌>이라는 파란색 커다란 안내판이 있어서 찾기가 쉽다. 하지만 5길의 후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가용이 아니면 그곳까지 가기가 어렵다. 상갈래 교차로에서 7:38에 오는 만항종점행 버스를 타야 한다. 거리가 5.6km나 되어서 걸어서 올라가기는 힘들다.
7시쯤 상갈래교차로에 도착해서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버스를 기다린다. 만항종점까지는 버스로 가더라도 함백산 소공원까지 2.2km나 되는 아스팔트 오르막 길을 올라갈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혹시나 아침 등산을 위해 가는 차가 있으면 태워 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없는 생각을 하며 배낭을 멘 채 길가에 서서 기다린다. 버스가 오기 10분쯤 전에 “빈차”라고 빨간 등을 켠 택시가 온다. 손을 흔들어 세웠다. 혹시나 함백산 소공원까지 가시겠냐고 물었더니 타라고 한다. 야호~ 기사님 댁이 상갈래교차로에 있어 밤새 일하고 퇴근하는 길이란다. 오늘도 행운은 이어지고야 만다.
“정선 택시라 태백시는 못 가고 정선, 사북에서 운행하는데 아침 6시에 강원랜드 카지노가 마치는 시각이라 새벽 4시부터는 손님이 많아요. 가끔 장거리 손님도 있어서 새벽까지 일을 하고 오는 길입니다. 사북역에서 보신 노인네들요? 그럼요. 노인네들뿐 아니라 휠체어 타고 와서도 카지노를 해요. 중독이죠. 사북 사람들 중에 땅 팔아서 갑자기 부자 된 졸부들이 많았는데, 카지노 생기고 그 돈을 거기서 다 탕진하고 동네 문제가 좀 되었죠. 그래서 주민 출입 제한 제도가 생겼어요. 한 달에 한 번, ‘주민의 날’이 있어서 사북에 주소를 둔 사람은 그날만 출입이 돼요. 여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휴장타임(06:00~10:00)이 있는 카지노잖아요. 그전에는 며칠씩 계속 그 짓을 하다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난리도 아니었어요. “
기사님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함백산 소공원 앞에 도착이다. 내리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니 오히려 제가 고맙죠 하신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그래서일까 올려다본 하늘에 거짓말 같이 구름이 숫자 ‘6’을 그려 놓았다.
함백산 소공원에서 태백선수촌까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길게 올라가서 다시 완만한 내리막 길이다. 태백선수촌 국가대표 선수의 훈련을 위해 1998년 6월 30일에 건립된 합숙 훈련 시설인데 만항재와 같은 고도인 1,330m인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선수들 훈련 시 심폐기능 강화와 지구력 증강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고도가 높고 주위에 다른 광원이 없어 은하수를 관찰하기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8월에는 태백은하수축제가 이곳 태백선수촌에서 열리기도 했다. 고지대에 덩그러니 이 선수촌만 있고 보이는 것은 산과 구름뿐인데, 운동을 위해 입촌한 선수들은 이 풍경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맑은 날 햇볕을 받으며 아스팔트길을 걷는 건 별로 좋지 않다. 길 왼쪽 숲으로 작은 길이 있어 살펴보니 운탄고도 표지판이 있다. 차도와 가까운 숲길인데도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공기가 상쾌하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길인지 거미들이 먹이 사냥하느라 쳐놓은 그물이 성가시게 한다. 그렇게 5.6km를 걸어 자작나무 숲에 닿는다. 걷는 길 곳곳에 <운탄고도 트레일러닝> 대회 관련 표지판과 천막이 설치되어 있고, 관계자 몇몇이 마킹을 하러 뛰어다니기도 한다. 요즘은 트레킹 코스에서 러닝을 하는 이런 행사가 유행이라는데 오늘 여기서 대회가 열리는 모양이다.
드디어 자작나무숲에 도착한다. 이곳은 석탄 산업이 호황을 누릴 때 함태탄광이 자리한 곳으로 탄광이 폐쇄되고 오랫동안 방치 되다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폐탄광 산림 훼손 지역 복구사업을 통해 조성된 20만 제곱미터 규모의 자작나무 숲이다. 이렇게 많은 자작나무를 본 적이 있었던가. 함백산 계곡으로 불어오는 자작나무 잎이 소란스럽다. 밝은 9월의 햇살이 자작나무 잎 사이로 부서진다. 누가 그랬던가, 자작나무 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사랑하는 이의 웃음소리를 닮았다고. 그래서 그 많은 시인들이 자작나무를 노래하지 않았던가.
자작나무숲에서 한참을 걸어 내려온다.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산 아래로 거의 다 내려왔다는 뜻이다. 아래쪽은 물이 모여 다투는지 물소리가 요란하다. 이 골짜기가 <지지리골>이다. 지지리도 못 사는 동네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안내판에 유래가 적혀 있다.
“옛날 사냥꾼들이 이 골짜기 안쪽에서 멧돼지를 사냥해서 현장에 불에 돌을 달구어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돌을 구들처럼 경사지게 길게 만들어 놓고 그 아래에서 불을 때면 돌이 달구어진다. 이 돌에 고기를 구워 먹는 돌구이를 지지리라고 한다.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잡아 지지리를 자주 해 먹던 골짜기라고 하여 지지리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 80~90년대에는 캠핑을 가면 넓적한 돌을 주워 깨끗이 씻고 그 위에 고기를 얹어 구워 먹기도 했었는데, 이 동네에서는 그것을 ‘지지리’라고 한다.
지지리골을 지나오면 곧 태백시다. 마을 뒷동네 산책길이 끝나는 곳에서 큰 도로를 만나고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상장동 벽화마을>이다. 탄광이 있던 도시답게 벽화도 탄을 캐는 광부, 탄 속에 들어갔다 막 나온 새카만 얼굴의 광부, 동발을 매고 사다리를 올라가는 광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낮은 지붕과 낡은 벽, 어릴 적 보았던 그 간판들, 친구들과 놀던 골목의 모습을 간직한 동네다. 좁은 골목길에는 하얀, 노란, 빨간 꽃들이 핀 화분이 줄지어 서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도시에 살면서도 옛 시절의 따뜻하고 소박한 정을 여전히 간직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황지천은 넘어 상장초등학교 옆을 지나 태백시 평생학습관을 통과해 태백고원 산소길로 가야 하는데, 평생학습관 뒤편이 공사 중이라 길이 막혔다. 다시 상장초등학교로 내려와 도로를 따라 걷는다. 정오를 지나는 햇살이 옷 속까지 파고든다.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황지천 쪽 펜스에 장미덩굴을 심었다. 5~6월 장미가 만발했을 때는 이 길을 걸으면 장미향에 취해 발걸음이 더 느려지겠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대림 3차 아파트가 있는 한마음교를 지나 산책로 산소길로 들어선다. 숲길이라 걷는 게 훨씬 편하다. 왼쪽으로 태백 도심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의 종착지인 <순직산업전사 위령탑>을 향해 마지막 힘을 낸다.
* 상갈래 교차로에 있는 <함백산 돌솥밥>의 돌솥밥 정식(12,000원)은 강원도에 와서 먹은 밥 중에 단연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