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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새미 May 14. 2023

린 고객 개발 (1)

신디 앨버레즈 저 /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한빛미디어, 신디 앨버레즈, 린 고객 개발


시장 검증이 안된 것 같아요. 고객 개발은 하고 계세요?


요즘은 냉정과 열정사이를 왔다갔다한다. 케이뷰티의 크로스보더 니즈가 증가하면서 외연은 커지고 있지만, 투자받은 주요 사업에서 실적이 매우 미진하기 때문이다. 매출, 흑자구조라는 엄청난 강점으로 뜨거워졌다가도 정작 우리가 중요하게 발전시켜야할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한 순간마다 차가워진다.


굉장히 높은 확률로 나의 미숙함, 우리의 역량 때문이다. 이렇게 VC랑 대화하기가 곤욕스러운 건, 스스로 변명하느라 진땀을 뺀다는 건, 못하고 있는 것이 맞다. 하물며 바이어의 요구로 시작된 아이템이다. 시장 상황이 굉장히 좋다는 시그널이 빈번히 느껴질때마다 더 그렇다. 제조 중개 플랫폼으로는 거의 1년 동안 미미한 실적만 낸 우리. 올 해 하반기 투자유치를 희망하고 있다고 연초에 밝힌 상황에서, 이번 달 미팅에서는 정말, 변명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VC가 위의 말을 했을 때, 머리를 꽝 맞은 것 같았다. 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세일즈팀은 하고 있었지만 내가 하지 않고 있었다는 말이다. 최근 내 관심사는 온전히 '프로덕트 자체'였다. 우리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했던 프로덕트의 부분이 개발이 지연되면서 그 생각으로 가득했다. 프로덕트가 더 잘 나와야한다, 사람들에게 멋진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세일즈팀에 고객 대응을 맡겼고, 세일즈팀에서 안되는구나, 나가리가 되었구나, 알려주면 그렇구나, 하고 어떤 방법이 좋을까? 실천없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무리 전공도 아니고 미숙하더라도 내가 고객 개발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우리 주된 수익원을 구성하는 크로스보더 플랫폼 초기에 나는 어땠나 생각해본다. B2C로 해야하나, B2B로 해야하나 애매한 경계에서 날마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바이어들과 이야기를 했다. 업자도 있었고, 개인도 있었는데, 한국 상품에 대해서, 우리가 선박으로 굉장히 저렴한 물류를 지원해 주면서도 크로스보딩의 번거로움을 전부 가리고 자국내 이커머스처럼 쉽게 판매한다는 점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처럼 영업 기반도 디자인 감각도 없는 사람이, 워드프레스로 허접하게 사이트를 만들어서 돌리는 데도 그냥 사고, 얘기를 좀 나눠서 아는 사이처럼 되면 몇 백 만원씩 사고 그런다고? 그래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와, 이거 되겠다.


그리고 그 당시,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이어서 좀 어려울 것 같다며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내부 멤버를 독려하고, 지원했다. 이거 되는 거야, 조금 더 다르게 해볼까? 이 사람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반응할까? 등등. 워드프레스로 월매출 몇백만 원 정도까진 만든 것 같다. 이후에는 CSO 제랄드에게 세일즈를 완전히 맡겼고, 그는 월매출을 4억 원까지 끌어 올렸다.


고객 개발 : 고객을 고려한 '제품 개발'. 고객을 이해하기 위한 가설 주도 접근법. (pp29~30.)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직접 고객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크로스보더 보다는 복잡한 니즈를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방법론을 좀 찾아봤다. VC가 '고객 개발'이라는 키워드를 던져 준 상황. 직접 검색해보니 '린 고객 개발'이라는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객 개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지라, 선택지가 많이 없었고, 당일 그 책을 구매해서 읽었다.


이 책은 고객과 1시간을 대화해서 5, 10, 20시간 이상을 아끼는 제품 개발법을 말해 주고 있다. 제품이 개발되기 전에(개발되었다 하더라도 초기에), 시장조사와 사용성평가와 별개로 고객을 문제와 해결책을 검증하고 초기 지지자를 만드는 방법을 세심하게 다루었다. 우리가 잘 모르던 것들을 체계화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프로덕트의 완결성 등을 이유로 고객 개발에 한계를 느낀다는 내부 피드백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해서 멤버들과 공유해야겠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가설 세우기
2. 대화를 나눌 잠재고객 찾기
3. 목적에 알맞은 질문하기
4. 답변의 의미를 이해하기
5. 지속적 학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찾아내기(p31)


그 중 1~2를 먼저 시작해본다. 

가설 세우기는 다시 세부적으로 3단계로 이루어진다. 

1) 가정을 확인하라.

우리 고객은 _____(직업) 이거나 _____ (신분)이다.  
고객의 문제는 _______이다.
고객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_________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
고객은 구매를 결심할 때 ______의 영향을 받는다.


2) 문제에 대한 가설을 작성하라.

나는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문제를] 겪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어떤 제약조건 때문에] [어떤 문제를] 겪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겪는 문제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언제’에 대해 알아내야 한다. 특히 ‘왜’를 이해해야 한다. 가설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하게 기준을 정해주기를 권하는 텍스트들도 있다. 예를 들어 인터뷰이 중에서 절반이 문제의식을 느낄 것과 같은 기준이다. 우리의 경우 한국화장품 발주를 할 때 겪는 여러 문제를 가설화할 수 있다. 가설은 실제로 많았고, 느슨하게 검증해 오긴 했다. 세일즈팀말로는 '잠수를 타는' 방식으로 (글로벌 바이어다보니..)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많아서 정확히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 것일까? 


3) 목표 고객 프로필을 그려보라.

고객을 좀 더 세분화하여 타깃팅을 해야하는 것이었을까?


위의 이미지는 기술수용주기 그래프이다(pp53~54). 저자는 중심축 왼쪽의 혁신 수용자(2.5%), 선각 수용자(13.5%)에 집중하기를 권유한다. 사실 우리 아이템의 콘셉트도, '선각자적인 유통셀러가 화장품을 신규 개발할 것이다'에서 시작됐다. 신상을 좋아하는 뉴비, 아마도 화장품 브랜드 창업자군에서 가장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야기를 나눌 잠재고객을 찾아야 한다.

이런 반박에 부딪힐 수 있다.


제품이 있어도 어려운데, 하물며 누가, 실제 있지도 않은 제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자신의 시간을 내주겠는가?

세일즈팀이 특히 이런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제품이 덜 갖추어져서, 라는 말이다. 이건 아마도 국내 최고 대기업(삼..) 출신들이라 그럴지도. 프로덕트와 마케팅자료가 완벽한 상태에서 세일즈를 해왔을테니 말이다. 조금 낯선 방법론일 수는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간이 원래 그렇다"라고 답변한다. 초기지지자를 모으는 방법과 함께 사회심리학적으로 이 것이 작동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인간은 원래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좋아하고, 스스로 똑똑해 보이기를 바라며, 뭔가를 고치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 심리는 아주 보편적이고, 문화나 개인의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행복감을 주고 받는 일이라고 한다(p62).


그래서 예의바르게 물어보라고 권한다. 지인에게 소개받거나 메일을 보내거나, 기타 등등의 방법으로. 딱 찍어서 도와달라고 말하면 20% 이상 답을 준다고 말이다.


인터뷰가 시작됐다면, 이제 질문도 중요하다. 고객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고객이 아니라 우리인 것. 구체적으로 잘 물어보라는 말이다.



화장품 발주를 어떻게 했는지, 과거의 경험이 어땠는지 상세히 물어봐야하는 시점이다. 




지난 1년간의 미진한 실적은 전적으로 대표인 내가 고객에게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역이라는 게 한 트랜잭션이 시작되고 끝나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 정말 너무 빠르게 1년이 지나갔다. 이 상태로라면 몇 년을 이렇게 끌 수도 있는 것이다. 집요하게 물어보고 파악했던 과거를 잠시 잊은 채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는 데 발을 동동 굴렀던 것이 1년을 낭비하게 한 것 같다. 무역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도하여 빠르게 수많은 트랜잭션을 일으켜야 한다.


앞으로 2주간, 고객 개발을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예전처럼 즐거울 것이고, 알 수 없어 답답할 것이며, 자기의 문제를 잘 발견하지 못한 고객들 사이에서 혼돈을 겪을 것이다. 애먼 영어탓도 좀 할 것이고, 더 잘해보지 그래, 하는 애정어린 질타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역 플랫폼을 동남아에 빠르게 안정화시켰던 것처럼, 문제를 찾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제조와 무역 체인에서 크고 작은 디지털 전환을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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