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이 끝났다. 마지막 남은 실험을 마무리했다. 유압 탱크 온도가 올라가고 약간의 누유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실험을 마쳤다. 지금까지 발생한 많은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여기까지 온 것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우리 실험 목표인 탄소 섬유판 보강 효과를 확인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물론 시간을 가지고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리해야 더 정확한 결과가 분명하게 나타나겠지만, 적어도 보강 효과를 확신하면서 실험을 종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이켜 보면, 이번 실험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들 하나하나를 끝까지 붙들고 포기하지 않고 해결해 나갔던 과정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동안의 긴 공백을 깨고 61세의 시간에 새롭게 시작한 이 실험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던져 주는 듯하다. 4개월이 넘는 긴 시간을 밤잠 이루지 못하며 문제들에 달려들어 노력하고 끈질기게 붙들고 갔던, 그 시간은 나에게 더없이 소중하고 뜻이 깊다.
2021년을 살아가면서 내가 작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시간을 정말 아끼고 허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너무도 소중하다. 기쁜 시간도 소중하고 안타까운 순간도 소중하다. 실패하고 때로 좌절하기도 했던 순간도 너무 소중하다. 이 순간들을 나는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내 것으로 다시 만들고 더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 나는 시간과 씨름을 한다. 그리고 글을 쓰고 마음과 기억에 담는다. 그러면 분명 그 시간들은 다시 살아 나와서 나와 함께하고 머물러 떠나지 않는다. 한 해를 보내면서 감사한 것이많지만, 내 문제 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품고 그것을 나타내는, 글쓰기를 내가 즐겨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글쓰기 때문에 내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서 자라고 커진다. 나를 감격하게 하고 더 큰 사랑으로 나를 붙든다.
올해 여름방학 들어서기 전부터 나와 같이한 소중한 실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거나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컴퓨터가 먹통이 되고, 수없는 지뢰 속에 내가 갇혀서 꼼짝 못 한 시간, 그리고 유압 탱크가 터져 버린 시간과 순간을 나는 버릴 수가 없다. 가을을 느끼지도 못하고 흘려보내야 했던 안타까움도 나에겐 더없이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쓰는 것이다. 남기고 더 소중한 것으로 내속에서 추억되게 하기 위해서.
생활글. 바로 그거다. 내 모든 시간이 글이 되어 나를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시간을 보내는 나의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작은 일이고, 어쩌면 유치하고 사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핀잔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쓰고 싶다.
실험을 마친 이 시간. 그렇게 즐겁지도 않고 뿌듯하지도 않다. 한 과정이 일단락되고 다른 종류의 일들을 다시 할 수 있다는 사실 만이 다를 뿐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지나오고, 그것과 만나 내 주변을 살펴보며 더 자세히 나를 관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좋다. 문제를 찾아가기 위해 여기저기를 찾아다녔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만든다. 내가 아직 늙지 않았구나! 세월이 소리 없이 빨리 간다 하더라도 나는 늙지 않을 수 있다. 젊은이의 마음을 내 속에 집어넣고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 그 사람은 늙지 않는 젊은이가 되는 것이지.
실험을 마쳤다. 그러나 다른 삶의 새 실험이 시작된다. 더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지 모른다. 나는 다시 문제를 안고 실험을 시작할 것이다. 그 실험이 마쳐질 때까지.