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정철 Apr 07. 2018

소확행_작은 행복을 즐겨라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인터넷 신문을 보다 ‘나홀로족 증가가 바꾼 소비트렌드_와인, 위스키도 용량 줄였더니 매출 껑충(해럴드경제, 2018. 3. 21)’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혼술을 통해 소확행을 느끼는 소비자가 증가함에 따라 업체마다 용량을 줄인 주류를 새로이 선보이면서 매출이 몇 개월 사이에 몇 배씩 올랐다는 내용이다. 생일 등 축하를 하는 특별한 날에만 마시는 비싼 술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바꾸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 홀로, 또는 가족 캠핑 등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주류업체들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고 한다. 나를 위한 가치 있는 소비를 통해 만족과 기쁨을 찾는 현대인의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라는데, 이런 트렌드를 요즘, '소확행'이라고 부른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1986)]에 등장하는 말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을 그는 소확행이라고 했다.


『트렌드 코리아 2018(미래의창, 2017)』보면,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좌절에 빠지기보다는 실리를 챙기는데 익숙하다고 한다. 값비싼 레스토랑에 가기보다 제일 비싼 도시락을 사고, 수입 캔맥주를 마시며 현실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소확행의 트렌드는 우리나라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100미터 마이크로 산책이 유행하는 등 세계적인 추세라고 소개한다.
이런 의미로 보자면, 소확행은 행복을 미래에 두지 않고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작은 행복을 유보하지도 희생하지도 않는다. 강렬하고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하루하루 평범한 생활 속에서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고, 강도보다는 얼마나 자주 경험하느냐 하는 빈도를 중요시한다. 어쩌다 한 번의 큰 행복보다 작은 행복을 자주 경험할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의미다. 그래도 당신의 배우자는 여전히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의 이벤트를 바랄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나의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은 무엇일까? 커피를 갈기 전에 로스팅 커피를 담은 병뚜껑을 여는 순간 커피 향을 맡을 때, 다 내린 커피를 잔에 부어 한 모금 입 안에 머금는 순간, 세탁소에서 찾아다 걸어 놓은 와이셔츠 비닐커버를 벗겨낼 때 연한 세제 냄새, 인터넷 서점 택배 종이 상자를 열고 책을 꺼내는 순간, 토요일 이른 아침 홀로 서재에 앉아 읽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할 때 약간 흐릿한 정신 상태. 생각해 보니 책 속의 어느 문장처럼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매일매일 행복한 일들은 있다.  
  
 2018 소비트렌드

소확행의 기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지만, 이 말이 우리 사회에 유행하게 된 것은 『트렌드 코리아 2018』에 의해서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서울대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2007년부터 매년 펴내고 있다. 전년도의 소비트렌드를 분석하고 그 해의 소비트렌드 전망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2018년은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한국 소비트렌드를 분석하기 시작한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이번 해에는 2007~2018년 사이의 10년 동안, 한국의 변화 모습을 거시적으로 바라본 9가지 메가트렌드를 소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2018년 소비트렌드 10개 키워드를 우리말 단어로 요약해 보자면, 소확행을 비롯하여 플라시보 소비, 워라밸 세대, 언택트 기술, 나만의 커렌시아, 만물의 서비스화, 매력의 자본화, 미닝아웃, 관계, 주변 등이다. 이들을 영어 두음자로 연결해서 한 해의 특징을 나타내는데 2018년은 WAG THE DOGS다. 웩더독이란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라는 숙어적 영어 표현인데, 원래 이 말은 금융시장의 용어로 주식시장에서 선물시장(꼬리)이 현물시장(몸통)을 좌우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사은품이 본 상품보다, 노점의 푸드 트럭이 백화점 푸드 코트보다, 1인 방송이 주 매체보다 인기를 끄는 현상 등을 의미한다. 2018년은 그런 변화의 바람이 거셀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자.

플라시보 소비는 '가성비에 가심비를 더하다'라는 말로 표현된다. 경기 침체기의 소비자들은 명품 위주의 값비싼 소비에서 벗어나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거나 품질이 좋은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긴다. 인터넷 쇼핑몰 댓글을 살펴보면 '가성비 좋음'이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다. 품질에 비해 가격이 싸니 구입해도 좋다는 의미다. 2018년에는 이 가성비에 가심비를 더한다. 구입하는 물건의 가격과 품질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내 마음을 얼마나 만족시키느냐가 구매의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다. 가심비는 사실 정량화되고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소비자 개인의 마음에 달린 문제라 확정적이지도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마치 위약(플라시보, placebo)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여 이런 경향을 플라시보 소비라도 한다.  

플라시보는 심리적 효과를 얻기 위하여 환자가 의학이나 치료법으로 받아들이지만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가짜 약제를 말한다. 플라시보는 라틴어로 '마음에 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가짜 약을 투여하면서 진짜 약이라고 하면 환자 상태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에 병이 낫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의미를 현대 소비자의 심리상태와 연결 지어 플라시보 소비라는 트렌드를 제시하고 있다.


워라밸은 Work-Life-Balance를 뜻한다. 일과 휴식, 직장과 가정,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의미한다. 『책의 이끌림 (북랩, 2017)』에서 언급했던 '저녁이 있는 삶'이 바로 워라밸이다. 퇴근 시간이 되면 마음 편하게 퇴근할 수 있고, 퇴근 이후 시간은 개인적이고 사적 영역이라는 것에 대한 서로 간에 인정하고 존중하는 경향이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좋은 쉼이 일을 능률을 높이고, 더 나은 직장 생활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주말은 새로운 한 주를 위한 휴식과 충전을 위한 시간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이런 분위기는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공직 사회에서도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어느 신입 사무관은 퇴근 후나 주말에 직장 동료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업무 관련으로 전화를 건 사람이 불만을 쏟아내는 걸 본 적이 있다. 개인 시간과 사적 공간을 인정하는 않는,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여전하다는 의미다. 한두 사람이 앞장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공감과 인식이 확대되어 문화로 자리 잡아야 가능한 일이다. 밀레니엄 세대는 직장에 우선 순위를 둔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그들과 예상치 않는 충돌을 겪을 수도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덴마크인의 행복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책인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위즈덤하우스, 2017)』는 휘게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핵심 공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공간은 햇볕이 드는 창가, 벽과 벽 사이의 공간인데 다리를 접은 채로 겨우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말한다. 일종의 케렌시아(Querancia)다. 케렌시아는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만이 알고 있는 아늑한 휴식 공간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취미와 창조 활동의 공간이기도 하다. 바쁜 일상에 지치고 힘든 개개인이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개인과 사적인 영역의 존중

소확행, 플라시보 소비, 워라밸, 케렌시아 등 2018년 소비트렌드 전망을 우리 사회와 문화가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 가치에 대한 소중함과 마음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집단주의 조직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문화로의 변화가 거세지고 있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가 직장이나 조직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현명한 그들은 직장은 내 삶의 일부로 존중하고 그러면서 개인도 존중받고 싶어 한다. 개개인의 가치와 개성이 인정받는 가운데 조직과 집단의 발전이 있다는 생각이다.

가족 형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이라는 개념에서 이제는 솔로라이프가 익숙해진 세상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혼자 술 먹고(혼술), 혼자 밥 먹고(혼밥), 혼자 여행하고(혼행) 등 혼자 살아가는 것이 낯설지 않고, 불편하지 않는 세상이다. 개인은 존중받아야 하고, 사생활은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가치를 공유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개개인의 느낌과 감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물질적인 소유와 축적의 가치에서 벗어나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느낌을 갖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개인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가 아니라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이 훨씬 소중하게 여긴다. 남이 아니라 내가 만족하고 인정하면 된다는 생각, 나라는 개인의 느낌이 우선이다.


개인의 가치와 사적 영역, 그리고 개인의 감정과 느낌이 소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더라도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고, 나의 영역을 보호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의 공간도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감정이 소중하다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내 감정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소중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만을 앞세울 때는 감정의 충돌이 생기고 모두가 상처 받는 원치 않은 상황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작은 행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내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소확행도 응원해 주는 나눔의 행복이 한껏 높아지는 그런 사회를 꿈꿔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