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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Aug 14. 2019

프롤로그

오늘, 당신은 안녕한가요? 

오늘, 당신은 안녕한가요? 


미국의 발달 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겪게 되는 발달 단계를 8단계로 이론화했다. 그중에서 7번째 단계를 장년기(35세~65세)로 명명하며, 이 시기를 생산성과 침체감이 대립하는 시기로 보았다. 

생산성이란 개인이 자기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음 세대에 대한 복지와 개개인이 일하며 살아갈 사회의 성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과 양육, 그에 따른 자기 자손의 성취에 관한 개인의 만족감을 생산성으로 본 것이다. 반면에 생산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침체감이 형성된다고 한다. 침체감은 생산성의 결여이며 자신의 욕구나 안락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감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생을 무의미하고 단조롭게 느끼게 되어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다. 


공자가 말하기를, 40세가 되어서는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고(불혹 不惑), 50세가 되어서는 하늘이 전해준 명을 알았고(지천명 知天命), 60세가 되어서는 귀로 들으면 그 뜻은 안다(이순 耳順)고 했다. 

30대를 중년이라고 하면 좀 억울해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에릭슨이 말한 장년기(35세∼65세)와 공자가 말한 불혹, 지천명, 이순의 시기를 우리는 보통 ‘중년’이라고 일컫는다. 

요즘은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를 사는 시대라고 하니 중년을 10∼20년 정도 더 늦춰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70대를 중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대략 3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까지를 중년으로 지칭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중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위기’다. 중년의 위기. 

공자는 불혹이요 지천명이며 이순의 시기라고 했고, 에릭슨은 생산성의 시기라고 하며 중년을 긍정적인 면이 많은 것으로 언급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리는 ‘위기’라는 단어를 중년에 덧붙여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 이유가 없지는 않다. 『인생의 재발견(2017, 스몰빅인사이트)』에서 바버라 해커티(Barbara Bradley Hagerty)는 '중년의 위기'의 위기가 1965년 캐나다의 정신분석가 엘리엇 자크가 발표한 <죽음과 중년의 위기>라는 논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그 논문은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78년 대니얼 레빈슨이 출간한 『남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이라는 책을 통해 중년의 위기라는 말이 크게 부각되었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해커티는 여러 문헌과 자료를 자세히 조사하고 많은 전문가를 인터뷰한 후, ‘중년의 위기는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중년은 방황하거나 좌절하며 위기를 겪는 시기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기이자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정보를 얻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구체화하는 흥미진진한 시기라고 한다. 중년은 청년에서 장년으로 스쳐 지나가는 비행 구역이 아니라, 새로운 목적지, 다양한 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 허브공항 같은 것이라고 한다. 

50대에 접어든 지금, 해커티의 글을 읽고 있으면 왠지 기운이 다시 솟는 듯하다. 너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중년의 위기의 반대편에는 꽃중년이 있지 않은가. 사전적으로는 '마흔 살 안팎의 나이로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말하는데, 나이를 기준으로만 정의하는 일반적인 중년의 의미다. 오히려 이런 의미보다는 ‘멋있는’ 중년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 젊은 시절 몸매를 유지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 멋을 낼 줄 아는 패션 감각으로 무장하고, 말과 행동에 품위가 있으며, 나름의 철학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중년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남자든 여자든, 40대에 접어들 때 즈음에는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면서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을 꿈꿔 본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꽃중년이 되어 젊음을 다시 만끽해보고자 하는 현대의 진화적 본능이 아닐까?  


사실 생물적으로 보면 중년의 신체가 분명 절정기는 아니다. 20대와 30대를 지나, 40대에 접어들면 신체적으로는 분명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모처럼 운동이라도 좀 할라치면 쉽게 지치고 금방 몸에 부정적 반응이 온다.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흰 머리카락이 생기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서서히 나타난다. 시력도 점점 나빠지고 노안도 오는 시기다. 기초대사량이 줄어 규칙적으로 운동하지 않으면 근육량이 감소하고 복부와 허리에 피하지방이 쌓여간다. 좀 심하게 말하면, 먹는 만큼 살이 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어디 그뿐인가, 기억력도 조금씩 감퇴하여 지인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자주 가던 음식점 상호도 금방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다고 그런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년의 시기가 되면 경제적, 사회적으로는 좀 더 안정적일 수 있다. 자신의 직업에 있어서 전문성을 가지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고, 직장 내 위치나 직위도 높아지는 시기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물질적으로 어느 정도는 여유가 생기는 시기이다. 더 중요한 점은 삶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쌓여 문제해결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지식이 경험과 융합되어 지혜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역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 즉 가소성이 절정기에 다다르게 된다. 이제는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가파른 고개를 바로 넘으려고 애쓰지 않고 천천히 그러면서도 좀 더 느긋하게 산을 돌아 넘어갈 줄 안다. 나무가 아니라 숲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래서 일흔여덟의 김형석 옹은 『백 년을 살아보니(덴스토리, 2016)』에서 인생의 절정기가 55∼70세라고 주장한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과 뱃살이 아침마다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중년의 시기에 선 자신에게는 사랑할 것이 더 많다. 인생의 중간 즈음에 서 있는 자신의 삶이 지나온 길이 대견하고 자랑스럽지 않은가. 열심히 노력했고,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었고,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쌓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살아온 삶의 흔적과 기록은 자신만의 것이다. 그것은 오롯이 지금의 자신, 중년의 당신을 채우고 있다. 


단언하건대, 중년의 위기란 없다. 화려한 꽃중년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주어진 시간을 또 다른 것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느긋하고 여유로운 노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중년은 인생의 또 다른 황금기다. 하지만 그 황금기를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개개인의 생각과 삶의 방식, 그리고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어떻게 하면 인생의 제2의 황금기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이 책에 담았다. 


1부 <나를 만들다>에서는 중년이라는 인생의 두 번째 황금기에서 ‘나’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 지를 고민하고, 몇 가지의 바람직한 자화상을 제시했다. 

우아하고 합리적이고 오래된 나무처럼 단단한 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힘들거나 어렵지 않은 방법들이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새로운 것에 대해 포용적이고 허용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다. 틈틈이 여행도 다니면 더욱 좋다. 소통과 포용을 뿌리치고 외곬으로 늙어가지 않으려면 주어진 시간에 나름의 노력을 해야 한다.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젊은 날의 노력과는 다른, 내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2부 <현재를 생각하다>에서는 중년의 시기에 다시금 생각해볼 만한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고 소박한 일상이 주는 즐거움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더 행복해진다(소확행). 커피 한 잔이 주는 쌉쌀한 맛과 시간을 즐겨보자(커피). 배우자와 잦지 않은 성생활에 부담을 갖지 말자(섹스). 악은 언제나 내 안에 도사리고 있음을 염두에 두자(선악). 젊은 시절의 로망을 다시금 되살려 보자(파리). 자식에 대한 사랑과 그들에게 무엇을 물려 줄 것인지(신화, 유전자), 그리고 내 집은 꼭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자(하우스).

가끔 잊어버리고 살고 싶지만 그럴수록 골치 아픈 주제들이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양보하고 타협해야한다. 묻어 두거나 바로 해결해 버리려고만 하면 더 힘들어진다. 내 곁에 두고 슬기롭게 이겨낼 수 는 없는지 살펴보았다. 


3부 <다가오는 시간을 채우다>에서는 중년과 중년 이후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고집이 아니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하고, 노년의 동반자인 외로움은 따뜻함으로 능히 덮을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 온 시간과 추억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면 그 나름의 멋이 있다. 살아 온 수많은 낮과 밤은 그저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라 까만 밤하늘에 흩어져 있는 별만큼이나 많고, 우주를 담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혜안을 키워내는 시간이었음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시간이 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거울에 비친 당신의 현재의 모습이 어떤지를 다시 찬찬히 바라보게 될 것이다. 

어떤가, 당신은 오늘도 안녕한가? 



<뇌가 섹시한 중년>으로 출간 준비 중인 책의 프롤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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