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맨딩'
'맨땅에 헤딩하기'
내가 스타트업계에 들어오게된 계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기자 시절, 아이들과 함께 해외 출장을 갔다. 내키는 출장은 아니었다. 그 당시 오래전 잡지팀에 있을 때 썼던 기사를 팔로업하는 차원에서 갔고 이미 나는 데일리팀으로 옮긴 상황이어서 일정상 선배들께 굉장히 죄송했다. 심지어 내 주업(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이끌고 가야하는 건가.. 생각에 해야하는 일이어서 억지로 갔던 기억도 떠오른다.
"영혼이 없는 채 일을 하겠다(시간을 보내겠다)!" 라는 다짐과 함께 공항을 찾았다. 조그마한 아이들이 있겠거나.. 생각하고 갔는데 처음부터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169cm인 나보다 키가 큰 여자아이가 있는 것이다. 이미 170중반이라고. 중학생이던 이 큰 아이는 특허도 몇 개 있었고, 무려 창업경험까지 있는 아이였다. 사진을 찍는데 포즈 하나하나 다 다르고 뭔가 특별했다. 자기는 이러이러한 창업을 했고 마이스터고에 진학해 창업에 대해 더 디벨롭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회사 이름이 '맨딩'이었다. 친절히 '맨땅에 헤딩'의 줄임말이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교실과 교구상을 연결하고, 맨딩 멤버들이 교구를 들고 수업을 진행하면서 과학을 가르친다고 했다. 자기들이 홈페이지도 만들었다고, 스마트폰 이리저리 돌리며 시연도 하고.
여러가지로 충격적이었다. 이토록 나이브한 생각으로 출장길에 오른 나와 열정으로 눈이 반짝반짝한 그의 만남이라니. 덜컹거리던 땅, 도마뱀이 꽤 나오던 그 곳에서, 나는 그 아이의 옆자리에 앉아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의 것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이 어리든 나이가 많든, 반짝이고, 사람을 빨아들인다. 그때 막연히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퇴사와 대학원진학 등 몇 가지 일을 저지르고, 결국 창업계에 발을 들였다. 한 때는 기자와 중학생이었지만, 그 땐 난 아무것도 없는 창업자, 그 아이는 대한민국 인재 대상을 탔다.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다면 자기 이야기인지 알 수 있을까.
첫 채용을 시작한지 4년이 넘어간다. 공동창업자 둘이서 출자를 했고, 3번 멤버부터는 스톡옵션과 연봉을 협상하며 채용을 하였다. 자발적으로, 혹은 가끔은 내가 주도해서 아름다운 이별을 하며 면접은 40~50번, 채용은 20번 정도 한 것 같다. 지금 멤버수는 13명, 7월 1일자로 15명 정도가 된다. 가장 오래한 멤버가 계속 주요 멤버로 있으니 채용을 하고, 한 사람을 본지 4년이 넘는 경우도 생겼다.
긴 세월 일과 사람 사이에서 줄다리기했다. 그리고 이 4가지 속성이 결국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단의 스마트함이나 성실함은 이 사람의 generalist적인 속성을 결정한다. 무슨 일을 하여도 어느 수준이상의 달성을 해내는 것이다. 상단의 창의력이나 집착력(?)은 specialist적인 속성을 결정한다. generalist는 모든 기업에서 선호하는 성향이다. 흔히 '일잘러'로 평가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하지 않나 싶다. 창의력이나 집착력은 미디어, 엔지니어링 등 특수분야에서 선호하는 성향이다. 흔히 맨파워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분야다.
처음에는 네 가지 요소 중 창의력과 집착력이 극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장을 여는 능력, 문제해결력은 바로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 창의력은 '주어진 것 외의 부분에서 문제찾기'이다. 이게 정말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속성인데. 뭔가 이거랑 유사한걸 봤는데.. 하면서 다른 필드의 유사 패턴을 찾아서 그것보다 비효율적인 점을 발견한다든지, 규칙이나 룰이 아니라 사람들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든지. 주어진 것을 수행하면서 발견하기 보다는 다른 경험이나 딴생각 공상 등에서 발견되는 속성이다. 문제가 보이지 않으면 해결책이고 혁신이고 추구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런 엉뚱한 창의력이 초기 단계의 시장문제를 발견하는 코어 역량이 된다.
스타트업에서 집착력(?)은 '될 때까지 실행하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되는 시장이라면, 내가 잘하면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다면,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매우 지난하다. 계속 다른 시도를 해봐야하고 먹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게 심지어 몇 년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집착력의 사람들은 한 번 찾아서 시장이 쫙열리는 데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경험, 잠깐만으로도 매우 만족도는 올라간다. 그 자체로 행복감을 느낀다(집착력이라는 단어가 이상한것 같아 물음표를 붙였다).
이렇게 창의력과 집착력을 가진 사람들은 맨땅의 헤딩한다. 심지어 뭐가 깔린 땅에는 헤딩하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가 땅을 느끼고, 거기에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상태면 내가 이 땅을 얼마만큼 점령하고, 실제로 그걸 해내면서 기쁨을 느낀다. 진짜 몸이 아파야, 진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 느끼기도 하고. 창의력은 룰을 벗어난 어떤 문제 발견과 아이디어를, 집착은 반복적인 저지름을 의미하기에 이들을 '또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빠보이지만 사실 나쁜건 아니다. 보통 '또라이'에게 투자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해당 분야에 도메인 지식이 아무것도 없는 애송이라고 무시당하던 이가 해당 분야의 유니콘으로 떡상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렇게 사람을 갈아 극초기 스타트업이 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게 다가 아니다. 스타트업이 조금 더 성장하면 스마트함과 성실함을 갖춘 인재의 영입이 절실해진다. 집착은 곧 체력고갈과 번아웃을 가져오고, 정신적 충전이 이뤄져야 창의력도 회복된다. 이들이 고갈되기 전에 스마트하고 성실한 이들이 들어온다. 열정에 가지를 치고, 오퍼레이션을 합리적으로 만들며 끝까지 해내면서 비지니스를 부스트하니 말이다. 이들이 없다면 또라이들이 만든 한여름밤에 꿈에 그치는 것이 바로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모든 성향과 능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결국 어떤 성향의 사람을 어떤 스테이지에 어떻게 구성하여 함께 하는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스타트업 대표의 주요 역량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 같이 작은 회사에 조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생각으로 모셨던 멤버들인데, 사실 그림의 4가지 성향을 조금씩 다른 분배로 가지고 있는 것이 이제는 눈에 보인다.
겸손해진다. 같이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을 나눌 수 있게 되고, 성숙하게 상황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을 때 성장했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이 할 사람이라도 사업의 성향과 단계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한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어쩌겠나. 멀게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 나누고, 시도하고, 결과를 보고, 개선하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그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더 어릴 때 창업을 했던 아이. 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