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책을 열심히 읽는 제 모습을 보며 아내는 말합니다. 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것이 가끔은 왠지 안쓰러워 보인다고. 뭔지 모르게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일종의 도피처로 생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고. 아닌 듯 웃어 보였지만 속을 들켰나 싶어 살짝 놀랐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 중에 이 또한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나 위로가 필요할 때 책에서 위안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책 속에는 저와 같은 이유로, 때로는 다른 이유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삶이 있습니다. 더 깊은 아픔과 더 큰 슬픔을 극복하고 이겨 내는 이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작은 위로가 됩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통해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책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보고, 삶의 의지를 다시 세우고,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책은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집착하던 자신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듭니다.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세상의 중심을 ‘나’로 한정합니다. 자신 이외의 사람은 모두 경쟁 상대일 뿐입니다. 그런 ‘나’는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존재입니다. 책에 있는 문장과 지식을 열심히 외워 좋은 대학에 가서 남이 부러워하는 직장과 직업을 갖는 것을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보다 더 많은 권력과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명예를 갈망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신과 다른 이의 삶이 인식의 영역에 들어옵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 친구이고 이웃이며 동료입니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기쁨을 함께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서로 다른 이들이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책을 읽는 이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 외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여기서 그런 이유들을 다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이유만큼이나 책을 통해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책을 읽은 후, 내부로부터 끓어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은 책을 읽는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즐거움을 다른 사람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선생님들과 독서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 공유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생각 나눔의 또 다른 방법입니다.
걱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책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풀어놓은 글은 단지 ‘나’라는 개인의 생각일 따름입니다. 제가 읽은 책과 문장이 저의 머리에, 때로는 가슴에 잠시 머물다 가면서 남겨 놓은 상념일 뿐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다 하나의 편견이다. 인간은 모두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을 뿐만 아니라 쓰고 싶은 것만 쓴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해석조차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다.’
‘편견은 수많은 편견을 접함으로써 해소된다.’
강창래의 『책의 정신(알마, 2013)』에 나오는 글입니다. 책은 어차피 편견의 저술이며 한쪽으로 기울어진 해석이라고 합니다. 이런 편견을 해소하는 길은 많은 편견을 접하는 것, 즉 책을 많이 읽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의 편견을 풀어놓으면서 그의 말에서 작은 위안을 얻습니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북하우스, 2011)』에서 피카소의 작품이 좋아지고 감동을 받게 된 이유가 에른스트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예경, 2002)』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느 미학자가 말했던 것처럼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에 보이는 것과 달라집니다. 각자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순전히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삶의 촉수를 많이 만들수록 삶은 더욱 풍요롭고 행복해진다는 그의 말이 옳은 이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이 이끄는 손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보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의 책은 또 다른 책에게로 이끌어 줍니다. 책의 길을 따라가는 건 여행입니다. 낯선 글들의 마을에 자신을 놓아보는 설렘의 여정입니다. 예전에 한 번 가본 듯한 익숙한 길을 걸을 때도 있고 전혀 낯선 동네에서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합니다. 때론 잘못 들어갔던 길을 한참이나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가다 보면 이전에 가 본 길이라 익숙해지고, 그럼 다시 조금 더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길을 잃고 헤맨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다정한 안내자가 손을 내밉니다. 그 손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낯섦이 익숙함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익숙함은 편안함이 됩니다.
이 책에는 33가지의 책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책에 대한 내용은 자세하게 담지 않았습니다. ‘33가지의 책을 통해 바라본 나만의 세상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여러 책의 이야기를 통해 즐겁고, 행복하고, 남과 더불어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습니다. 각 장의 말미에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커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쉬어 가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삶도 그런 쉼이 필요하듯이….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의 이끌림에 따라 여러분이 바라보는, 여러분만의 세상 이야기를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커피 향이 짙어지는 비 오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