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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거가 죽었다

by 동이화니

희망이 떠 올랐다. 이제 컴퓨터도 살아나고 기계도 가동된다. 사실 그동안 실험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 유압 액츄에이터를 쓴 게 7년 전이다. 구조 실험은 대형 실험이기 때문에 특별한 연구과제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연구비도 많이 들어간다. 그동안 내게 실험 연구과제도 많이 없었다. 몇몇 과제가 있긴 했지만 소규모 실험이라 구조 프레임 옆에 있는 만능 시험기로 했었다. 그 마지막 실험도 4년 전쯤인가? 기둥 보강 실험이었다. 학부장 하느라 3년 날리고 연구실적도 별로 없어 과제도 받기 힘들었다. 악순환이었다. 그러니 대학원생도 없다. 번창했던 옛 시절은 기억 속에만 있다. 이제 새로운 출발이 가동된 것이다. 그런데 세월의 방치는 기계도 사람도 고장 나게 했다. 학부생을 데리고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컴퓨터를 살러낸 P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화려했던 옛 시절 우리 실험실 방장이다. 집도 학교 근처다. 자기가 기꺼이 돕겠다 한다. 졸업한 지 10여 년이 흘렀건만, 우리 사이의 사제지정은 여전히 깊다.

학부 학생들 기기 운용 교육이 시작되었다.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몇 차례 P부장 지도 아래 실습이 행해졌다. 작은 H형강을 올려놓고 예비 실험을 계속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실험은 현장에서 실제 사용하고 있는 실물 실험이다. 개수도 많이 만들 수 없었다. 실수로 깨어 먹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이 면밀하게 체크되었다. 기계 작동 교육은 이제 웬만히 된듯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실제 시험과 똑같은 방식으로 최종 예비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우리는 모였다. 회사일이 너무 바빠 평일 날 시간을 낼 수 없는 P부장은 휴일에 가족 시간을 빼앗아 왔다. 그런데 시험 개시가 초읽기에 들어가던 순간 멀쩡하던 데이터로거가 문제를 일으켰다. 스트레인 게이지 값이 읽히지 않았다. 이 측정기기는 변위, 하중, 변형율 등을 측정한다. 미세하게 변하는 저항을 증폭시켜 물체의 변형상태를 찾아내는 구조실험의 핵심 측정 기기다. 다행히 구매회사 번호와 회사가 남아 있어서 사장과 전화하고 담당자를 불렀다. 그런데 해결이 안 된다. 회사로 가져가서 점검해 보고 서울로 보내야 한단다. 만약 거기서도 안되면 일본에 보내야 한다. 데이터로거도 죽어 있는 것이다. 몇 차례의 안타까운 통화 해도 해답은 없었다.


인접해 있는 대학의 후배 교수에게 연락했다. 데이터로거 좀 빌리자고. 후배 교수는 우리도 안 써서 망가졌다 했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형님, 아직도 실험합니까? 우리는 안 한 지 오랩니다." 또 다른 친한 후배 교수에게 전화했다. 빌려 쓰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지나간 이야기하고 즐겁게 저녁도 했다. 그래도 기꺼이 빌려준 후배가 고맙다. 다시 데이터로거 업체를 불렀다. 겨우 겨우 데이터로거 세팅을 했다. 자기들도 잘해 보지 않았다 하면서 세팅하는데 이틀이 걸렸다.


아직 시작도 못했다.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다. 그런데 할 수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폭탄이 이렇게 날아드니 벌써 지쳐간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님께서 해 주시라고. 나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그래 믿을 곳은 하나님밖에 없어
광야에 길을 내신 하나님께서
그리고 사막에 강을 내신 하나님께서
내 길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당신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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