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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Oct 02. 2023

제26화 다시 배낭을 고쳐 메고

2차 순례, Leon~Santiago de Compostella

#산티아고_길_위에_서다 #철이의_하루여행 #스페인_산티아고_순례길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 1차 순례: 2022.7.25~8.14, 469km, Saint-Jean~Léon

 - 2차 순례: 2023.10.3.~10.25, 330km, Léon~Santiago de Compostela)


2차 순례를 준비하며

배낭을 다시 고쳐 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떠나기 위해서다. 이번이 두 번째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 길인 프랑스 생장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의 799km 길을 두 번에 나누어서 걷는다. 한 번에 완주하기도 하지만 그러려면 걷는 날만 33일, 한국에서 스페인까지의 여정에 드는 시간 등 최소 36~37일 정도는 소요된다. 직장 다니는 사람은 시간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빠르게 걷는 사람은 하루에 40km 이상을 걸어서 20여 일 만에 완주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한다. 1차 순례 중에 만난 부산에서 온 어느 여선생님은 실제로 그렇게 걸었다.  

지난해(2022년) 7월 말에 1차 순례를 떠나서 20일 동안, 프랑스 생장에서 레온까지 469km를 걸었다. 이번 2차 순례에서는 레온에서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330km를 순례할 계획이다. 지난해에 비해 하루에 걷는 길을 다소 길지만 전체 거리도 짧고, 걷는 날도 적다. 처음 갈 때는 이것저것 걱정거리가 많았는데 한 번 다녀오서인지 마음이 훨씬 편안하다. 


다만 날씨가 걱정이다. 1차 순례는 한여름인 7월 말에서 8월 중순까지 시기라 더위만 걱정이었다. 이번에는 가을 날씨라 추위가 어느 정도일지 염려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두꺼운 옷을 가져갈 수도 없다. 배낭의 무게와 부피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북서쪽 갈리시아 지방으로 넘어가면 북대서양의 영향으로 비도 자주 온다고 한다. 1차 순례 때는 단 하루만 비를 만나서 판초우의가 크게 쓸모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되니 채비가 애매하다. 지난번 순례 때 만났던 정군(중국 부자)이 얇은 패딩점퍼는 꼭 가져가야 한다고 해서 따로 챙기고, 등산화에 물이 들어가는 걸 막는 발목용 스패츠도 따로 준비한다. 


1차 순례 때는 초기 3~4일을 감기 때문에 고생하고, 그 후로는 발에 물집이 생겨서 힘들었다. 이번에는 등산화도 발목까지 잡아주는 중등산화(잠발란 울트라 라이트 GTX)로 바꾸고, 물집 방지용 바셀린(바디 글라이드 안티 블리스터 밤 발전용 풋크림)도 따로 챙겼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감기 몸살도 떠나기 전에 다 치러서 걱정이 없다. 

걷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위에 다시 서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방학 때인 올해 7월에 다시 갈 예정이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겼다. 순례길 동반자인 아내가 큰 수술을 하고 치료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2차 순례는 커녕 다시는 같이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없지는 않았는데, 병과 고통스러운 치료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고 같이 걸을 수 있어서 고맙고 감사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체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작년처럼 걸을 수 있을지 사전 점검을 했다.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에서 삼척 소망의 탑까지 이어지는 <운탄고도 1330>을 지난달에 다녀왔다. 비 때문에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1길에서 9길까지 173km 중 160km 이상을 9일간에 걸쳐 완주했다(브런치에서 #운탄고도_1330을_걷다 제1화~제10화까지 연재). 하루에 걷는 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짧지만 등산 코스가 많아 순례길에 비해 결코 쉽지 않은 코스인데 무사히 마쳤다. 다시 길을 떠나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언제나 그렇듯 길은 늘 그곳에 있다. 한 발 두 발 천천히 내디디면 그 길의 끝에 닿는다. 그곳이 길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길의 또 다른 시작임을 안다. 호모 사피엔스가 수 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걸어 나온 이후로 인류는 걷는 것이 숙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걷는다는 것에 그런 거창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매일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매일 걷는다는 그 순간을 즐길 것이다. 그저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와 땅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발의 통증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오늘도 살아 있음을 느낄 것이다. 

나는 단지, 그렇게 언젠가 그 길의 끝에 닿기를 소망한다. 



<#산티아고_순례길_위에_서다> 연재는 26화부터 40화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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