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아스트로가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 1차 순례: 2022.7.25~8.14, 493km, Saint-Jean~Léon
- 2차 순례: 2023.10.3.~10.25, 329.5km, Léon~Santiago de Compostela)
#걷기 2일 차(22일 차)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아스트로가(Astroga)
#27.76km / 8시간 27분
- 누적 : 550km / 799km
#숙소 : ALBERGUE San Javier 8인실 12€
- 주교궁과 아스트로가 대성당 가까이에 있음. 오래된 건물이라 숨만 쉬어도 침대와 바닥이 삐걱거림
오늘 묵을 알베르게는 어제 예약을 해 둬서 안심이다. 알베르게에서 만난 오지랖 넓은 부산사나이가 어제 묵은 알베르게 주인에게 부탁해서 예약을 대신해 줬다. 남자 두 명이 생장에서부터 순례를 하는 중이라는데, 말도 많고 정도 많다. 이번이 두 번째 순례라서 그런지 아는 것도 많아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한다. 족보를 따져보니 부산사나이는 초등학교 후배고, 그의 친구는 고향 한 해 후배다. 이 먼 타지 순례길에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다니 신기한 일이다. 한동안은 자주 만나는 길동무가 될 것 같다.
10월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날씨가 참 좋다. 아침에 조금 쌀쌀하지만 해가 뜨고 나면 서서히 기온이 올라서 한낮에는 20도를 넘어간다. 덥지 않아 걷기에 알맞다. 지난여름 때는 걷는 중간에 물이 떨어지면 길가의 샘에서 물을 채우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하루 일정을 다 마쳐도 수통의 물이 남는다. 그늘도 없는 밀밭 길에 쏟아져 내리는 여름 한낮 스페인의 햇살이 몸속의 수분을 무섭게 날려 버리던 여름과는 확실히 다르다. 길가의 풍경은 조금 아쉽다. 해바라기와 옥수수는 수확을 하지 않아 거의 말라가는 모습이라 그리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다. 다만 한국의 가을처럼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은 더 깊어 보인다.
아침 기온은 어제와 같은 11도. 05시에 기상해서 다른 사람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짐을 모두 휴게실로 옮긴 후에 짐을 싼다. 지난밤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잔 이들이여, 아침잠은 잠시나마 꿀잠이기를~ 오늘은 아침 여섯 시가 되기 전에 출발. 밖은 여전히 캄캄하다. 마을 중심에 있는 순례자 기념 동상에서 출발 시그니처 사진을 찍고, 플래시로 길을 밝히며 걷는다. 마을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비포장도로를 따라간다. 오스테르가로 이어지는 N120 도로 옆으로 난 길이 쭉 이어진다.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광원이 없어서인지 하늘의 별이 가깝다. 오랜만에 북두칠성도 뚜렷하게 본다. 이 길이 다음 마을인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까지 이어지는데, 안타깝게도 아침 식사를 해결할 마땅한 곳이 없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마을 중간에 난 길을 조금 지나자 환상적인 다리가 어둠 속에서 자태를 드러낸다. 푸엔테 데 오르비고(Puente de Orbigo)다. 이 다리는 스페인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다리 중에 하나다. 옛 다리는 이 지역에서 채굴한 광물을 로마로 운송하기 위해서 로마인들이 건축한 다리였으나, 현재의 다리는 13세기에 건축된 것이라고 한다.
사람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을 상판에 깔아 만든 이 다리는 상판과 벽채도 아름답지만, 다리를 받치고 있는 아치가 특이하다. 총 19개의 아치는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이다. 다리의 높이도 모두 같지 않아 위아래로 약간 굴곡이 진 모습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이라 자세히 볼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다리 건너편에 있는 카페(Horario)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날이 밝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특히 이 다리에는 돈키호테와 비슷한 기사 돈 수에로의 창 시합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를 마을의 전통 축제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 여인을 사랑했으나 불행히도 그 여인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돈 수에로의 약간은 엉뚱하고 무모한 창 시합이 지금의 축제로 이어졌다니, 이 마을 사람들도 상당히 로맨틱하다. 다리 양쪽으로 넓은 공터가 있어 마상 시합을 재현하는 축제를 여는 모양이다.
푸엔테 데 오르비고에서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까지는 거의 3km.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마을은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 마을은 집과 성당 건물의 색채가 특히나 아름다운데 이곳 토양과 태양의 색을 닮았다. 마을을 지나자 곧은길이 나타난다. 넓은 들판에 가운데로 일직선으로 난 비포장 자갈길을 따라 걷는다. 아침 8시가 지난 시각이라 등 뒤쪽으로 해가 떠오르고 노란빛은 산과 들의 색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 마을을 지나서부터는 약간 오르막 산길이다.
산길을 한참이나 지나자 산티바네스 데 발데이글레시아(Santibanez de Valdeiglesia)라는 조그마한 마을이 나오고 그다음부터는 울퉁불퉁 자갈길이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길 중에서 이런 길이 걷기에 가장 힘들다. 자갈 때문에 몸이 뒤뚱거리고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통증도 만만찮다. 특히나 오르막이 길면 더 힘들다. 이곳에서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가 있는 곳까지의 7km 길이 그렇다. 이런 길을 걸을 때는 저절로 무념무상이 된다.
한참을 올라가서 언덕의 정상이다 싶은 곳에서 잠시 쉬고 내리막길을 걷다가 다시 오르막이다. 언덕을 올라 평지로 내려오는 길가에 도네이션 카페가 있다. 빵, 과일 등 간식거리를 차려 놓았는데 순례자들이 알아서 챙겨 먹고 적당한 돈을 내고 가는 곳이다. 큰 개를 데리고 사는 젊은 집시 여인이 주인인 듯하다. 여인의 얼굴에 자유로움이 가득하다. 언뜻 저 멀리 도시의 건물이 보인다. 오늘의 도착지가 그리 멀지 않다.
아스토르가와 그전에 있는 작은 마을 산 후스토 데 라 베가(San Justo de la Vega)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Cruceiro Santo Toribio)가 있다. 산토 토리비오의 십자가는 5세기 아스토르가의 토리비오 주교가 이곳을 떠날 때, 마지막 미사를 드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십자가상을 세웠다고 한다. 특별한 장식이 없이 돌로 만든 십자가가 4층의 둥근돌받침대 위에 서 있다. 주교의 기념비라고 하기에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한 시간이면 숙소에 도착한다. 어서 가자~
#산티아고_길_위에_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