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나갔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으면 기계를 작동할 수 없다. 구조 실험실 핵심 장비인 유압 엑추에이터를 작동할 수 없다. 실험 구조물에 하중을 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컴퓨터를 새로 구입해서 기계 가동 프로그램을 깔면 쉽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기계를 구입한 업체를 찾아 전화를 했다. 며칠 후 담당 기술자가 왔다. 그런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컨트롤러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깔면 되지 않느냐고 나는 반문했다. 그는 프로그램 운영체계가 달라져서 우리가 보유한 컨트롤러로는 더 이상 이 기계를 가동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컴퓨터가 다시 살아나 옛 프로그램이 다시 수행된다면 몰라도 말이다. 견적서를 받았다.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보드 몇 개 들어가는 조그만 비디오 플레이어 크기의 커트롤러 박스와 오일 교체 비용이 3400만 원이었다. 유압펌프가 달린 유압 엑츄에이터를 20년 전에 칠천만 원에 구입했는데 말이다. 기계는 멀쩡한데 제어기가 3000천만 원 가까이라니 기가 찼다. 대학이 어려워 이것 바로 구매하기 어려우니 실험 가능하게 편의를 봐달라 했다. 안 된다고 했다. 20년 전에 우리가 이 회사에 거의 2억 정도의 큰돈으로 우리 실험실 주요 장비를 구매했었다. 당연히 사장과 잘 알고 있어서 먼저 실험이 가능하게 도와주고 나중에 구매하는 조건을 이야기했다. 지금 사장은 그분 아들이라 말했다. 옛 사장이 연락이 안돼 나는 현 사장인 그분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실험이 기능하도록 도와 달라고. 직원과 상의해 본다더니 결국 거절하고 말았다.
분노가 치밀었다. 기계는 멀쩡한데 운용 프로그램이 달라져 컨트롤러를 구입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이 엄청난 고가다. 아끼고 잘 써서 아무 이상이 없는데, 작은 부품 하나가 고장 났다고 구입 금액의 반을 내라는 이 이상한 영업. 거의 날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건 너무 심하다. 그래도 끝까지 참고 부탁했다. "당신 회사 초창기에 얼마나 도와주었냐? 도와 달라. 우리 당신 기계 기지고 있으니 이 기계와 관련된 필요한 것들 당연히 구매할 것이다. 단지 절차가 오래 걸리니 믿고 실험 가동이 가능케 해 달라.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존심 버리고 여러 번 부탁했다. 거절뿐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지금은 부산의 큰 토목 설계 회사 부장인 P제자가 컴퓨터를 살려 보겠다고 했다. 10여년 전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애제자다. 우리 연구실 실험을 도맡아 한 친구다. 졸업 후에도 자주 만나는 친한 제자다. 그러나 컴퓨터를 고쳐 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죽은 컴퓨터를 살려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까.
전화가 왔다. 컴퓨터를 살려 냈다. 보드에 꼽힌 부품들을 하나하나 체크해서 의심되는 부품을 구매해 끼워가며 엄청나게 고생해 복원시켰다. 얼마나 감사한가? 하늘이 무너지는 암담한 상황이 새 빛으로 밝아오는 느낌이었다.
다시 시작하자. 컴퓨터가 다시 살아왔으니 할 수 있어 !
컴퓨터와 제어기를 연결했다. 그리고 엑츄에이터 운용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러나 기계는 꿈쩍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샅샅이 뒤지며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컴퓨터 본체를 싣고 대구에 있는 그 회사에 갔다. 그리고 문제를 설명했다. 문제 해결 후 학교로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며칠 후 기계와 컴퓨터가 연결되었다.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달 이상의 끝도 없는 고민거리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