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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Oct 08. 2023

제29화 오르고 또 오르고

아스트로가(Astroga)~폰세바돈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 1차 순례: 2022.7.25~8.14, 493km, Saint-Jean~Léon

 - 2차 순례: 2023.10.3.~10.25, 329.5km, Léon~Santiago de Compostela)

#걷기 3일 차(23일 차)

#아스트로가(Astroga)~폰세바돈(Foncebadon)

#26.13km / 7시간 50분

#숙소 : Hostal Convento de Foncebadon (6인실 12€)


아스토르가(Astorga)

아스토르가는 2000년 전에 로마 제10군단의 병사들이 지금의 도시 중심부에 있는 작은 언덕에 정착촌을 만들면서 세워진 유서 깊은 도시다. 그래서 이곳에 로마 유적지를 방문하는 로마 루트도 있다고 한다. 도시라고 해도 인구가 1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10개의 수도원과 20여 개의 순례자 숙소가 있어 순례자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부산사나이가 대신 예약해 준 알베르게는 주교궁 근처라는 점 빼고는 거의 최악이었다.  아주 좋은 곳이라 침대 여유가 없을 것이라며 친절히 대신 예약을 해 준 것이라 싫은 내색을 하지도 못했다. 같은 방에서 같은 조건이었으니 본인들도 좀 미안한 마음이었으리라. 조금만 움직여도 침대가 삐걱거리고 바닥의 나무판은 위층에서 사람이 움직이면 계속 소리를 낸다.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아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는 잠을 청하기 힘들게 한다. 스페인에서는 귀하디 귀한 한국 라면 한 봉지에 모든 걸 다 용서하기로 했다.(그런데 여기서 빈대에 물려 순례를 마치는 내내 고생을 하게 된다.)


도시 입구에서부터 멀리 보이는 회색의 화감암 건물이 19세기말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것이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주교궁(Palacio de Gaudi Astorga)이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야경을 꼭 봐야 한다고 해서 지난밤에 주교궁으로 가서 야경을 감상했다. 안 봤으면 후회할 정도는 아니다. 주교궁의 아름다움 보다는 성당 옆 작은 예배당에서 신부님의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설교를 잠시 들은 것, 대성당과 주교궁 사이에 있는 광장에 앉아 캔맥주 하나 마신 것이 더 좋았다. 


주교궁은 가우디의 초기 작품이라 그의 건축 특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 작품인 사그리다 파밀리아, 구엘공원, 카사 밀라를 봤을 때와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아이같은 감성도 없고, 장난스러운 재미도 없다. 레온에 있는 보티네스 저택과 비슷하게 세련된 신사같이 단정한 느낌이다. 늦은 시각이라 내부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이에 비해 주교궁 바로 옆에 있는 아스토르가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의 정문 파사의 아치형 조각품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다. 섬세한 손길로 조각을 한 듯 인물의 표정까지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건물 양쪽의 종탑을 이루는 석재의 색이 서로 다르고 뒤쪽 본관 건물과도 차이가 나는 걸 보니 보수공사를 크게 한 것으로 보인다.


긴 능선

6:40, 아침 기온은 12도. 아스토르가를 출발해서 폰세바돈까지 가는 일정을 시작한다. 숙소 뒤쪽에 있는 아스토르가 대성당 앞으로 가서 노란 화살표를 찾아 걷는다. 어제보다 출발이 40분 늦어서인지 동행하는 순례자들이 많다.

아스토르가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곳에 17세기 에케 호모 경당(Ermita del Ecce Homo)이 있다. 이른 시간에 문을 연 카페인줄 알고 지나칠 뻔했다. 자원봉사 하는 분이 청소 중이라 들어가 보니, 성모상을 모셔 놓은 작은 경당이다.

에케 호모(라틴어: Ecce homo) 또는 에체 오모는 요한 복음서 19장 5장에 나오는 라틴어 어구로,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예수를 채찍질하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뒤 성난 무리 앞에서 예수를 가리키면서 한 말로,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이다. 티치아노, 안드레아 만테냐 등의 예술가들의 작품활동에도 영감을 주어 예수의 고난 장면을 미술로 그려내도록 하였다. 경당 옆에 여러 나라 언어로 된 표지석이 있는데, 한국어로 ‘신앙은 건강의 샘’이라고 적혀 있다. 그나저나 경당 부근에서 한국인 순례자 무리가 알베르게를 안내하는 화살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길을 잘못 가는 걸 멀리서 봤는데, 괜스레 걱정이다.


4.4km 지점에 있는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Murias de Rechivaldo)는 다른 마을에 비해 집들이 고급스럽다. 아스토르가의 전원도시쯤 되어 보인다. 이른 시각이라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순례자들의 조용조용한 발소리만 마을을 지난다. 마을 중간에 카페가 있어 아침 식사도 할 겸 잠시 쉬어 간다.

산타 카 탈리나 데 소모사(Santa Catalina dle Somoza)까지 4.5km 동안은 거의 일직선으로 나 있는 길을 걷는다. 왼쪽으로는 차도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멀리까지 숲이 우거져 있다. 소모사는 ‘산의 능선‘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마을의 위치가 폰세바돈으로 가는 긴 능선에 자리 잡은 데서 유래한다.


중간에 카스트리요 데 로스 폴바사레스(Castrillo de los Polvazares)가 있다. 이 마을은 지역관광지로 전통 음식인 마라가토식 스튜인 코시도 마라카토가 유명하다. 코시도 마라가토(cocido maragato)는 레온의 전통음식으로서, 병아리콩과 9가지 다른 종류의 고기를 사용하여 만든 스튜식 요리이다. 오전 9시라 점심을 먹기에도 적당하지 않아서 아쉽게도 맛을 보지 못했다. 부산사나이를 만나서 마라카토를 아냐고 물었더니 '머라카노?'한다. 사투리랑 발음이 비슷하게 한참 웃었다. 


오르막은 계속되고

여기서 다음 마을인 엘 간소(El Ganso)까지의 4km 구간은 쉴만한 곳이 없다. 한가히 풀을 뜯고 있는 소들과 눈을 마주쳤는데, ‘그렇게 열심히 걸어서 어디 가?’하고 묻는 것 같다. 엘 간소 마을 길가 카페에서 잠시 쉬어간다. 콜라(아주 작은 병, 2€) 한 잔 주문하고 가져온 사과, 감, 빵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떠난다.


길 오르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길쪽으로는 그늘이 드리워지지 않아 덥다. 앉아 쉴만한 장소는 4.7km를 더 가서 도로를 만나는 지점에 있는 나무 벤치뿐이다. 여기서부터는 오르막 산길이다. 2.3km의 산길이 끝나는 곳에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라는 마을이 있다. 레온 산맥의 입구에 있어 산을 넘기 전, 이곳을 찾은 순례자들을 강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폰페라다에 본부를 둔 템플기사단의 전초기지가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 마을 전체가 알베르게인 듯 작은 마을치고는 알베르게가 많다. 아스토르가에서 같이 온 사람들이 갑자기 없어졌는데, 대부분 이곳에서 숙박을 하는 모양이다. 부산사나이 일행도 이곳에서 숙박한다.


라바날을 지난 1시간 정도 걸은 후에야 왜 사람들이 폰세이돈까지 오지 않고 라바날에서 쉬는지를 깨닫는다. 포세이돈까지는 6km 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마을입구까지 이어지는 코스라 많이 힘들다. 지난 3일 동안 거의 비슷한 거리를 걸었는데 오늘이 제일 힘든 코스다. 26km 코스 전체가 오르막이다.

1990년대 한 때는 어머니와 아들, 단 두 명만 살았던 작은 마을 폰세바돈(Foncebadon). 1430m 높이에 위치한 마을답게 멀리 내려다 보이는 들판의 풍경이 장관이다. 이런 풍광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랬을까? 



#산티아고_길_위에_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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