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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죽는다

by 동이화니

콘크리트 시험체가 학교에 도착했다. 10톤 트럭에 6개 실렸다. 거대한 규모에 놀랐다. 높은 학교 경사를 어떻게 올라왔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강원도 홍천에서 어제 출발했다 한다. 기사님 집이 대구라 하룻밤 자고 아침에 여기 도착했다. 지게차를 불렀다. 2개는 실험실 내에 그리고 4개는 우리 건물 마당에 놓았다. 가을 하늘과 아름다운 나무를 등진 하수도 맨홀 시험체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K 사장에게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그는 너무도 좋은 기운이 몰려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시험체의 크기와 보강 방법을 수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다. 실물 크기가 되어야 하고 실험실 크기와 용량에 맞추어야 하고 보강 효과를 최대로 낼 수 있어야 한다. 줄자를 들고 실험실을 얼마나 들락거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열심히 계산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강 효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기준 시험체 조차도 어느 정도 하중까지 견딜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결정된 시험체가 제작, 운반을 마치고 그것이 평가되는 공간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새로운 기운이 싹드는 것 같았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H회사 전문 기술자들이 학교로 투입되었다. 우리 학생들이 그어 놓은 치수가 안 맞다고 웃으며 다시 줄눈을 매기면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라인더는 먼지를 일으키며 가을 아침 하늘을 가렸다. 콘크리트 구체 속에 탄소 섬유판을 매입하여 보강 효과가 좋은 신 보강 공법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 과제다. 그라인더와 콘크리트가 만나 갈리는 거친 소리와 먼지의 솟구침이 공사현장을 방불케 했다. 어디서 듣고 보았는지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 왔다. 지난 몇십 년간 끝없이 잔소리하는 사람이다. 1년 전인가 수업 시간이 바빠서 코로나로 출입 금지된 출입구로 들어가다 봉변을 당한 적도 있다. 아무도 다룰 수 없는 사람이다. 그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나무들 다 죽는다. 우리 ♧♧♧♧ 애지중지 나무들 다 죽인다.


그의 거친 절규에 우리는 뻥 쪘다. 그렇게 큰 굉음과 먼지까지도 이 이상한 조선시대의 멘트 앞에 조용히 사그라지고 없어졌다. 내가 한마디 했다. "비 오면 나무에 앉은 먼지들 다 날아간다. 괜찮으니 걱정 마라."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 아니, 이 교수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그대로 보고 할 거요." 사진 찍고 작업하는 과정 동영상 찍고 난리가 났다. 작업 반장님이 물었다. 저분 누굽니까? ♧♧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네요. 컴퓨터 죽고, 데이터로거 죽더니, 이제 나무들 까지 죽는다는 괴이한 일이 실험실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날 작업이 끝났다. 소방 호수를 끄집어냈다. 길게 연결된 호스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 먼지 투성이 바닥을 쓸어 내었다. 먼지 덮어쓴 나무도 시원한 샤워를 했다. 시끄러운 소리도 먼지도 잠들고 있었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고된 하루를 마감하고 저녁이 멀리서 여기로 오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고여 있는 물 위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진짜 하늘과 똑 같이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나무와 하늘, 그리고 우리들. 예쁘게 도열된 물먹은 실험 시험체를 바라보며 생긋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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