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세바돈(Foncebadon)~폰페라다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 1차 순례: 2022.7.25~8.14, 493km, Saint-Jean~Léon
- 2차 순례: 2023.10.3.~10.25, 329.5km, Léon~Santiago de Compostela)
#걷기 4일 차(24일 차)
#폰세바돈(Foncebadon)~폰페라다(Ponferrada)
#27.84km / 9시간 26분
#숙소 : Albergue-Guiana Hostel 7인실 15€(인터넷으로 예약)
- 건물이 현대식, 로비 휴식 공간이 좋음. 침대 깨끗하고 튼튼함.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간단한 요리 가능
고도가 1,450m로 높은 지대라 기온이 낮아 추울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그렇지가 않다. 밤에 산책을 나가도 춥지 않고, 창문을 열어 놓고 잤는데도 추위를 전혀 못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 출발할 시각에 기온이 15도라 오히려 어제 보다 높다. 비도 오지 않는 맑은 날이 계속되어 다행이다.
마을은 참 작다. 마을 입구에서 100m 정도 올라가니 마을 끝일 정도다. 이 작은 마을이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에 위치해 중세 시대에는 꽤나 번성했다고 한다. 10세기에 레온의 라미로 2세가 마을에서 종교 의회를 소집했고, 11~12세기에 은둔자 과셀모가 병원과 교회를 세워 순례객을 환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이 순례길을 표시하기 위해 땅에 800여 개의 말뚝을 박는 대가로 세금 면제를 받기도 했다고 하니, 한때는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까 상상을 해 본다.
아침 6:35.오르막 길 양 옆으로 알베르게가 줄지어 있다. 마을 끝에서부터는 산길이다. 어둠이 짙어 달과 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 이렇게 많은 별을, 저렇게 또렷한 별을 보았던가? 이집트 바흐레야 사막에서였구나! 그러고 보니 이곳과 바흐레야 사막이 그리 멀지도 않다. 지중해를 건너가면 그곳이니까.
어두운 산길을 30분 정도 갔더니 몇 개의 불빛이 어른거린다. 이 코스를 지날 때 꼭 들러야 하는 철십자가다.
철십자(Iron Cross, 갈리시아어 La Cruz de Fierro )는 프랑스 산티아고 길의 가장 높은 지점인 고도 약 1500m, 스페인의 폰세바돈과 만자린( Manjarín )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있는 것은 아스토르가 카미노 박물관에 있는 원본의 복제품으로 높이 약 5m의 나무로 제작된 것이다. 나무기둥의 꼭대기 부분에 철로 만들 십자가가 있어, 철십자가라 부른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이라 불을 비춰도 철십자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기둥 아래에는 상당히 넓은 돌무더기가 있는데, 순례자들이 태어난 곳에서 가져와 십자가를 등지고 던지는 전통이 있어서다. 한국에서 가져온 돌은 아니지만 주위에 돌 하나를 집어서 십자가를 등지고 던지며 소원 하나를 빌었다. 수많은 돌 하나하나에 얽힌 기도와 소망은 천 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은 돌 하나에 의미를 두는 건 인간만이 가진 특권일까 아니면 어리석음일까.
철십자가를 지나 산길을 걸어가는데, 산불이다. 길가 나무에 불이 붙어 제법 큰 불이 났다. 앞서 가던 독일인 부부가 전화로 신고를 막 하는 중이다. 철십자가에 이르기 전에 폰세바돈에서도 불길이 보였는데, 여기서도 불이 난 것이 우연일까. 누군가 담뱃불을 던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일부러 불을 낸 걸까. 걱정을 하면서 만하린 쪽을 내려왔다. 만하린 초입 길가에 있는 푸트트럭에서 보니 막 소방차가 올라가고, 연기는 계속 피어오르고 있다.
폰세바돈에서 엘 아세보 데 산 미구엘(El Acebo de san Miguel)까지 11.5km 구간에는 카페도, 쉴만한 곳이 따로 없는데 이 푸드트럭이 유일하다. 푸드트럭에 앉아 있으니 해가 밝아 온다. 커피와 달걀, 빵 하나를 사서 먹는데, 강아지 녀석이 옆에 앉아 가만히 올려다본다. 푸드트럭 주인이 강아지가 달걀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마디 거든다. 내 달걀의 반은 녀석이 먹었다. 이제 없다고 손을 탈탈 털어 보여 줬더니 다음 사람 곁으로 가서 똑같은 행동을 한다. 선수다.
즐거운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다 올라온 줄 알았더니 아직 올라갈 길이 남았다. 여기서 4km를 더 올라간다. 산길이라 해도 숲이 우거진 산속을 걷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산의 둘레길처럼 산허리를 둘러간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 그런지 길가에는 낮은 잡목들이 자라고 있다.
8km 지점부터 오늘의 종착지인 폰페라다까지는 대체로 내리막이다. 그렇게 3.5km를 걸어 아세보 마을에 도착한다. 언덕 위에서 보니 마을이 참 이쁘다. 50여 가구의 집들이 모여있는 산골 마을, 초입에 카페가 하나 있다. 가게에서 음료수 하나 살려고 지나쳤는데, 마을 끝에까지 상점이 없다. 길가에서 잠시 쉬다가 4km를 더 가서 리에고 데 암브로스(Liego de Ambros) 마을 외곽에 있는 자그마한 레스토랑에서 허기를 채운다.
다음 마을인 몰리나세카(Molinaseca)까지 내리막 산길이다. 돌과 흙먼지 투성이인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다 보니 발바닥과 무릎이 아파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어제보다 1km 정도 더 긴 코스인데 시간은 1시간 반이 더 걸렸다.
몰리나세카 마을은 초입부터 눈길이 간다. 길 오른쪽에 오래된 교회가 있고, 길 옆으로는 메루엘로 강(Rio Meruelo)이 흐른다. 다리 아래에 먼저 온 이들이 발을 담그고 쉬는 모습, 강 건너 카페에서 한가로이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 지친 몸에 잠시 생기가 돈다. 이곳 마을 이름은 강가에 있는 물레방아를 일컫는 몰리노스에서 유래한다.
음료수와 과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종착지를 향해 출발. 차도 옆 인도를 지루하고 지루하게 올라간다. 오후의 태양은 여름만큼 뜨겁다. 같이 산길을 내려오던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폰페라다까지 가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긴 인도 끝에서 캄포(Campo)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고 또다시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한참이나 걸어 걸어 피곤한 몸을 누일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산티아고_길_위에_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